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사기’라고 단언했던 전문가들 사라지기 시작…‘기술과 상상력’이 발전 이끌어
비트코인,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비트코인 A to Z]
[한경비즈니스 칼럼=한중섭 한화자산운용 디지털 자산팀 팀장/‘비트코인 제국주의’, ‘넥스트 파이낸스’ 저자] 비트코인이 부활했다. 1비트코인 가격이 2000만원에 육박하며 2017년 광풍 당시 전고점 가격에 근접한 것이다. 올해 들어 가격이 2배 이상 뛴 비트코인은 주식·채권·금 등 여타 자산 대비 높은 가격 상승을 보이며 2020년 최고의 수익률을 낸 자산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2017년 비트코인 불 마켓(앞으로 강세가 예상되는 시장)과 2020년의 불 마켓은 성격이 다르다고 업계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이번 비트코인 불 마켓은 묻지 마 투기를 하는 개인 투자자가 아니라 미국 중심의 기관투자가가 이끌었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다.


일단 비트코인 투자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의 면모가 달라졌다. 2017년에는 규제 회색 지대에서 활동하는 가상 자산 거래소가 투자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축이었다. 하지만 2017년 말을 기점으로 미국·일본·유럽 등 금융 선진국을 중심으로 가상 자산 제도가 정비되면서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인터컨티넨털익스체인지(ICE)·피델리티·SBI·노무라 같은 금융 회사가 비트코인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또한 스퀘어·페이팔 같은 테크핀 회사들도 비트코인 매매·보관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게임의 판도가 달라진 것이다.


또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의 면모도 달라졌다. 2017년에는 암호화폐 공개(ICO) 광풍과 맞물려 비트코인으로 인생 역전하려는 사람들이 묻지 마 투기를 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비트코인 투기 열풍 때문에 김치 프리미엄이 생길 정도였다. 하지만 2020년 들어 비트코인을 ‘대체 자산’으로 취급하고 포트폴리오 투자의 일환으로 하는 투자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헤지펀드 스타 폴 튜더 존슨, 드라켄 밀러는 비트코인과 금을 비교하며 비트코인에 투자했다고 밝혔고 스퀘어·마이크로스트레티지 같은 나스닥 상장사들은 회사 자기 자본으로 비트코인에 투자했다. 게다가 300조원이 넘는 고객 자산을 운용하는 구겐하임 자산 운용사는 자사가 론칭할 매크로 펀드 비율의 최대 10%를 비트코인 관련 상품에 재간접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미국 규제 당국에 신고했다. 이들은 신중하게 위험과 수익을 고려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하는 투자자이지 ‘가즈아’를 외치는 투기꾼은 아니다.


‘디지털 금’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투자자들

마지막으로 미국 월가를 중심으로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이라는 스토리가 확산되고 있다. JP모간은 패밀리 오피스가 금 대신 비트코인을 투자처로 찾고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았고 씨티은행은 오늘날 비트코인을 1970년대 금과 비교하며 상당한 가격 상승이 가능하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또 가치 투자로 유명한 얼라이언스 번스타인은 비트코인이 포트폴리오에서 담당할 역할이 있다는 보고서를 냈고 세계 최대 자산 운용사 블랙록 역시 비트코인이 금을 대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참고로 블랙록의 라이벌인 피델리티는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금융 회사인데 피델리티는 지난 8월 미국 규제 당국에 비트코인 인덱스 펀드 신청을 하며 디지털 자산 시장을 선점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위는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가 아니다. 투자 권유는 더더욱 아니다. 다만 지난 3년간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대체 자산으로서 비트코인의 위상이 얼마나 올라갔는지를 증명하는 객관적인 사실을 나열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보기에 한국에서는 비트코인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심하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는 2018년 1월 JTBC에서 개최된 ‘유시민-정재승 비트코인 토론회’가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당시 유시민 작가와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뿐만 아니라 경희대 교수와 한국 최초 가상 자산 거래소 코빗 관계자(참고로 코빗은 2017년 넥슨에 900억원에 매각됐다)가 토론회에 참석했는데 유시민 작가와 정재승 교수의 인지도 때문인지 여전히 대중은 ‘유시민·정재승 비트코인 토론회’로 기억하고 있다.


필자는 최근 해당 토론회 영상을 다시 찾아봤다. 유시민 작가는 ‘비트코인은 화폐가 될 수 없다’는 대전제를 깔고 토론을 주도하며 시종 일관 비트코인을 폄훼했다. 그는 “화폐 발행권은 지금 국가 독점이에요”, “국가의 통제가 없는 화폐가 (통제가) 있는 화폐보다 더 신뢰할 만하다. 혹은 더 좋다. 이렇게 볼 근거는 하나도 없다고 봐요”라는 식으로 프레임을 형성해 실제로 비트코인으로 소액 결제해 본 사례가 얼마나 되는지 집요하게 추궁하며 비트코인을 사기로 치부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즉각적인 P2P 거래, 세계 어디서나 결제 가능, 무료 또는 낮은 수수료로 거래 가능. 비트코인 커뮤니티(Bitcoin.org)가 내걸고 있는 이 세 가지는 사기다. 사기를 치려고 했기 때문에 사기가 아니고 현실적으로 이렇게 되지 않고 있고 기술적인 면과 시스템을 검토해 볼 때 비트코인이 이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은 제로다.”


사실 유시민 작가의 우려대로 비트코인을 화폐로 취급하며 소액 결제의 매개체로 비트코인이 활용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오늘날 그리 많지 않다. 비트코인을 금과 유사하게 가치를 저장하는 자산(비록 가격 변동성이 크기는 하지만)으로 취급하는 것이 오늘날 글로벌 트렌드이다. 흥미로운 점은 중남미와 아프리카처럼 법정 화폐의 신뢰가 붕괴한 국가 혹은 미국의 금융 제재를 겪고 있는 이란 같은 국가에서 비트코인이 결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미래에는 비트코인이 결제 수단으로(소액 결제보다 주로 거액 결제에 활용될 공산이 크다) 활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유시민 작가는 불확실한 미래를 가지고 비트코인 문제를 판단하면 안 된다고 성급하게 결론 내렸다. 그는 “미성숙한 인간은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지만 미성숙한 돼지는 성숙해도 돼지”라는 말을 남겼는데 다양한 지표를 고려할 때(활성화 지갑 개수, 해시레이트 등의 기술 지표, 시장 참여자, 투자자 저변 확대, 인식 변화 등) 비트코인은 3년 전과 비교하면 오늘날 훨씬 성숙해 있다.


정재승 “저라면 페이스북 코인을 만들겠어요”

반면 정재승 교수는 과학자 출신답게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해 기술 발전의 가능성을 낙관했다. 그는 현재 비트코인의 미래에 의구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가상 자산을 제도화하고 양성화하면 이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산업을 육성할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만약 페이스북 마크 저커버그라면 3년 후, 5년 후 페이스북 코인이라는 것을 만들겠어요. 그래서 좋아요 1000번 이상 받은 글을 쓴 사람들에게 그 코인을 줘요. 그러면 양질의 글들이 페이스북에 올라올 것이고 그것이 광고 효과를 높일 것이거고.


그래서 페이스북 코인을 가진 사람은 아마존 코인과 바꿔 아마존에서 물건을 살 수 있고 월마트에서 물건을 살 수 있어요. 월마트 코인과 바꾸고….” 참고로 정재승 교수의 예상보다 빨리 2019년 페이스북은 리브라(지금은 디엠으로 이름을 바꿨다)라는 디지털 화폐 프로젝트를 공식화했다. 아직은 페이스북이 각국의 규제에 난항을 겪고 있지만 언젠가 페이스북이 중앙은행과 협력해 자사의 네트워크에서 통용되는 디지털 화폐를 출시할 것이라는 점이 필자의 견해다. 이렇게 되면 정재승 교수의 상상이 그대로 현실화 되는 것이다.


‘유시민-정재승 비트코인 토론회’ 영상을 다시 보고 필자는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와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를 떠올렸다. 두 교수 모두 경제학 전공으로, 공교롭게도 유시민 작가와 전공이 유사하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크루그먼 교수는 “2005년이 되면 인터넷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팩스 기기보다 대단하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질 것”라는 망언을 남겨 망신을 샀다. 참고로 크루그먼 교수는 비트코인은 악마라고 발언했다가 비트코인이 금보다 유용할 수 있다는 의견으로 은근 슬쩍 선회했다. 아마도 과거의 망언이 떠올랐을 것이다.


루비니 교수 역시 비트코인은 모든 사기의 근원이라고 발언했다가 최근에는 비트코인이 가치 저장의 수단으로 일부 활용될 잠재력이 있다고 인정했다.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본인이 스스로를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수록 더더욱 그렇다. 스크롤을 위로 올려 글을 처음부터 다시 읽고 세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8호(2020.12.21 ~ 2020.12.2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