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팔기만 하면 대박’ LS의 2차전지 소재 속앓이
-삼성·LG가 자동차·반도체 포기한 속사정
기업 운명을 바꾼 M&A 나비효과
[한경비즈니스=안옥희 기자] 적자를 내던 사업부가 다른 기업에 인수되면서 그 기업의 캐시카우로 성장한 경우가 있다. LS그룹이 다른 기업들에 매각한 2차전지 소재 사업부가 그랬다. 기업의 운명과 산업 지형을 크게 바꿔 놓는 경우도 있다. 현대차의 기아차 인수, SK그룹의 하이닉스 인수는 개별 기업의 성과를 넘어 한국 경제를 퀀텀 점프하게 한 역대급 인수·합병(M&A)이었다.

주요 그룹의 M&A는 언제나 시장에 나비 효과를 일으켜 산업계에 지각변동을 불러온다. 나비 효과는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날씨 변화를 일으키듯 미세한 변화나 작은 사건이 추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로 이어진다는 의미다. 기업 M&A 역사에서도 나비 효과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현대차와 SK그룹의 M&A 사례부터 최근 진행 중인 두산그룹 구조 조정과 아시아나항공 M&A까지 역사적인 ‘빅딜’ 나비 효과를 살펴봤다.
기업 운명을 바꾼 M&A 나비효과


◆ LG의 눈물 속에 탄생한 SK하이닉스


현재 SK그룹에서 잘나가는 SK하이닉스에는 한때 LG그룹의 반도체에 대한 꿈과 현대그룹의 못다 이룬 전자 사업의 꿈이 담겨 있었다. 널리 알려진 대로 SK하이닉스는 LG그룹의 반도체 제조 회사였던 LG반도체가 현대전자에 흡수 합병되면서 탄생했다. LG그룹은 미래 먹거리이자 캐시카우였던 반도체를 왜 경쟁사에 넘기게 됐을까. 외환 위기 속에 1999년 정부가 주도한 강제적인 구조 조정이 시발점이었다.

정부는 당시 경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5대 그룹 빅딜(사업 맞교환)을 단행했다. 한국 반도체 2위였던 현대전자와 3위인 LG반도체의 인수·합병(M&A) 결정이 나면서 졸지에 알짜 반도체 사업을 경쟁사에 내주게 될 위기에 처한 LG그룹이 크게 반발했다.

정부의 강제적인 구조 조정 과정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중재자 역할을 했다. 고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눈물을 머금고 LG반도체를 현대전자에 2조6000억원에 넘기게 된다. 반도체 사업으로 성장할 기회를 잃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1999년 이후 구본무 회장은 전경련에 발길을 끊게 된다.

LG그룹의 반도체와의 인연은 2014년 디스플레이 구동 칩(DDI)설계 업체(팹리스)인 실리콘웍스를 인수하면서 다시 시작된다. LG그룹은 실리콘웍스로 반도체 사업에 재도전했고 알짜 계열사로 키웠다. 실리콘웍스는 2019년 기준 글로벌 반도체업계 순위 60위권이지만 DDI 시장에서는 3위 업체다. 그러나 2020년 11월 구광모 LG 회장과 구본준 (주)LG 고문 간 계열분리가 결정되면서 또다시 그룹 유일의 반도체 사업을 접게 됐다. LG그룹이 반도체와 인연이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LG반도체는 합병된 현대전자에서도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 반도체 시장은 제품 수명 주기가 매우 짧고 대규모 투자가 수반되는 장치 산업의 특성 때문에 매년 수조원대의 연구·개발(R&D) 및 설비 투자가 필요하다.

인수 자금 부담과 D램 가격 하락으로 부채가 쌓이면서 LG반도체는 결국 2001년 현대그룹에서 분리된다. 이때 반도체 전문기업으로 도약하며 사명을 하이닉스반도체로 바꾸게 된다. 부채가 15조원에 달했던 하이닉스반도체는 2001년 워크아웃(기업 개선 작업)에 들어갈 정도로 재무 상황이 악화했으나 뼈를 깎는 구조 조정을 통해 2005년 가까스로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그러나 시련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닥치며 다시 적자의 늪에 빠진 것이다. 빚더미에 시달리던 하이닉스반도체를 인수한 것은 SK그룹이었다. 최태원 SK 회장은 그룹 내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사업 확대 의지로 하이닉스반도체를 3조원에 인수한다. 이때 사명이 SK하이닉스로 바뀌었다.
기업 운명을 바꾼 M&A 나비효과
최 회장의 과감하고 선제적인 투자에 힘입어 SK하이닉스는 고속 성장을 거듭했고 SK텔레콤(통신)·SK이노베이션(석유화학)과 함께 SK그룹의 3대 주력사로 다시 태어나게 됐다.

2011년 하이닉스 인수는 1980년 유공(현 SK이노베이션), 1994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인수와 함께 SK그룹의 역사를 바꾼 3개의 빅딜 중 하나로 꼽힌다. SK그룹은 하이닉스 인수로 사업 영역을 정유와 통신에서 반도체로 확장했고 이를 통해 내수 기업의 한계를 벗어나는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 매출액 대부분을 수출에서 거두는 SK하이닉스가 그룹에 편입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SK하이닉스는 SK그룹에 편입된 2012년과 비교해 2020년 기준 매출액도 3배 가까이 늘었다.

SK그룹은 하이닉스 인수 이후에도 SK머티리얼즈·SK실트론을 잇따라 인수하며 반도체 사업 수직 계열화를 이뤘다. 하이닉스 인수는 기업과 산업 지형을 바꾼 가장 성공적인 M&A로 평가받는다. SK그룹을 퀀텀 점프하게 한 2018년 도시바 메모리 지분 인수, 2020년 9조원대 인텔 낸드 사업부문 인수 등의 발판이 됐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가진다. SK하이닉스의 기업가치가 상승하면서 2021년 1월 7일 사상 처음으로 시가총액 100조원을 돌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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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의 운명을 바꾼 현대차의 기아차 인수


현대차의 기아차 인수는 현대차·삼성·대우·기아산업 등 4개 기업의 역사를 뒤바꾼 사건이었다. 기아자동차의 전신인 기아산업은 외환 위기와 무리한 사업 확장 등으로 1997년 부도 유예 협약 대상 기업에 지정됐다.

1998년 기아차의 부도로 채권단이 국제 입찰 방식으로 기아차 매각에 나서자 현대자동차·대우자동차·삼성자동차·포드가 입찰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었다. 4사의 치열한 접전 끝에 3차 입찰에서 현대차가 1조2000억원에 기아차를 인수했다.

그 결과 자동차는 삼성이 진출해 유일하게 제패하지 못한 분야로 남게 됐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자동차에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10여 년의 준비 끝에 1995년 삼성자동차를 설립했지만 삼성차가 첫 양산 모델인 중형 세단 SM5를 출시했던 1998년은 외환 위기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시기였다.

막대한 시설 투자 자금을 쏟아부어야 했던 삼성차는 외환 위기를 거치며 출범 3년 만에 4조원의 부채가 쌓이게 됐다. 후발 주자였던 삼성차가 현대차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기아차가 필요했다.
기업 운명을 바꾼 M&A 나비효과
삼성은 기아차가 법정 관리에 들어가기 전부터 계열사인 삼성생명을 통해 기아차 지분을 늘려 가며 기아차 인수에 적극적이었다. LG그룹이 LG반도체를 현대전자에 넘기게 했던 정부의 5대 그룹 빅딜도 이 시기에 일어난 일이다. 결국 기아차 인수에 실패하면서 삼성은 자동차 사업을 모두 접게 됐다

현대차의 기아차 인수는 결과적으로는 삼성의 자동차 사업을 접게 만들었지만 현대차의 외형 확대와 기업 가치를 크게 뛰게 했다. 기아차 인수로 현대차는 자동차 분야에서 크게 도약했고 기아차 인수 이후 글로벌 종합 자동차그룹으로 성장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현대차그룹을 전통 자동차 제조 업체에서 미래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변화시키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미래 비전에 따라 기아차도 30여 년 만에 사명에서 자동차(motor)를 뗄 준비를 하고 있다. 미래 모빌리티 기업으로 대전환하기 위해 사명을 ‘기아(KIA)’로 바꿀 예정이다.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셨던 삼성에도 반도체·모바일·가전 등 첨단 기술 분야에 집중해 다방면에서 세계 1위를 보유한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 사건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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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S의 ‘미운 오리 새끼’ 2차전지 소재 사업, 인수한 기업들 ‘대박’

LS그룹은 2차전지 소재 사업부 M&A에서 아쉬움을 남긴 사례다. 공교롭게도 미래 먹거리로 키우다 적자 등을 이유로 다른 기업에 매각한 회사들이 모두 매각 이후 고속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LS그룹은 2004년 LS전선을 통해 27억원을 들여 2차전지 음극재 개발 업체인 카보닉스를 인수해 음극재 사업에 뛰어들었다. 음극재는 2차전지의 4대 소재(양극재·음극재·전해질·분리막) 중 하나다.

당시에는 전기차 시장이 지금처럼 개화하지 않은 시기였고 관련 사업들은 매년 적자를 면하지 못했다. LS엠트론 아래에서도 음극재 사업은 막대한 투자금 대비 수익을 내지 못하는 적자 사업부였다. LS그룹의 ‘미운 오리 새끼’였던 음극재 사업부는 2010년 포스코켐텍(현 포스코케미칼)이 인수하며 포스코그룹의 ‘백조’로 거듭나고 있다.

2차전지 후발 주자였던 포스코케미칼은 음극재 사업 인수를 계기로 투자와 R&D를 꾸준히 늘려 갔고 현재 2차전지의 핵심 원료인 음극재·양극재를 모두 생산하는 기업으로 성장 궤도를 달리고 있다.

SKC의 동박 제조 계열사인 SK넥실리스도 LS엠트론의 동박·박막 사업부(KCFT)가 전신이다. LS엠트론이 2018년 글로벌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에 동박·박막 사업부 지분 100%를 3000억원에 팔았으나 2019년 SKC가 이를 1조2000억원에 사들이면서 당시 LS엠트론이 KCFT를 지나치게 헐값에 매각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당시 SK그룹은 자동차 관련 분야를 미래 먹거리로 삼고 관련 투자를 이어 가고 있었다. SK넥실리스의 동박 제조 기술력은 세계 1위로 전기차 배터리 수요가 급증하면서 최근 실적도 승승장구하는 중이다. SK넥실리스를 인수한 SK그룹은 배터리 밸류 체인 내재화 전략에도 속도를 높이고 있다. SK넥실리스가 SK그룹에 편입되기 전 포스코도 인수를 검토했지만 인수 가격 부담 등으로 포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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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 사업’ 내다 판 두산 구조조정


두산그룹은 2020년 M&A 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이다. 두산그룹은 중간 지주사 역할을 하는 두산중공업의 경영 악화로 3조원 규모의 자구책을 이행하면서 동박 사업(두산솔루스)과 건설 기계(두산인프라코어) 등 미래 먹거리를 모두 매각했다. 두산중공업은 가스 터빈과 풍력 발전 터빈, 수소연료전지, 소형 모듈 원전(SMR) 등을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해 친환경 에너지 기업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2020년 벤처캐피털 네오플럭스를 신한금융지주에 약 730억원에 매각했고 두산솔루스(현 솔루스첨단소재)는 스카이레이크 에쿼티파트너스에 약 7000억원에 매각했다. 두산그룹 자구안의 마지막 퍼즐이었던 두산인프라코어는 최근 현대중공업그룹에 넘어갔다. 인수 금액은 8000억원 안팎으로 알려졌다.

스카이레이크는 솔루스첨단소재를 통해 동박 사업에서 비상을 준비하고 있고 현대중공업그룹은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로 새로운 성장 엔진을 확보하게 됐다. 두산인프라코어 인수 이후 현대중공업그룹은 조선·정유·건설기계로 균형 잡힌 삼각편대(사업부문)를 완성하게 됐다.

현대중공업그룹의 건설기계 부문 계열사인 현대건설기계는 국내 시장에서 두산인프라코어에 이은 2위 사업자다.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통해 연매출 8조원대의 대형 건설 기계 업체로 단숨에 뛰어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글로벌 건설 기계 빅5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고 사업적으로도 시너지가 예상된다.

그룹의 외형 확대 효과도 누릴 수 있다. 기업 결합 심사를 진행 중인 대우조선해양에 이어 두산인프라코어 인수까지 성사되면 현재 재계 순위 9위 기업집단인 현대중공업그룹은 7위로 도약할 것으로 전망된다. 조선업과 건설 기계 빅딜로 시장을 재편하고 그룹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발판을 마련할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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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DC·대한항공 희비 갈린 아시아나항공 M&A


대한항공은 HDC그룹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무산되면서 새로운 인수자로 나섰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항공업계가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결정하면서 한국 항공업계 재편의 선봉에 서게 됐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빅딜이 완성되면 자산 40조원, 매출 19조6492억원에 이르는 세계 7위권의 초대형 항공 그룹이 탄생한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여객·화물 운송 실적 기준 대한항공은 19위, 아시아나항공은 29위다. 세계 7위권의 초대형 국적 항공사가 된다는 얘기다.

대한항공은 최근 임시 주주 총회에서 유상 증자를 위한 정관 변경안을 통과시키면서 초대형 항공사 출범을 향한 9부 능선을 넘었다. 다만 승자의 저주 우려도 상존한다. 코로나19 등으로 항공 업황이 악화하면서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대한 부담이 더 커진 상황이다. 2020년 6월 말 기준 아시아나항공의 자본 잠식률은 56.3%다.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했던 HDC그룹은 아시아나항공을 품고 건설·유통·레저에 이어 항공업까지 아우르는 모빌리티 그룹의 면모를 갖출 계획이었다. 재계 순위도 기존 30위권에서 20위권으로 수직 점프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막판 의견 차이로 협상이 결렬되면서 모빌리티 그룹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는 물거품이 됐다. 항공업이 코로나19로 어려움에 봉착하면서 무리한 인수로 그룹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때 양대 국적 항공사를 운영했던 금호그룹은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면서 재계 60위 밖으로 밀려나고 그룹 규모도 쪼그라들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전 회장의 아들인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은 2021년부터 금호산업 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그룹 재건에 집중하고 있다.



ahnoh05@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11호(2021.01.04 ~ 2021.01.10)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