[이코노폴리틱스]
- 김종인 “‘3% 룰’ 보완 논의해야”
- 與 “‘3% 룰’ 원안 훼손 안되지만 일부 보완 가능”
- 백혜련 “정기 국회서 처리” 김도읍 “이른 시일 내 어렵다”
- 경제계 “법 적용 땐 주요 대기업 87% 투기 자본의 감사 선임 가능”…초비상


[한경비즈니스=홍영식 대기자] 정부의 상법개정안은 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과 함께 여권이 추진하는 ‘기업 규제 3법’ 중 큰형으로 불린다. 법안에 담긴 감사위원 분리 선출과 ‘3% 룰’, 다중대표소송제, 집중투표제, 소수 주주권 행사 요건 완화, 전자투표 의무화 중 하나만이라도 시행된다면 기업에 큰 충격파를 준다.

정부·여당은 이 모든 것을 담은 법안을 정기 국회 회기(12월 9일까지) 내에 처리할 방침이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이 법안에 반대한 국민의힘은 ‘3% 룰’ 등 일부 조항의 보완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큰 틀에서 찬성하고 있어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은 감사위원 중 1명을 다른 이사들과 분리해 선임 절차를 밟도록 하는 것이다. 이사의 업무를 감시하는 감사가 대주주의 입김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정부와 여당의 주장이다. 특히 논란의 중심에 올라 있는 것은 ‘3% 룰’ 규정이다.

감사위원 분리 선임 때 지배 주주와 특수 관계인의 합산 지분율이 3%를 넘더라도 의결권 행사는 3%까지만 허용했다. 소수 주주의 감사 선출권이 강화되는 것이다.

집중투표제는 이사 선임 때 1주당 1표씩 아니라 뽑을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갖게 한 제도다. 1주당 복수의 의결권을 가진 주주가 선호하는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다. 지금은 기업이 정관을 통해 집중투표제를 배제할 수 있어 기업들은 대부분 이 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다중대표소송제는 자회사 또는 손자회사의 위법 행위로 모회사가 손해를 본 경우 모회사 주식 1% 이상만 갖고 있으면 자회사 또는 손자회사 경영진을 상대로 대표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한 제도다. 현재는 모회사 주식 1% 이상을 가진 주주가 해당 회사 경영진에 대해서만 소송 할 수 있다. 전자투표는 상장사 주주가 주주총회에 참석하지 않아도 의결권 행사를 할 수 있게 한 제도다.

여기에 더해 정부와 여당은 증권 분야에만 제한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집단소송제를 모든 분야로 확대하는 내용의 집단소송법 제정안도 제출했다. 집단소송제는 피해자 일부(50인 이상)가 제기한 소송 결과에 따라 소송에 참가하지 않은 피해자도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국정 감사가 마무리됨에 따라 상법개정안 본격 심의에 들어갈 예정이다. 민주당 법사위 간사인 백혜련 의원은 “원안 유지가 기본 방침”이라며 “여야 간 접점을 찾지 못해도 정기 국회 회기 내에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말했다.
[이코노폴리틱스] 여야, 상법개정안 '3%룰' 보완 수준서 합의할 듯
▶ 상법개정안에 대한 민주당의 방침은 무엇인가.
“정부 원안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다만 논의 과정에서 재계 의견을 들은 뒤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 경제계 의견이 법안 내용에 반영될 수 있다는 건가.
“결정된 게 없다. 일단 정부안을 중심으로 논의하되 의견을 듣겠다는 원론적인 생각이다.”

▶ 감사위원 분리 선임과 ‘3% 룰’에 대해 경제계에서는 경영권 위협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결정된 게 없다.”

▶ 백 의원이 집단소송 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민주당 산하 민주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홍익표 의원은 집단소송 법안 처리는 정기 국회 내에 어렵다고 얘기했다.
“정기 국회 내에 처리하자는 의견도 있고 여유를 갖자는 의견도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이 올해 말 종료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조속한 입법이 필요하다.”

▶ 다중대표소송제에 대해 소송 남발 우려가 제기된다.
“기업들의 의견은 잘 알겠는데 너무 방어적이고 과도하게 우려하고 있다. 법안이 처리된다고 해도 실제 소송이 남발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 여야 합의가 안 되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
“마지막까지 노력하되 안 되면 정기 국회 내 통과시킨다는 방침이다.”

상법개정안과 집단소송법안에 대한 법사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의 방침은 대부분 유보적이다. 20대 국회에서 국민의힘의 반대로 처리되지 못했지만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찬성 의견을 보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법사위 위원들이 김 위원장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도읍 국민의힘 법사위 간사는 “워낙 쟁점이 많고 찬반이 첨예한 만큼 경제계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신중하게 심사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코노폴리틱스] 여야, 상법개정안 '3%룰' 보완 수준서 합의할 듯
▶ 여당은 정기 국회 내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한다.
“국가 경제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 법안이다. 이른 시일 내 결론을 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 김 위원장이 찬성하면서 국민의힘 기류가 달라진 것 같다.
“외국의 입법 사례가 적고 판례도 제한적으로 인정되는 상황이다. 물론 기업 경쟁력을 감안해야 한다. 다만 우리 당이 과거에는 당론으로 반대했는데 이제는 반대만 하는 정당으로서는 국민들에게 다가가기 힘들다. 그래서 심도 있는 심사를 통해 결론 내는 쪽으로 가려고 한다. 일도양단의 찬반이 아니라 사안 하나하나 면밀하게 검토한 다음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 필) 도입 등 재계 방어권도 보장돼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내용들도 함께 심사할 것이다.”

여야의 이런 분위기로 봐선 ‘3% 룰’ 일부 보완을 전제로 상법을 비롯해 기업 규제 3법 통과 가능성이 예상된다. 김종인 위원장은 “‘공정경제 3법(기업규제 3법)’ 자체가 큰 문제가 있는 법은 아니다”며 “몇 사람이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완할 내용은 시정하면 된다”고 했다.
[이코노폴리틱스] 여야, 상법개정안 '3%룰' 보완 수준서 합의할 듯
김 위원장은 최근 한경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시정할 내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과 주주가 된 지 1년도 안 된 사람들에게 주주권을 행사하게 하는 것 등이 있을 수 있다. 주주의 주식 소유 기한을 더 길게 잡는 등으로 수정하면 된다. 기업인들에게 ‘내가 대한민국 경제에 대해 많이 걱정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잘못되는 입법은 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것은 입법 과정에서 어떻게 수정할 것인지 논의할 수 있다. 그러나 법안 자체를 반대해선 안 된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의견도 김 위원장과 비슷하다. “재벌과 오너 리스크를 막고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가 필요해 원론적으로 동의한다”는 것이다. 다만 재계가 걱정하는 ‘3% 룰’ 등 일부 보완책 마련을 전제로 내걸었다.

법사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은 “3% 룰이 정부 안대로 통과된다면 우리 기업들이 헤지펀드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경제계의 의견이 타당성이 있는 만큼 경영권 방어 대책 도입 등 보완책을 여당에 요구할 계획”이라며 “여당이 어느 정도 수위까지 수용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3% 룰’에 대해 원안을 유지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3% 룰’을 놓고 당 일각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와 이번 정기 국회에선 이 조항을 빼고 법안을 처리할 가능성도 예상됐다. 삼성전자 상무 출신의 양향자 민주당 최고위원은 ‘3% 룰’에 대해 “해외 자본의 경영 개입 통로가 돼 우리의 소중한 핵심 기술이 빼앗길 수 있다는 기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며 반대했다.

그는 “감사위원은 회사의 모든 주요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을 가진다”며 “정보 탈취를 목적으로 들어온 감사위원이 이를 지킬 것이라고 믿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3% 룰’에서 후퇴할 경우 문재인 대통령이 줄곧 내세워 온 ‘공정 경제’ 취지가 바랠 수 있다고 판단해 원안 유지로 가닥을 잡았다.

다만 민주당은 ‘3% 룰’ 수치 등은 건드릴 수 없지만 일부 보완은 검토해 볼 수 있다는 생각이다. 경제계가 거세게 반대하고 있고 국민의힘의 보완책 요구를 마냥 외면하고 일방적으로 법안을 처리하기엔 부담이 크다. 심사 과정에서 김종인 위원장이 거론한 주주권 행사 시 주식 의무 보유 기간을 늘리는 방안, 투기 펀드에 대비한 방어 장치 등을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원안의 취지를 손상시키는 쪽은 안 된다는 생각이다. 법사위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투기 세력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재계의 주장은 과도한 우려”라며 “20대 국회 때보다 법안이 후퇴한 마당에 보완 수준을 넘으면 안 된다. 차등 의결권과 포이즌 필 등 야당 일각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못 박았다.

이렇게 되면 경제계엔 초비상이 걸린다. 국민의힘이 ‘3% 룰’ 보완을 전제로 내걸었지만 민주당이 ‘원안 훼손 불가’ 방침을 밝힌 마당에 기업이 요구하는 수준까지 관철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범여 의원들은 정의당 의원들을 합하면 전체 3분의 2에 가까운 190석이다. 법사위 위원들은 범여 12명 대 국민의힘 6명으로 국민의힘은 수적으로 확연한 열세에 놓여 있다.

기업들은 감사위원 분리 선임과 대주주 의결권 3% 제한이 현실화한다면 기업 경영권이 고스란히 노출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부와 여당은 투기펀드도 ‘3% 룰’ 적용을 받기 때문에 그런 우려는 기우라고 주장하지만 헤지펀드 등 현 경영진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지분을 3%씩 쪼개는 방식으로 힘을 합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대주주 3% 의결권 제한 규정을 악용해 투기 세력이 힘을 규합해 그들이 내세운 인사를 감사에 앉혀 사측의 주요 의사 결정에 반대하는 등 기업 경영을 어렵게 할 우려가 크고 경쟁 회사에서 의도적으로 ‘스파이 감사’를 꽂아 넣으려고 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또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지난해 현대차에 경쟁사 임원을 감사로 앉히려다가 무산된 바 있는데 상법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이런 시도가 관철되면서 회사의 주요 기밀 사항들이 경쟁사에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양 최고위원이 걱정한 그대로다. 실제 한국산업연합포럼(KIAF)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3% 룰’ 적용 땐 국내 주요 15개 대기업 중 13개가 외국계 헤지펀드 추천 인사가 감사로 선임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중대표소송제에 대해서도 외국계 자본과 투기 세력들이 자회사·손자회사의 경영을 침해해 기업 인수·합병(M&A) 수단으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고 경제계는 우려하고 있다. 경제계는 또 집중투표제 의무화에 대해서도 소수 주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사가 이사회 운영을 방해하거나 투기 자본이 경영권 분쟁 도구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걱정하고 있다. 경제계는 법안 논의 과정에서 의견을 적극 개진할 방침이지만 여야의 분위기로 봐선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 [돋보기] 경영권 방어 ‘맞불 법안’ 낸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
“상법개정안 내용 제대로 알고 목숨 걸고 막는 사람 없어 내가 나서”
[이코노폴리틱스] 여야, 상법개정안 '3%룰' 보완 수준서 합의할 듯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은 정부·여당의 상법개정안에 대응해 국내 기업들이 외국계 투기 자본의 경영권 위협에 방어할 수단을 담은 맞불 법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은 이 법안을 여당 법안과 병합 심사할 방침이어서 얼마나 관철될지 주목된다.

추경호 의원이 대표 발의한 상법개정안에는 일부 주식에 많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해 지배 주주의 권한을 강화하는 차등 의결권,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 또는 경영권 침해가 발생하는 경우 기존 주주에게만 시가보다 싼 가격에 신주를 인수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 필) 등을 담고 있다.

추 의원은 법안 제출 배경에 대해 “적대적 M&A에 의한 경영권 상실의 폐해가 심각해짐에 따라 미국·일본·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들은 차등 의결권 등 다양하고 강력한 제도를 도입해 경영권 경쟁에 공정성을 도모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방어 수단이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선진국에는 없고 한두 국가에만 있는 규제 방안들만 가져 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균형 있게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추 의원은 “기업들이 안정적 경영 활동을 위해 취득하고 있는 자기 주식까지 고려하면 경영권 방어 비용이 훨씬 늘어나는 게 현실”이라며 “정치권과 정부가 기업의 지배 구조를 재단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또한 “정부의 법안 내용을 제대로 알고 목숨을 걸고 나서는 사람이 별로 없다”며 “여당이 정치적으로 판단해 법안을 처리할 텐데 판단을 잘해야 한다. 그 이면엔 대한민국 기업 생태계와 관련이 있다”고 강조했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0호(2020.10.26 ~ 2020.11.0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