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냉철한 시장 분석이 핵심…눈치 보지 말고 ‘더할 것’과 ‘덜어낼 것’ 정해야
전략을 구현하는 디자인 경영… ‘껍데기 포장’이란 오해부터 버려야 [박찬희의 경영전략]
[한경비즈니스 칼럼=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한때 디자인 경영이라는 말이 유행이던 시절이 있었다. 재무 수치나 챙기고 ‘인사가 만사’ 같이 빤한 말이나 되풀이하는 실망스러운 경영학에 나름 참신한 건수가 등장해서인지 그럴듯한 최고위 과정도 생기고 난데없이 전문가라고 나서는 이들도 생겼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디자인 경영은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보기 좋고 쓸모 있는 제품’을 만드는, 즉 산업 디자인을 마케팅에 얹어 보는 수준으로 이해되고 있다. 디자인 경영은 브랜드나 상품 기획의 과제들을 넘어 전략 방향을 설정하고 조직의 역량을 결집해 제품과 서비스로 구현하는 최고경영자(CEO)의 과제다. 제한된 자원으로 눈앞의 경쟁뿐만 아니라 미래를 대비하고 이를 위해 회사 안팎의 치열한 이해 대립 속에서 답을 찾는 경영자의 고민을 담지 못한다면 디자인 경영 역시 그럴듯한 말로 허영심과 호기심을 달랠 뿐이다.


‘독일 명품’ 티거 전차의 고민

전쟁 무기 개발은 디자인 경영의 대표적인 사례다. 제한된 비용 조건에서 전투 기능과 생존성을 위해 소재, 부품, 생산 과정, 운송과 보급에서 최선의 답을 찾아야 한다. 단순히 ‘보기 좋은’ 무기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전쟁의 성격과 전략 방향을 생각하지 않는 무기, 전투 현장의 사정에 맞지 않는 무기는 전쟁 역량을 낭비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티거(Tiger) 전차는 뛰어난 전력으로 미국의 셔먼이나 러시아의 T-34를 압도했다. 티거를 노획한 연합군이 뛰어난 전투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설계와 부품 구성에 감탄했듯이 티거는 독일 기계공업의 역량이 집약된 ‘장인의 명품’이었다.


당시 기갑부대 종사자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티거의 압도적 성능과 생존성을 인정한다. 하지만 전쟁 전체의 관점에서 ‘명품 전차’ 티거에 대한 평가는 다르다.


티거는 두꺼운 방호 장갑과 큰 주포(主砲), 견고한 구동 장치 때문에 중량 부담이 있음에도 우수한 기동력과 생존 능력을 보였다. 압도적 전투 역량으로 몇 배가 넘는 숫자의 연합군 전차를 격파한 사례들이 잇따라 알려지면서 전장에서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장인의 명품’은 대량 생산이 어렵다는 약점이 있었다.


제품 개념에 맞는 부품과 소재를 구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방호 장갑 확충, 주포 화력 확대 등 군 상층부의 다양한 요구들이 더해지자 전차의 설계가 복잡해지고 무게는 계속 늘어났다. 연료 소모도 커졌다. 무리한 성능 향상은 고장과 파손으로 이어져 기동 운영에 무리가 발생하는 경우가 생겼다. 크고 무거워진 전차는 열차의 폭에 맞지 않아 운반이 어려웠고 60톤에 달하는 전차가 고장 나면 기존 장비로는 감당할 수 없어 귀한 티거 전차를 견인차로 쓰기도 했다.


전투 지역의 교량이 버티지 못하니 도하 능력을 갖추라는 지시에 따라 설계가 더욱 복잡해지는 일도 벌어졌다. 결국 명품 티거 전차가 우월한 전투력으로 버텨도 정비와 보급이 받쳐주지 못하는 경우가 늘기 시작했고 연합군은 우월한 물량과 수송 능력으로 거점을 장악하며 압박했다. 연합군의 공군 전력이 더해지면서 티거 전차의 작전 공간은 더욱 위축되고 만다.


티거 전차의 사례는 전략 방향과 작전 체계와 동떨어진 제품·기능 수준의 우위는 전쟁 승리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점을 가르쳐 준다.


또 현장의 구체적 과제들이 제품과 기능 개선, 나아가 전략 방향의 수정으로 반영되지 못하는 ‘위아래가 따로 노는’ 체제의 한계도 보여준다. 티거의 우수한 성능은 독일군 상층부의 관심과 지원에 힘입은 결과다. 우선 보급과 정비 지원은 전투력과 생존성을 높였고 티거의 신화는 계속됐다.


믿고 자랑하는 전차이다 보니 원래 러시아 침공용으로 설계된 전차를 다른 전장 환경에도 계속 투입하는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다양한 성능 요구와 잦은 설계 변경으로 이어졌고 이는 부품들 사이의 호환성이나 수리 작업의 편의성을 크게 떨어뜨렸다. 부품과 기자재의 보급에도 부담이 커졌다. 정치적 관심과 지원이 오히려 독이 된 셈이다. 군의 최상층부가 명품 전차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키우는 판에 현장 지휘관들이 연료나 부품 공급, 정비·운송 같은 ‘지극히 실무적인’ 문제들을 제기할 수 있었을까. 하물며 소수 정예의 전차로 ‘전격 기동전’의 신화를 되살리자는 이들에게 연합군의 우월한 전시 생산 능력과 물량 투입, 공군 전력 사용 같은 ‘매우 전략적인’ 수준의 판단을 들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을까. 매우 어려운 일이다. 사실 그런 높은 수준의 솔직한 논의가 가능했다면 애초에 전쟁의 양상 자체가 달랐을 것이다.


스마트폰 디자인, 덜어내야 채울 수 있다

제한된 공간에 다양한 기능을 넣어 비용 제약과 성능 요구를 충족하는 공학 설계의 과제는 스마트폰이나 전차나 다르지 않다. 최고위층의 미래에 대한 의지가 제품 개념으로 주어지면 정치적 관심과 지원이 현장의 사정을 압도하기도 한다.


그런데 스마트폰은 전차와 달리 사용자의 요구가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시장에 반영되며 금융 시장에도 즉시 전달된다. 따라서 경영자의 전략 의지가 시장의 현실에서 무한정 멀어질 수 없다. 미래를 먼저 읽어 시장을 만들어 내는 경영자는 힘들지만 더 큰 대가를 얻게 된다.


스마트폰의 제품 설계에는 회사 안팎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반영된다. 카메라 모듈을 맡은 부문은 렌즈, 화상 신호 처리의 첨단 기술을 탑재하고 싶지만 두께와 무게의 제약에 부딪친다.


더 크고 선명한 화면을 얹고 싶지만 배터리 소모가 고민이고 앞으로 등장하는 다양한 디스플레이 장치에 연결하는 편이 낫다는 견해도 있다. 회사가 개발한 인공지능(AI) 기능을 위해 별도의 버튼을 달자는 주장에 더해 독자 운영체제를 탑재해 세계를 석권하자는 ‘웅대한’ 전략도 나온다. 물론 관련된 기술 생태계의 이익이 얽혀 있어 온갖 수단을 통해 경영자의 눈과 귀를 장악하는 게임이 벌어진다.
현명한 경영자는 소재·부품·장비·생산 과정은 물론 소프트웨어와 시스템 구성 전반의 내용을 종합하고 시장의 선호와 요구에 맞춰 제품으로 구현한다.


그 내용은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을 더할지의 냉철한 선택이다. 이를 위한 역할 배분과 통합이 디자인 경영의 핵심으로, 경영자의 폭넓은 이해와 전문가 집단의 지원이 필수적 조건이다.


보기 좋고 쓰기 편한 제품을 만드는 ‘산업 디자인’은 사용자 선호를 얻어내는 중요한 부분이지만 디자인 경영의 전부는 아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선견지명인지, 헛된 망상인지는 아무도 모르니 지휘부의 오판 때문에 전차병들의 신화로만 남은 ‘명품 전차’의 오류가 재현될 수도 있다. 실제로 비슷한 실수들은 스마트폰 생태계에도 많았다.


하지만 스마트폰 사용자는 전차병과 달리 ‘불굴의 투지’로 전장의 어려움을 견딜 필요가 없고 생사 여탈권을 쥔 힘센 ‘최고위층’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싫으면 사지 않고 불만을 어디든 쏟아낸다. 금융 시장은 작은 불만이나 호평도 놓치지 않고 투자에 반영한다. 전문가들도 자신의 몸값을 걸고 사용자를 포함한 생태계 전반의 동향을 해석해 의견을 낸다. 사용자들이 첨단의 영상보다 예쁜 색깔을 더 중시한다는 ‘비과학적’ 현상이 발견되면 인문학과 순수미술, 생태 심리의 연구를 동원해 선호 이유를 찾아낸다.


한 가지 더 있다. 잘못된 판단과 결정을 한 경영자는 쉽게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잘못된 전쟁과 전략 판단은 가려내 책임을 묻기가 매우 어렵다. 권력으로 우기며 버티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도 자본주의는 생각보다 좋은 제도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6호(2020.12.07 ~ 2020.12.1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