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룰’ 적용, 해외 투기 자본 경영권 침해 용이해져
-피해 최소화할 법안 필요성 대두
“LG그룹 사례는 전초전에 불과”…기업 울리는 상법 개정안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2020년 12월 14일 미국 헤지펀드인 화이트박스어드바이저스(이하 화이트박스)가 LG그룹의 계열 분리에 반대하는 서한을 (주)LG에 보냈다. 화이트박스는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 출신인 사이먼 왝슬리가 이끄는 펀드다. 정확한 수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화이트박스는 현재 LG 지분 0.6% 정도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이트박스는 서한에서 “더 좋은 대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LG 이사회는 가족 승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액 주주들을 희생시키는 계획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며 주주들에게 반하는 행동을 그만둘 것을 촉구했다.

재계에서는 향후 LG와 비슷한 사례들이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연초 주주 총회를 앞둔 가운데 단기 차익을 노리는 해외 투기 자본의 경영권 공격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기업들의 숱한 반대 속에서도 2020년 12월 9일 상법 개정안이 마침내 국회를 통과한 것이 그 배경이다.


◆코로나19로 어려운데 규제 ‘대못’까지

재계가 잇따라 통과된 기업 규제에 떨고 있다. 이른바 ‘기업 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뿐만 아니라 노동조합법 개정안 등 친노동 법안까지 일사천리로 국회를 통화했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불확실한 경영 환경이 이어지는 와중에 규제라는 ‘대못’까지 박히면서 기업 경영 활동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우려가 큰 것은 단연 ‘감사위원 분리 선임’, ‘다중대표소송제’ 등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이다. 특히 문제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규정은 이 법안의 핵심 중 하나인 ‘감사위원 분리 선임’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상법 개정안에 담긴 감사위원 분리 선임은 상장사가 감사위원 중 최소 1명을 이사와 별도로 선출하도록 규정하는데 이 과정에서 일명 ‘3% 룰’을 적용받는다. 즉 최대 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한다는 얘기다.

물론 그동안에도 ‘3% 룰’이 존재해 왔다. 하지만 주주 총회에서 이사를 일괄 선임한 뒤 그중 감사위원을 선출해 왔기 때문에 최대 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개정안은 감사위원을 분리 선출하고 최대 주주의 의결권까지 제한하도록 하고 있다. 즉 감사위원 1인은 최대 주주 등이 원하지 않는 사람으로 결정이 될 확률이 높아진 것이다. 감사위원은 기업의 사업 계획과 같은 자세한 정보들을 세밀히 들여다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3% 룰’을 활용하면 해외 투기 자본이나 경쟁사 측 인사도 감사위원의 자리에 이전보다 쉽게 오를 수 있게 된다. 경영권을 침해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상법 개정안에 명시된 개별 3% 룰을 적용해 한국 주요 기업의 감사위원을 분리 선출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면 한국의 주요 기업들이 대부분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분석에 따르면 2020년 11월 기준 시총 상위 10대 기업의 최대 주주와 특수 관계인 지분율은 평균 30.41%로 나타났다. 그중 ‘개별 3% 룰’을 적용하면 의결권 행사 가능한 지분율의 평균은 5.52%에 불과하다. 반면 외국인 지분율 평균은 38.12%에 달한다.

예컨대 삼성전자의 최대 주주와 특수 관계인 지분율(2020년 11월 기준)은 21.21%이지만 개별 3% 룰을 적용하면 의결권은 12.52%로 뚝 떨어지게 된다. 이와 관련해 경총은 “외국인 지분 보유 비율이 높은 대기업은 이사회 진입 비용이 대폭 낮아져 해외 펀드나 경쟁 세력 등의 이사회 진입 시도가 증가하고 최대 주주의 선임권이 무력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그간 재계는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이 기업 경쟁력을 크게 약화시킬 것이라는 이유를 들며 정치권을 설득하기 위해 주력해 왔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이런 목소리를 듣고 법안 일부의 처리를 연기하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하지만 상법 개정안 통과를 막아서는 데 결국 실패했다. 재계의 반발이 잇따르자 결국 민주당이 한 발 물러섰지만 해외 자본의 경영권 침해를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당은 애초 대주주와 특수 관계인 제한 지분을 모두 합쳐 3%의 의결권만 인정하는 상법 개정안을 구상 중이었다. 이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끊이지 않으면서 결국 개별 주주별로 의결권 3% 제한으로 수정해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예를 들어 최대 주주와 특수 관계인 3명이 회사 지분을 각 10%씩 보유하고 있는 기업은 감사위원 선임과 관련한 의결권을 각각 3%씩 총 12%만 행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한국의 주요 기업들이 헤지펀드의 공격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바뀌게 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특히 지주회사는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한국 주요 기업들은 정부의 지배 구조 개편 요구에 발맞춰 잇따라 지주사 체제를 도입한 상태다. 이에 따라 지주사 계열사들은 최대 주주와 특수 관계인이 지주사 한 곳인 곳이 상당수다.

SK텔레콤을 예로 들면 현재 최대 주주는 SK(주)다. 26.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 특수 관계인 4인의 지분율은 0.00%대에 불과하다. 현재 상황이라면 회사 측이 확보할 수 있는 의결권은 오직 3%뿐이다. 정부가 개선을 요구해 온 순환 출자 구조를 유지한 기업이 경영권 방어에 유리해진 아이로니컬한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LG그룹 사례는 전초전에 불과해”

특히 기존 감사위원회의 임기 만료를 앞둔 기업들은 2021년 초 주주 총회를 앞두고 현재 비상이 걸렸다. 이들 기업 사이에서는 2003년 SK그룹을 공격한 소버린자산운용(이하 소버린)과 같은 사례가 급증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소버린은 2003년 4월 SK(주) 지분 8.6%를 사들이면서 한국에 등장했다. 이후 계속 지분을 확대해 나간 소버린은 결국 SK(주)의 2대 주주까지 올라섰다.

그리고 당시 부당 내부 거래와 분식회계 혐의로 실형을 선고 받았던 최태원 회장에게 SK그룹 이사직 사퇴를 요구하는 등 경영권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실패였지만 2004년 주총에는 자신들이 내세운 이사들을 선임시키려고 했고 또한 2005년에는 최태원 회장의 연임을 반대하고 나서며 경영권을 호시탐탐 넘봤다. SK 측은 우호적 지분 확보, 이른바 ‘백기사’ 모집에 나서는 등 숱한 홍역을 치르면서 경영권을 결국 지켜 낼 수 있었지만 당시 상법에 감사위원의 분리 선임과 ‘3% 룰 ’이 명시돼 있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여러 해외 투기 자본들이 지분 쪼개기를 통해 3% 룰을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감사위원 분리 선임 제도를 활용해 이사회를 장악하고 기업 경영을 간섭하는 수단으로 악용하며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다.

이런 재계의 우려는 점차 현실이 돼 가고 있는 모습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된 뒤 불과 1주일도 채 안 된 시점에서 화이트박스의 LG그룹 사건이 일어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며 “곧 주요 대기업의 주주 총회가 잇따라 예정된 사실을 감안하면 LG그룹의 사례는 ‘전초전’에 불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무기력한 야당에도 비판 쏟아져

해외 헤지펀드가 ‘지분 쪼개기’ 방식으로 한국의 주요 기업 이사회에 마구잡이로 사외이사를 선임하고 든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말도 나온다. 단기 수익을 노리는 해외 펀드가 상법 개정안의 ‘3% 룰’을 악용할 소지가 크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예컨대 소버린 사태만 보더라도 SK의 경영권 방어로 결론이 났지만 ‘국부 유출’ 논란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소버린은 약 2년 동안 SK그룹의 기업 지배 구조 개선 기대감을 시장에 던져주면서 주가를 끌어올렸다. 1768억원을 투자한 소버린이 2년 3개월 새 투자 원금의 4배가 넘는 8200억원이라는 거액의 수익을 한국에서 챙기고 떠났는데 비슷한 사례들이 속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재계 관계자는 “일부 정치인들의 무리한 입법 끝에 한국 기업에 경영 리스크가 초래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고 비판했다.

한쪽에서는 상법 개정안 통과를 두고 정부와 여당을 비판하는 재계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자칫 국부 손실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입법을 당·정·청 차원에서 무작정 밀어붙인 ‘억지 입법’이라는 날 선 비판도 제기된다.

상법 개정안은 2020년 6월 법무부가 입법 예고한 후부터 국회 본회의 통과(2020년 12월)까지 불과 6개월 동안 빠르게 진행됐다. 여당과 청와대 역시 총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21대 국회 들어 박용진 의원과 박주민 의원 등이 각각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주목할 것은 박용진 의원안의 감사위원 분리 선임 규정은 ‘합산 3%’ 룰이 적용되지 않은 반면 박주민 의원안의 규정은 사외이사 전체에 ‘합산 3% 룰’을 적용하도록 하는 등 법무부가 내놓은 개정안과 조금씩 달랐다는 사실이다. 이를 두고 재계 관계자는 “여당 의원들이 정부안과 유사 법안을 중복 발의하면서 현 정부의 국정 과제 추진에 힘을 실어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직접 나섰다. 2020년 10월 열린 국회 시정 연설에서 “공정 경제(기업 규제) 3법을 처리해 협력해 달라”고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역시 2020년 10월 초 언론계와 회동을 가지며 상법 개정안의 필요성을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주요 언론사 편집국장·부장단과 잇따라 만난 자리에서 ‘감사위원 분리 선임(합산 3% 룰)’ 규정을 언급하며 “감사위원의 독립성 확보는 외국에서도 중요한 가치다. 재계에서 ‘법 개정 시 해지펀드의 놀이터가 된다’고 하는데 과장된 면이 크다”고 주장한 바 있다.


법안을 심의하는 법사위에서도 민주당 의원들이 주축이 돼 일사천리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수차례 민주당과 경제계가 정책 간담회를 갖기도 했지만 경제계가 제시한 우려와 대안은 모두 반영되지 않았고 재계의 기대감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는 설명이다.

야당 역시 이 과정에서 제 역할을 못했다는 주장도 있다. 만약 국민의힘을 비롯한 야당이 총력 저지에 나섰더라면 ‘일방통행’식의 상법 개정안 처리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재계에서 들려온다.
야당은 여당의 상법 개정안 국회 의결이 임박했는데도 필리버스터 신청은커녕 반대 토론에 나서지도 않았다. 상법 개정안을 의결할 때고 본회의에 참여하지 않은 채 피켓을 들고 ‘독재로 흥한 당 독재로 망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항의하는 데 그쳤다.

이처럼 야당이 힘을 쓰지 못한 것은 2020년 9월 취임한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영향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김 위원장은 청와대 경제 수석이던 1987년 개헌 당시 헌법에 ‘경제의 민주화’라는 개념을 반영한 주역이다. ‘경제 민주화’의 필수 과제로 ‘재벌 개혁’을 강조해 왔다. 이런 김 위원장의 영향 아래 현 정부의 상법 개정안 추진에 적극 반기를 들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한 정계 관계자는 “당(국민의힘) 내부적으로 ‘경제 민주화’를 강조한 김종인 위원장의 지론이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고 전했다.
“LG그룹 사례는 전초전에 불과”…기업 울리는 상법 개정안
재계 관계자는 “재계 의견은 거의 반영하지 않는 일방통행식 법안 처리가 강행됐다”며 “더 늦기 전에 경제계가 제시했던 우려와 다양한 대안들을 다시 들여다보고 해외 투기 자본에 의한 한국 기업들의 경영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안 입법에 대한 검토가 꼭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LG그룹 사례는 전초전에 불과”…기업 울리는 상법 개정안
이 같은 재계의 우려는 주요 경제 단체장들의 신년사를 통해서도 나타났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신년사에서 “우리 사회에서도 무리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기보다 자율 규범이 형성될 수 있도록 많은 조언과 격려를 해 달라”고 말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은 “한국 기업에만 족쇄를 채우는 규제나 비용 부담을 늘리는 정책을 거둬 달라”고 호소했고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은 “반기업 법안들에 대해선 후속 보완 입법을 강구, 기업들이 최소한의 대응 여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세심한 정책적 배려를 당부한다”고 밝혔다.

enyou@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11호(2021.01.04 ~ 2021.01.10)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