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라이벌 경영 맞수 2021년도 달린다]
-김인규 하이트진로 사장 vs 배하준 오비맥주 사장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한국 맥주 시장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주류산업협회가 과당 경쟁 등을 이유로 2014년부터 업체별 점유율과 같은 통계를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다만 시장 조사 기관 등이 공개한 자료 등을 살펴보면 ‘카스’를 앞세운 오비맥주는 10여 년 넘게 압도적인 격차로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2020년부터 오비맥주의 굳건했던 시장 지배력에 대해 서서히 의문부호가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하이트진로의 ‘테라’가 출시 직후부터 판매 돌풍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여전히 오비맥주가 맥주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 중인 것은 분명하다. 다만 테라의 인기에 힘입어 하이트진로가 무섭게 치고 올라오면서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머지않아 맥주업계의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의 두 전문경영인(CEO)이 2021년 맥주 시장점유율을 놓고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배경이다.

◆위기 상황에서 등장 ‘공통점’


김인규 하이트진로 사장과 배하준 오비맥주 사장은 위기의 시기에 ‘구원투수’로 등장했다는 사실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김 사장이 하이트진로의 수장이 된 시기는 2011년이다. 1989년 하이트맥주에 입사해 30년여 동안 한 회사에서 인사와 마케팅, 경영기획, 영업 업무 등을 두루 경험했던 그는 공교롭게도 이전까지 맥주 시장을 주름잡던 하이트진로가 오비맥주에 점유율을 추월당한 첫해에 회사를 이끌게 됐다.
김인규 vs 배하준, ‘테슬라’ 돌풍 올라탄 하이트진로…신제품 쏟아내며 1위 수성 나선 오비맥주
이후 약 10년이 흘렀는데 현재 상황만 놓고 본다면 김 사장의 경영 능력이 단연 돋보였다고 평가할 만하다. 김 사장의 경영 성과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단연 테라다. 맥주 시장 1위 재탈환을 위해 고민하던 그는 판세를 뒤엎을 신제품 출시를 직원들에게 주문한다. 기존 주력 제품이었던 ‘하이트’ 맥주만으로는 더 이상 오비맥주를 따라잡기 어렵다는 판단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그렇게 5년간 제품 콘셉트를 구상하고 2년간의 개발 과정을 거쳐 2019년 마침내 테라를 시장에 선보였다. 테라는 소비자 니즈를 파악하고 반영해 기존 맥주와 차별화된 원료와 공법을 적용한 것이 특징이다. 호주 내에서도 청정 지역의 맥아를 엄선해 100% 사용했고 발효 공정에서 자연 발생하는 리얼 탄산을 넣었다.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청정 라거’ 콘셉트를 앞세운 테라는 출시 100일 만에 1억 병(330mL 기준) 판매를 돌파하며 빠르게 시장에 안착했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며 출시 첫해부터 하이트진로의 주력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또 테라는 하이트진로의 소주 브랜드 ‘참이슬’의 판매량을 높이는 결정적인 역할도 했다. 테라와 참이슬로 만드는 폭탄주 조합을 의미하는 ‘테슬라’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내며 맥주와 소주 사업 모두 시너지를 낼 수 있었다. 여기에 멈추지 않고 소주 사업 부문에서 출시한 레트로(복고풍) 콘셉트의 ‘진로 이즈 백’까지 큰 인기를 끌었다. 새롭게 출시한 신

제품들이 연이어 판매 대박을 터뜨리면서 하이트진로는 반등의 계기를 마련했다. 특히 2020년 들어 신제품 효과를 톡톡히 누리며 가파른 실적 상승세를 이어 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외식 산업 침체로 주류 시장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집에서 마시는 ‘홈술’ 증가가 이 부분을 상쇄한 것이다. 테슬라 돌풍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반면 한정된 내수 시장에서 이 같은 하이트진로의 대약진은 경쟁사인 오비맥주엔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그리고 그 위기는 곧 현실로 다가왔다.

오비맥주는 2015년 이후 계속 유지해 왔던 실적 상승세가 2019년 결국 한풀 꺾이고 말았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배하준 사장이다. 2019년 말 취임해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오비맥주의 경영을 이끌기 시작했다.

◆신사업 발굴 경쟁도 치열


그는 오비맥주의 모기업인 AB인베브에서 20여 년간 영업과 물류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 온 글로벌 맥주 전문가다. 벨기에 출신인 그의 본명은 벤 베르하르트인데 취임 후 대내외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한국 이름을 배하준으로 결정했다.

본명(베르하르트)을 감안해 성씨를 배(裵)로 정했고 물 하(河), 높을 준(峻) 자를 썼다. ‘물이 높은 곳에서 아래로 흐르듯 바다처럼 무한한 가능성으로 이끄는 리더십’이라는 의미를 담았다는 설명이다. 배 사장 역시 악조건 속에서도 다양한 전략들을 통해 경영을 맡은 첫해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인규 vs 배하준, ‘테슬라’ 돌풍 올라탄 하이트진로…신제품 쏟아내며 1위 수성 나선 오비맥주
그는 코로나19 사태로 주류 소비의 중심축이 외식과 유흥 시장에서 가정으로 이동했다고 판단했다. 다양한 소비자 니즈를 만족시키기 위해 오비맥주가 2020년 활발하게 신제품을 쏟아낸 배경이다.

도수를 7도로 높인 발포주 ‘필굿 세븐’을 출시했고 시장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는 무알코올 맥주 ‘카스 0.0’ 등을 선보이며 다양한 맛의 맥주를 원하는 수요를 끌어안았다.

특히 카스 0.0은 출시 한 달 만에 쿠팡에서 약 1만3000 박스가 팔리면서 흥행 돌풍을 예고했다. 주력 제품인 카스 역시 역동적인 패키지 디자인을 새롭게 선보이면서 소비자들에게 새롭게 다가갔다. 정확한 실적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다양한 신제품 출시에 힘입어 오비맥주 역시 실적 선방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두 CEO를 필두로 한 양 사의 점유율 싸움은 2021년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두 CEO는 맥주 이외의 분야라고 할 수 있는 ‘신사업’ 분야에서도 경쟁을 예고하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2020년 두 CEO의 행보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스타트업과의 협업이다.

김 사장이 이끄는 하이트진로는 2020년 4개 스타트업에 투자를 진행했다. 가정 간편식(HMR) 스타트업 ‘아빠컴퍼니’, 리빙 테크 기업 ‘이디연’, 스포츠 퀴즈 게임 업체 ‘데브헤드’, 푸드 플랫폼 기업 ‘식탁이있는삶’ 등과 지분 투자 계약을 했다. 잠재력 있는 스타트업을 발굴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겠다는 목적 때문이다. 투자를 결정한 스타트업과의 조인트 벤처 설립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놓고 신사업을 구상 중이다.
김인규 vs 배하준, ‘테슬라’ 돌풍 올라탄 하이트진로…신제품 쏟아내며 1위 수성 나선 오비맥주
배 사장 역시 스타트업과 손잡고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고 있다. 최근에는 그가 모색하는 방향이 서서히 수면 위로 나타나기도 했다.

오비맥주는 최근 푸드 업사이클 스타트업 리하베스트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맥주 부산물을 활용한 에너지바·그래놀라·시리얼 등의 식품을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카스 맥주 제조 과정에서 자연스레 발생하는 맥주박으로 만든 에너지바를 활용한 제품이다.

맥주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은 영양분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동안 이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한 규제 때문에 식품 원료로 활용하지 못했다. 하지만 관련 고시가 개정되면서 규제가 풀렸고 오비맥주는 이 같은 식품을 내놓기로 결정했다. 오비맥주가 건강에 초점을 맞춘 식품을 맥주의 뒤를 잇는 ‘제2의 성장 동력’으로 키울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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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10호(2021.01.04 ~ 2021.01.10)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