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규칙의 중립성’이 플랫폼과 프로토콜의 차이…블록체인으로 불붙는 ‘프로토콜 경제’
비트코인과 우버 그리고 유튜브는 무엇이 다를까 [비트코인 A to Z]
[한경비즈니스 칼럼=김경진 해시드 심사역] 공급자와 수요자가 만나 서로 제품과 서비스를 거래할 수 있는 거래의 장을 흔히 플랫폼이라고 부른다. 운전자와 승객이 거래하는 우버, 집주인과 단기 임대자가 연결되는 에어비앤비가 플랫폼의 대표적인 사례다. 콘텐츠 크리에이터와 시청자 그리고 광고주가 활동하는 유튜브 또한 좀 더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대표적인 플랫폼이다.


비트코인은 어떠한가. 비트코인은 채굴자가 블록 생성과 장부 기록이라는 노동을 제공하고 이에 대해 코인(BTC)을 보유하거나 보내거나 받는 사용자들이 송금 수수료와 신규 채굴분에 대한 인플레이션 세금을 지불하는 플랫폼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과 같은 블록체인 네트워크는 플랫폼이라고 부르지 않고 프로토콜이라고 부른다. 우버와 비트코인에는 어떤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기에 하나는 플랫폼으로 하나는 프로토콜로 부르는 것일까. 이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먼저 프로토콜의 의미를 살펴봐야 한다.


프로토콜은 서로 다른 주체 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규칙을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TCP/IP와 같은 통신 프로토콜은 컴퓨터 간의 통신에 대한 규칙으로, 규칙을 따르는 컴퓨터들이 정보를 원활하게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프로토콜이 없다면 컴퓨터 간 제각기 다른 양식과 절차로 정보를 보내고 받으려고 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큰 비효율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공고히 보편화된 프로토콜은 네트워크의 효율성을 높인다. 플랫폼 비즈니스 또한 규칙이 존재한다. 우버 운전자와 승객이 서로 목적지와 도착 예정 시간에 대해 소통하고 운임을 결정하는 방식이 모두 규칙이라고 볼 수 있다.


블록체인은 ‘포크’를 통해 중립성 유지

플랫폼과 프로토콜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규칙의 중립성’이다.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이 설정하는 규칙들은 절대로 중립적일 수 없다. 플랫폼을 운영하는 회사는 매출과 이익을 증대시키는 한편 결과적으로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려는 목적 함수를 가지고 있다. 유튜브는 유튜브 플랫폼을 운영하는 구글의 주주 가치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플랫폼의 규칙을 바꿀 수 있다. 새로운 광고 모델을 추가하거나 콘텐츠 크리에이터와의 수익 배분 모델을 바꿀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나 크리에이터의 이익에 해가 될 수 있지만 플랫폼이 더 높은 이익을 창출한다면 이러한 규칙 변경은 쉽게 정당화된다.


프로토콜은 그렇지 않다. 한번 규칙이 설정되고 나면 큰 결함이 있지 않은 이상 규칙을 수정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애초에 프로토콜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규칙을 강요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점진적인 합의를 얻어내는 수밖에 없다. 또 규칙을 수정하더라도 가장 보편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방향으로 진화하지 제삼자인 주주의 부를 늘리기 위해 동작하지 않는다.


비트코인을 예로 들어보자. 비트코인은 작업 증명이라는 채굴 방식을 사용한다. 컴퓨터의 연산 능력을 활용해 새로운 장부 기록 묶음(즉, 블록)에 대해 특정 조건을 만족시키는 값을 제일 먼저 찾아내면 블록 보상과 수수료를 받는 식이다. 채굴하는 채굴자는 우버로 치면 운전자이고 장부에 기록하고 싶어 하는 사용자는 우버로 치면 승객이다. 여기서 블록 보상과 수수료는 말하자면 노동에 대한 대가로 주어지는 기본급과 추가 운임이다. 블록 보상(기본급)에 대한 규칙을 바꾸는 상황이라고 가정하자. 채굴자는 블록 보상을 높이면 수익성이 증가하므로 이를 좋아할 것이다. 반대로 비트코인 보유자들은 블록 보상을 늘리면 인플레이션 세금이 늘어나기 때문에 이를 싫어할 것이다. 플랫폼이었다면 두 주체가 서로 대립하고 중개자인 플랫폼 운영자는 자신의 이익이 극대화되는 결정이 무엇인지 고민할 것이다.


반면 비트코인과 같은 프로토콜에서는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 최초로 설정된 블록 보상의 변화 계획을 그대로 따라간다. 만약에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참여자 중, 예컨대 채굴자 그룹에서 블록 보상을 높이고 싶다고 일종의 온라인 시위를 한다고 상상해 보자. 플랫폼이라면 이러한 시위에 어떤 식으로든 반응할 플랫폼 운영자가 존재한다. 하지만 프로토콜은 프로토콜의 구현체를 만드는 개발자가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개발자가 결정권을 가지지는 않는다. 블록 보상을 높이는 방식으로 수정된 프로토콜이 제안되고 이러한 제안이 힘을 얻으면 누군가는 이를 구현한 구현체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내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이를 강제할 힘을 갖고 있는 사람이나 단체는 어디에도 없다.


블록체인 프로토콜은 포크를 활용해 중립성을 유지한다. 블록 보상을 높이자고 주장하는 채굴자 그룹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의도적인 ‘포크(Fork)’다. 포크는 기존의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분리된 네트워크가 생겨나는 현상이다. 의도적으로 불록 보상을 높게 설정한 프로토콜을 사용하는 새로운 네트워크를 출시하는 것이다. 기존의 계좌 잔액과 거래 데이터는 이 새로운 네트워크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 프라이빗 키가 사용 가능한 것도 물론이다. 그렇다면 포크를 시도한 채굴자들은 원하는 것을 얻었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현실로 들어오는 프로토콜 경제

비트코인은 실제로 프로토콜에 대한 지향점 차이와 이해관계 때문에 여러 번의 포크를 겪었다. 현재 비트코인은 정통으로 인정받는 비트코인뿐만 아니라 비트코인 캐시, 비트코인 사토시비전 등 여러 개의 포크체인과 그 기축 통화인 코인들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을 포크한 비트코인 캐시 채굴자들은 원하는 것을 얻었을까. 비트코인 캐시에서 주장한 것처럼 프로토콜이 지정하는 블록의 크기 제한을 키워 더 많은 거래들이 일어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 중 하나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 캐시는 다른 채굴자들과 비트코인 사용자, 투자자들의 충분한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했고 대부분은 기존의 블록의 크기를 유지한 비트코인 네트워크를 선택했다. 그 결과 2020년 12월 1개의 비트코인 캐시(BCH) 코인 가격은 비트코인(BTC) 1개 가격의 1.6%밖에 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비트코인의 채굴 규칙과 네트워크는 둘로 나눠졌지만 중립성이 훼손되지 않았다. 원래의 비트코인을 그대로 사용하고 싶은 사용자나 채굴자는 기존 네트워크에 남으면 되고 새로운 규칙이 더 좋은 이들은 떠나가면 된다. 중앙화된 운영 주체가 존재하는 플랫폼이었다면 한쪽으로 방향성을 정할 수밖에 없고 최종 결정과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은 플랫폼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변질되는 것을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프로토콜 경제를 현실 경제에 도입할 수 있을까. 최근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독점화를 가속화하는 플랫폼 경제를 보완할 수 있는 대안 경제 모델로 더 투명하고 공정한 ‘프로토콜 경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따라 ‘프로토콜 경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또 구체적으로 배달의민족을 사례로 들며 프로토콜 경제를 도입하면 배달의민족을 둘러싼 논란들을 해소하고 소상공인·배달부·플랫폼 사업자가 모두 상생할 수 있게 될지에 대해서도 많은 질문이 나오고 있다. 프로토콜 경제가 정말로 현실 경제에서 구현 가능한 것인지 판단하려면 블록체인의 기술적 속성을 정확하게 이해할 뿐만 아니라 비트코인을 비롯해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일어났던 다양한 분쟁들과 그에 대한 프로토콜의 분쟁 해소 사례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나아가 현실 경제의 플랫폼 경제 모델의 문제점들 중 프로토콜을 도입해 해결할 만한 것이 얼마나 있는지 실증적으로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6호(2020.12.07 ~ 2020.12.1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