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알못 판례 읽기]


동일 상호 서울 식당, 메뉴·서비스 방식도 유사…“지리적 거리 있지만 음식 관광 등으로 경쟁 관계”
‘해운대암소갈비집’ 상표권 분쟁, 부산 원조집 손 들어준 법원 [법알못 판례 읽기]
[한경비즈니스 칼럼=이인혁 한국경제 기자] 부산의 유명 맛집으로 통하는 ‘해운대암소갈비집’은 지난해 손님들에게 “서울에 분점을 냈나요” 등의 문의 전화를 수차례 받았다. 대표인 A 씨는 금시초문이었다. 알고 보니 지난해 3월부터 서울 용산구에 동일한 상호의 해운대암소갈비집이 운영 중이었다. 상호뿐만 아니라 대표 메뉴와 간판 이미지 등도 유사했다.


A 씨는 부친이 1964년 창업해 55년 이상 쌓아 온 명성과 노하우 등이 무단으로 사용됐다며 분개했다. A 씨가 서울 식당 운영자 B 씨를 상대로 상호 사용 금지 등을 구하는 민사 소송을 제기하며 소송전이 시작됐다.

1심 뒤집은 항소심

하지만 A 씨는 1심에서 패소했다. 재판부는 지리적 명칭인 ‘해운대’와 상품의 성질을 표시하는 ‘암소갈비’라는 단어가 결합한 해운대암소갈비집 상호는 식별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또 A 씨 식당의 간판이나 불판, 감자 사리 메뉴 제공 방식 등이 다른 고깃집과 특별히 구분되지 않는다고 봤다.


하지만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먼저 “음식점은 일반적으로 평균 수명이 3~5년에 불과하고 폐업률이 92%에 달한다”며 “원고가 요식업계에서 55년 이상 같은 장소에서 같은 메뉴를 제공하면서 연 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음식점을 계속 운영해 왔다는 사실에서 상당한 인지도와 명성·신용·고객 흡인력을 추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두 식당의 간판과 불판, 감자 사리 제공 방식 등도 유사하다고 봤다. 어두운 바탕 위에 고전적 서체의 흰색 글자로 기재된 간판이 흡사한 만큼 소비자들이 두 식당을 같은 식당으로 혼동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글꼴뿐만 아니라 왼쪽 줄 ‘암소갈비집’의 첫 글자 ‘암’이 오른쪽 줄 ‘해운대’의 첫 글자 ‘해’보다 아래쪽에 있는 구조도 흡사하다고 봤다.


또 B 씨 식당에서 사용하고 있는 불판의 모양과 재질, 곁들임 메뉴로 제공되는 감자 사리의 구성과 서비스 방식 등도 원조 격인 A 씨의 식당과 매우 흡사하다고 판단했다. 가령 A 씨 식당은 갈비를 구울 때 육즙이 가장자리로 흐르도록 설계된 불판을 사용했다. 이 육즙과 함께 불판 가장자리에서 요리되는 감자 사리가 A 씨 식당의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였다. 2심은 이 같은 요리법의 식별력을 인정한 셈이다.

法 “두 식당은 경쟁 관계에 있다”

무엇보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와 각종 미디어 등에서 A 씨 식당이 유명세를 떨치고 있던 상황이 항소심에서 A 씨 식당이 승소를 이끌어 내는 데 중요하게 작용했다.


A 씨 식당은 주요 일간지와 지방지 등에서 부산을 대표하는 맛집, 전국의 대표적인 소갈비 전문점 등으로 소개됐다. tvN ‘수요미식회’와 SBS ‘외식하는 날’ 등 방송 프로그램에도 소개됐고 부산시청 홈페이지에도 부산 맛집으로 올라와 있다.


또 A 씨 식당의 인스타그램 포스팅 횟수는 올 상반기 기준 전국 유명 갈빗집 가운데 최상위권 수준이었다. 지난해 4월 기준 네이버에서 ‘해운대암소갈비집’ 키워드 검색을 했는데 3000건 이상의 블로그 글이 검색됐고 카카오 내비게이션에서 2018년 12월께 가장 많이 검색된 부산 맛집을 발표했는데 A 씨 식당이 3위를 기록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고 식당에 관한 온라인 정보들은 그 양과 질의 측면에서 모두 이 사건 영업 표지의 재산적 가치를 평가할 때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과 부산은 지리적으로 400km 넘게 떨어져 있지만 항소심은 최근의 시대적 환경을 고려할 때 두 음식점이 경쟁 관계에 놓일 가능성이 충분하다고도 판단했다. 먼저 국내 여행 중 음식 관광의 비율이 2017년 기준 34.7%였고 매년 10% 이상씩 성장하고 있다. 지방에서 맛집으로 유명세를 떨친 음식점들이 서울에 진출해 성공을 거두는 사례도 속속 나오고 있다.


한국갤럽조사연구소가 A 씨 식당의 의뢰를 받아 조사한 결과 올해 7월 3~5일 원고의 식당을 방문한 손님의 63.8%가 부산 이외 지역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B 씨 식당이 자리한 서울과 생활권이 겹치는 경기 지역의 방문자는 40%에 이르렀다.


재판부는 “두 식당은 부산과 서울에 자리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같은 사정들을 종합할 때 양 식당은 서로 경쟁 관계에 있거나 가까운 장래에 경쟁 관계에 놓을 가능성이 있다”며 “수요의 대체 가능성도 있고 피고 식당이 원고 식당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외식업계, 정당한 경쟁 확립되나

A 씨 식당 측을 대리해 승소를 이끌어 낸 광장의 김운호 변호사는 “그동안 원조 맛집들은 자신들의 성과가 무단 도용되는 상황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거나 단순히 상대방의 ‘상도의’에 호소해야 할 뿐이었다”며 “이번 판결은 이 같은 무단 모방 행위가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불공정 행위라는 점을 명확히 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최근 음식점들 사이 상표권·특허권 분쟁들이 증가하는 만큼 이번 판결이 향후 외식업계의 정당한 경쟁 질서를 확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가령 최근 제삼자가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에도 소개된 경북 포항의 한 ‘덮죽’ 음식점과 같은 메뉴로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만들어 논란이 된 바 있다. 비슷한 시기에 한 대형 제과점 브랜드가 강원 춘천에 있는 한 소상공인의 ‘감자빵’을 표절했다는 논란이 일어난 적도 있다.


돋보기


승소 이끈 광장 IP그룹…
“이공계 전문가와 IP 전문가들이 조화”


‘해운대 암소갈비집’ 상호 분쟁에서 1심을 뒤집고 항소심에서 부산 본점에 승소를 안겨준 곳은 법무법인 광장의 지식재산권(IP) 그룹이다. 전문가 100여 명으로 구성된 광장 IP그룹은 삼성전자·빅히트엔터테인먼트·노바티스 등 국내외 글로벌 기업들을 클라이언트로 두고 있다.


광장 IP그룹은 대법원 지식재산권조 재판연구관, 서울고등법원 지식재산권 전담부 판사 등을 지낸 김운호 변호사(사법연수원 23기)가 이끌고 있다. 김 변호사는 마이크로소프트 특허 침해 소송 사건, 스타벅스 저작권 침해 금지 사건, 라코스테와 크로커다일 사이 상표 등록 무효 사건 등 다수의 굵직굵직한 사건을 수행한 바 있다. 현재 한국지식재산권변호사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고 이번 해운대 암소갈비집 소송 대리인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 밖에 30년간 특허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권영모 변호사(16기), 특허법원 판사 출신 오충진 변호사(23기), 국제 IP 분쟁 전문가인 박환성 변호사(27기) 등이 광장 IP그룹의 주포로 활약하고 있다.
광장은 최근 방탄소년단(BTS)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를 대리해 부정경쟁방지법에 근거해 타인의 무단 굿즈 제작 행위를 금지시켰다. 또 게임 ‘팜히어로사가’ 개발사 킹닷컴을 대리해 유사 게임 개발 업체와의 저작권 침해 소송에서 승소했다. 게임 규칙이나 표현 방식 등도 저작물 보호 대상이 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을 최초로 이끌어 냈다. 광장은 현재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영업 비밀 침해 금지 등 사건에서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 등을 대리하고 있다.


광장 관계자는 “이공계 석·박사 등 해당 기술 분야에 정통한 실무 변호사들과 IP 분야에서만 20년 이상 경험을 쌓은 경력 변호사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게 강점”이라며 “최근 광범위한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미국·유럽·일본·중국·호주 등 각국의 IP 이슈에 관한 포괄적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twopeopl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2호(2020.11.09 ~ 2020.11.1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