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리포트]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환경의 중요성
-‘그린 빌딩’과 ‘그린 파이낸스’의 연관성 주목해야
부동산 투자에도 대세가 될 ‘ESG’
[정리=한경비즈니스 최은석 기자] 이번 호 화제의 리포트는 이경자 삼성증권 애널리스트가 펴낸 ‘부동산의 ESG, 선택이 아닌 필수’를 선정했다. 이 애널리스트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부동산 투자에도 ESG 바람이 불고 있다”며 “기후 변화가 야기할 리스크 등을 파악해 부동산 투자의 원칙을 다시 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주목 받는 ‘그린 투자’

ESG는 기업과 자산의 비재무적 요소가 아닌 재무적 요소가 되고 있다. 신용 평가 기관이 ESG를 주요소로 고려해 기업의 존속을 결정하는 등 ESG는 선택이 아닌 생존 전략이 됐다.

2014년 18조 달러였던 글로벌 ESG 투자 규모는 2030년 100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ESG 투자의 대부분은 주식과 채권 등 전통 자산이 차지한다. 부동산의 비율은 3%에 불과하다. 하지만 부동산 자산군에서도 ESG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건물은 전체 에너지 소비의 약 40% 비율을 차지한다. 부동산은 한편 자연재해 등 기후 변화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대표적 자산으로 꼽힌다. 부동산 투자에도 ESG를 연관시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디스는 2019년 11월 엑슨모빌의 등급 전망을 ‘안정적(stable)’에서 ‘부정적(negative)’로 조정했다. “ESG 관련 우려는 화석 연료 산업국에서 두드러지며 규제 기관과 투자가들의 압력에 놓여 있다”고 밝혔다. ESG 평가가 엑슨모빌 등급 전망 하향의 주요인 중 하나였다고 표명한 셈이다.

92년 만에 다우지수에서도 퇴출되는 등 저탄소 경제에 적응하지 못한 엑슨모빌의 사례는 채권과 주식 시장에 충격을 줬다. 그간 우리가 어렴풋이 인식하던 ESG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단초였다. 이제 주식과 채권뿐만 아니라 부동산을 포함한 대체 투자 시장에서도 이와 관련한 변화가 빨라지고 있다.

ESG는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Environment),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 지배 구조(Governance) 등 기업이나 비즈니스의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는 요소다. 비재무적 요소였던 ESG 리스크가 기업과 자산의 손익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최근 주요 기업 신용 평가 기관들이 ESG를 주요소로 고려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ESG는 기업의 생사를 결정하는 주요인이 됐다.

2020년은 그 어느 때보다 ESG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한 해였다. 당장 2021년이면 파리기후협약 발효에 따른 새로운 국제적 기후 체제가 시작된다. 이에 맞춰 주요국들이 탄소 중립을 선언하는 추세다. 파리기후협약 탈퇴와 함께 국제적 흐름에 동떨어진 움직임을 보이던 미국도 조 바이든 대통령 후보가 당선되면서 이에 동참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ESG는 최근 들어 갑자기 부상한 주제가 아니다. 1950년대 ‘미국전기노동자협회’가 운용 자금을 주택 프로젝트에 투자하거나 ‘유나이티드광산근로자조합’이 의료 시설에 투자한 것 등이 ESG의 초기 실천 사례다. 197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의 ‘탄압 정권(Apartheid regime)’ 사례는 ESG가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 사례다.

미국의 레온 설리번 목사는 1971년 ‘설리번 원칙(Sullivan principles)’이라는 윤리 강령을 설립하고 이에 위배되는 남아공 기업에 투자한 미국 기업을 조사했다. 미국 정부는 이를 토대로 남아공의 많은 기업에 투자 금지 조치를 취했고 정권이 퇴출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2006년 유엔의 책임투자원칙(PRI) 주도로 ‘책임 투자 원칙’이 제정되고 이에 서명하는 글로벌 연기금이 늘어났다. ESG 투자의 시발점이었다.

최근 글로벌 운용업계에서 ESG의 중요성이 확대되며 이를 의무적으로 고려하는 기관이 늘고 그 기준도 엄격해지고 있다. 한국 또한 비록 초기 단계지만 ESG 전략을 운용 포트폴리오에 적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상장사를 대상으로 ESG 등급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GRI) 가이드라인에 기반한 ‘지속 가능 경영 보고서’를 발간하기 시작했다.

부동산 역시 ESG에 의거한 투자 판단의 중요성이 부상하고 있다. 한국은 아직 부동산 투자에서 ESG 전략을 활용하는 사례가 많지는 않다. 반면 미국의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 네덜란드의 ‘네덜란드공적연금(ABP)’, 캐나다의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 등 글로벌 주요 연기금은 부동산 투자 시 ESG 기준을 중점 고려한다. 주로 부동산의 에너지 효율, 자원 소모량 등 환경(E)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긍정적인 부분은 한국에서도 ESG를 준수한 건물이 차츰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운용하는 서울 삼성동 ‘오토웨이타워’가 대표적이다. 이 건물은 2019년 글로벌 부동산 지속 가능성 벤치마크(GRESB) 평가에서 아시아 지역 비상장 오피스 부문 1위, 글로벌 상위 8%에 해당하는 성과를 거뒀다. GRESB 최고 등급인 ‘5Star’를 획득했다. 또한 미국 그린빌딩위원회에서 개발·시행하는 친환경 건축물 인증 제도(LEED)의 ‘골드’ 등급 인증을 획득했다. 이 오피스는 실시간 에너지 진단 웹서비스(Soft BEMS)를 이용해 건물의 에너지 소비 절감을 통한 탄소 배출량 절감을 실천한다.

특히 최근 한국 부동산 투자에서 해외 연기금도 블라인드 펀드의 약정에 ESG 조건을 내세우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이 같은 투자 트렌드에 부응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ESG 정책을 수립하고 향후 운용할 부동산 중 그린 빌딩으로 관리할 건물에 한해 GRESB 평가를 받을 계획이다.

사례는 또 있다. 한국의 주요 물류센터로 꼽히는 ‘부천로지스틱스파크’와 ‘고양로지스틱스파크’는 2020년 환경 분야 공인 인증 기관인 국제WELL건축연구원(IWBI)으로부터 아시아·태평양 지역 물류센터 최초의 WELL 골드 등급, LEED 등급을 획득했다. 에너지 절약과 재활용 시스템이 도입된 물류센터였던 덕분이다.
부동산 투자에도 대세가 될 ‘ESG’
◆한국 부동산업계도 ‘ESG 바람’ 고려해야

기관투자가들이 ESG를 실천하는 부동산 투자를 확대함에 따라 관련 상품과 지수 개발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는 주로 유동성이 풍부하고 상품화가 용이한 상장 리츠 중심으로 이뤄진다. 2017년 미국 운용사 ‘버트(Vert)’는 ESG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펀드 ‘글로벌 지속 가능 부동산 제도 클래스(Global Sustainable Real Estate Institutional Class)’를 출시했다. 온실가스 감축, 그린 빌딩 인증 등을 바탕으로 리츠의 점수를 매기고 화석 연료 산업과 관련 있는 리츠는 포트폴리오에서 제외하는 운용 전략이었다.

2019년 파이낸셜타임스스톡익스체인지 러셀(FTSE Russell)은 기존 리츠 지수에 지속 가능성을 적용한 ‘FTSE 유럽부동산협회 미국리츠협회(NAREIT)’ 그린 지수를 발표했는데 친환경 성과가 높은 리츠의 가중치를 높게 설계했다. 최근 일본의 닛케이는 GRESB 등급에 따라 ESG 성과를 고려하는 ‘닛케이 ESG REIT 지수’를 개발했다.

기후 변화에 대한 위기의식이 고조되면서 글로벌 리츠 대부분이 ESG 기준을 만들어 운영하는 추세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ESG 준수 여부를 투명하고 상세하게 보고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탄소 배출량과 에너지 사용량 두 가지를 보고한다. 2018년 25개 리츠가 탄소 배출량을 보고했다. 2019년에는 관련 리츠가 31개로 늘었다. 에너지 사용량을 공개한 리츠는 2018년 25개에서 2019년 31개로 증가했다. 시가총액 기준 리츠의 51%가 관련 정보를 보고하기 시작했다.

물 사용량과 폐기물 관리 보고도 크게 늘어 모든 항목에서 공개 비율이 10~12% 증가했다. NAREIT 협회 회원의 58%는 기후 변화 위기를 핵심 비즈니스 프로세스에 반드시 고려한다. 35%는 기후 변화와 관련된 리스크를 매년 측정한다.

2020년 6월 NAREIT에 따르면 상위 100개 리츠 중 89%가 ESG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조만간 모든 리츠가 ESG 관련 정보를 필수적으로 공시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부동산의 밸류에이션에서 ESG는 주요 평가 기준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자산별로 충분한 ESG 관련 데이터를 공시하는 것이다.

다만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선 쉽지 않은 일이다. 비교적 용이한 데이터가 될 수 있는 그린 인증도 아직 적은 수의 자산만이 해당된다. 인증 과정이 엄청나게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최근 유럽에서 관련 인증 통합 작업을 고려하는 이유다.

대부분의 국가가 2030년을 ‘탈탄소’ 혹은 ESG와 관련해 의미 있는 성과를 내는 원년으로 삼고 있다. 향후 10년간 이 같은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 부동산업계 또한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자산별 정보 축적이 선행돼야 한다.

choie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9호(2020.12.28 ~ 2021.01.0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