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의 정치판]


법원, 잇달아 윤석열 검찰총장 손 들어줘


대통령 지지율 더 하락 땐 레임덕, 與 자중지란 가능성


이낙연 대표 등 비문, 청와대과 각세우는 전략 택할수도
與 ‘윤석열 찍어내기’, 제 발등 찍기로 돌아오다 [홍영식의 정치판]
[홍영식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최근에 연이어 나온 법원의 판결과 결정은 정치판에 분기점이 될 것 같다. 재판부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 대해 징역 4년형을 선고한 것과 법무부가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내린 정직 2개월의 징계에 대해 법원이 집행 정지 결정을 내린 것 등이다.


두 사안은 모두 윤 총장과 관련된 것이다. 법원이 모두 윤 총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윤 총장 찍어내기’에 몰두했던 여권은 큰 타격을 입게 됐다. 특히 윤 총장 징계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재가한 사안이어서 리더십 손상이 불가피하다. 정권 말 지지율 하락과 겹쳐 레임덕으로 가는 단초가 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반대로 윤 총장의 대선판 유인 요인은 더 커졌다. 하지만 윤 총장이 대통령과 맞서 싸운 모양새는 반드시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비록 임기 말이지만 여권이 동원할 수단은 많다. 윤 총장으로 인해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의 권위가 엄청난 손상을 입었다고 보는 친문(친문재인)계가 갖은 수단을 동원해 거센 공격을 퍼부을 게 뻔하다. 여권에서 진작부터 제기된 ‘윤석열=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1호 수사 대상자’라는 공식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윤 총장 징계와 맞물려 여권이 공수처 출범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이유이기도 하다.
향후 대선으로 가는 길목에서 여권과 윤 총장 간, 또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국민의힘과 윤 총장 간 등 복잡한 정치적 수 싸움이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법원의 두 판결과 결정이 갖는 의미를 짚어본다.


① 대선 주자로 더 세진 윤석열 파워

윤 총장은 대선 주자로서의 몸값이 더 높아졌고 파워가 더 세졌다. 무엇보다 정치 지도자로서 주요한 덕목인 배짱과 맷집을 보여줬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뿐만 아니라 대통령과 ‘맞짱’을 뜨는 것도 피하지 않았다. 역대 검찰총장 중 여권과 갈등을 벌인 사례는 적지 않지만 대통령과 직접 맞서지는 않았다. 그런 대결 구도가 되기 전 대부분 스스로 사퇴했다.


하지만 윤 총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법무부의 연이은 직무 배제 결정에 불복해 두 번에 걸쳐 집행 정지를 신청했다. 첫째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면 둘째는 문 대통령을 직접 대상으로 했다. 웬만한 배짱과 맷집이 아니면 이렇게 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게 정치권과 법조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두 번 연타석으로 승리함에 따라 본인의 뜻과 관계없이 윤 총장의 대선 길은 더 넓어지게 됐다. 과거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총리 시절 외교 안보 사안 보고 문제를 놓고 김영삼 대통령과 맞서면서 유력 대선 주자로 부각된 사례와 비슷하다.


② 윤 총장, 대선판 언제 등장하고 과제는 무엇

윤 총장은 2021년 7월까지인 임기를 채우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그간 싸움 명분으로 검찰의 독립성과 검찰총장 임기 존중을 꼽았다. 이 때문에 정치적 이유, 대선판 스케줄 때문에 임기를 그만두면 자기모순이 될 수밖에 없다. 다만 여권과의 갈등 전개 양상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이 직접 불신임 뜻을 밝힌다면 총장직을 고수하기 어렵다. 2020년 10월 국정 감사에서 윤 총장은 “(문 대통령이) 흔들리지 말고 임기를 지키면서 소임을 다하라는 말씀을 전했다”고 한 바 있다. 이는 역으로 말하면 문 대통령이 신임하지 않는다면 물러나겠다는 뜻과 같다.


윤 총장이 정치권으로 발길을 옮길지는 미지수다. 본인은 “퇴임 후 개를 키우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국정 감사에서 한 ‘퇴임 후 봉사’ 발언은 모호하다. 윤 총장을 잘 아는 법조계 인사는 “국정 감사 자리에서 정치에 뜻이 없더라도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 아무래도 힘이 빠지지 않겠느냐”며 “검찰총장으로서 반대파들과의 싸움에서 파워를 가지려면 유력 대선 주자로 언급되는 것이 유리하지 않겠느냐. 그런 점에서 여지를 남겨 두는 발언을 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치권은 대선에 나오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국민의힘 내에선 이미 윤 총장이 대선판에 나올 것에 대비해 움직이는 전·현직 의원들이 적지 않다. 정진석 의원을 중심으로 충청 대망론을 띄우고 있다. 윤 총장은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부친은 충남 공주 출신이다. 윤 총장과 대학(서울대 법대) 시절부터 가깝게 지내 온 4선 출신 유기준 전 의원도 ‘윤석열=대선 후보’ 밑자락 깔기 작업을 하고 있다.


대선판에 나온다면 과제도 있다. 정치 리더십에서 맷집과 배짱이 중요하지만 대선 주자는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지지율 상승은 ‘반문 정서’에 힘입은 것이 크지만 대선 주자로선 경제와 외교·안보 등에 대한 식견과 통찰력이 필요하다. 혹독한 검증 과정을 넘어서느냐가 관건이다.


③ 추미애의 무리수…“면도날 써야 할 때도 도끼만 휘둘러”

여권 내에선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온데 대해 추 장관의 무리수와 헛발질, 독불장군식 밀어붙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한 중진 의원은 “애초부터 절차적 정당성과 위법 논란에도 불구하고 징계위원회를 무리하고 급하게 밀어붙인 것은 실책”이라고 했다. 또 “검찰이라는 공룡을 상대로 싸울 땐 정교한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며 “면도날을 써야 할 때도 있는데 추 장관은 도끼만 휘두르다가 검란(檢亂)을 부르면서 제풀에 나가떨어진 꼴이 됐다”고 비판했다.


그 결과는 연전연패. 이는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 전체에 엄청난 부담이다. 또 다른 민주당 의원은 “추 장관의 헛발질로 윤 총장의 정치적 몸집만 키워준 꼴이 됐고, 대통령의 사과를 불렀다. 대통령 위상을 엄청나게 손상시켰고 여당의 정치적 선택을 어렵게 했다”고 꼬집었다. 이 때문에 여권 내에선 추 장관 책임론이 제기된다. 이미 사의를 표명한 만큼 다음 개각 때 물러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문 대통령으로선 후임을 뽑기도 쉽지 않게 됐다. 임기 말 여권이 추진하는 이른바 검찰 개혁 마무리를 위해 강단 있는 인사를 발탁하고 싶지만 자칫 또 윤 총장과 맞서는 모양새가 되는 것이 부담이다.


④ 돌아올 수 없는 강 건넌 여권-윤 총장, 사활 건 싸움

이번 사태로 문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이 입은 상처는 깊다. 문 대통령이 “법원의 (윤 총장 징계 효력 중단)결정을 존중한다”며 “결과적으로 국민들께 불편과 혼란을 초래하게 된 것에 대해 인사권자로서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했지만 난국 돌파를 위한 뾰족한 수 찾기는 쉽지 않다.


마지노선으로 일컬어지는 대통령 지지율 40%대가 깨지고 내려간 것은 ‘추-윤 사태’의 여파가 컸다. 이는 레임덕으로 가는 길목으로 여겨진다. 이미 검찰이 돌아섰다. 공직자들의 복지부동을 가져오고 이는 다시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져 레임덕이 발생하는 역대 정권의 특징이 이번에도 나타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 때문에 친문을 중심으로 한 여권은 배수진을 치는 양상이다. 윤 총장이 월성 1호기 자료 파기 사건, 라임-옵티머스, 울산시장 선거 하명 수사 의혹, 신라젠·우리들병원 사태 등 정권 연루 의혹이 있는 사건들을 깊게 파헤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자칫 레임덕을 가속화할 수 있어 윤 총장과 사활을 건 싸움은 불가피해 보인다. 우선 공수처를 동원해 윤 총장 찍어내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극단적으로 문 대통령이 윤 총장을 불신임할 수도 있다.


다만 그러면 여론이 받쳐줄지가 관건이다. 여론이 돌아선다면 여권으로선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는 여당 내에서 친문과 비문 사이 권력 투쟁을 촉발할 수 있다. 유력 대선 후보인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지금까지의 친문 우호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청와대와 각을 세우는 전략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 찍어내기’가 여권에 부메랑으로 돌아와 제 발등을 찍는 양상이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9호(2020.12.28 ~ 2021.01.0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