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알못 판례 읽기]

2심, 업무정지 1년 이미 끝나 본안 판단 않고 ‘각하’…“기간 만료됐어도 적법성 따져봐야”
끝나지 않은 대우조선 분식회계 소송… 대법 “안진회계 업무정지 적법성 다시 재판” [법알못 판례 읽기]
[한경비즈니스 칼럼=남정민 한국경제 기자 peux@hankyung.com] 안진회계법인은 2017년 금융위원회로부터 과징금 16억원과 업무정지 1년 처분을 받았다. 안진회계법인이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대우조선해양의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를 실시했는데 이때 대우조선해양이 회계 처리 기준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묵인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대우조선해양은 분식회계 의혹을 받고 있었다.

금융위는 2017년 4월 ‘안진회계법인이 대우조선해양의 증권신고서에 첨부된 거짓 재무제표에 관해 적정 의견을 표명했다’는 이유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429조 등에 따라 과징금을 부과했다. 금융위는 안진회계법인이 △매출 및 매출 원가 등에 대한 감사 절차를 소홀히 했고 △지연배상금에 대한 감시 절차를 소홀히 했으며 △장기성 매출 채권에 대한 감사 절차가 부실했고 △종속기업 투자 주식에 대한 감사 절차도 부실했다는 이유 등을 들었다.

1심, 업무정지 사유 인정하지만 원고 승→2심 각하

안진회계법인은 이에 불복해 금융위의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다만 행정소송 본안만 내고 별도의 집행정지 사건은 내지 않았기 때문에 1심 판결이 선고된 2018년 11월 이전에 1년간의 업무정지 처분은 이미 2018년 4월 완료돼 버렸다.

2018년 11월 1심은 안진회계법인의 손을 들어줬다. 이미 업무정지 처분이 완료됐지만 결론적으로 업무정지 처분은 취소됐어야 한다는 뜻이다. 금융위 측은 이 사건 처분의 효력 기간인 업무정지 기간(2017년 4월~2018년 4월)이 모두 경과해 버려 소는 ‘각하’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각하’는 소송이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될 때 법원이 별도의 심리를 거치지 않고 재판을 종결하는 절차를 뜻한다. 본안 심리를 거친 뒤에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기각’과는 다른 판단이다.

재판부는 원고 승소 판결을 하면서도 일단 처분 ‘사유’는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안진회계법인의 감사 또는 증명에 착오가 있었다는 점 자체는 인정된다는 뜻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 감사팀이 대우조선해양의 실행 예산 왜곡 가능성을 인지하고도 충분한 감사 없이 회계연도 감사보고서에 ‘적정 의견’으로 허위 기재했다”며 “이 사건 감사 과정에서 중대한 착오 또는 누락이 있었다는 점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재판부는 이러한 착오, 누락 과정에 안진회계법인이 조직적으로 관여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감사팀의 소홀·부실 행위가 모두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원고가 위법 행위를 묵인·방조·지시하는 등 조직적으로 관여한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며 “각 감사를 담당한 원고 등기이사 3명은 전체 등기이사 중 2%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몇몇 구성원들의 법 위반 행위 때문에 안진회계법인 소속 회계사 1300여 명의 전체 업무를 정지시키는 것은 지나치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금융위가 재량권을 일탈, 남용했다고도 명시했다. 재판부는 “금융위는 원고가 위법 행위에 조직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판단하는 등 사실 관계를 오인했다”며 “이 사건 처분은 그 재량권을 일탈, 남용한 처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사건 감사팀의 위반 행위로 실제 야기된 피해가 중하기는 하나 그 책임을 온전히 안전회계법인 쪽에 돌릴 수만은 없다”며 “처분 사유는 인정되나 재량권을 남용한 위법한 처분이므로 피고가 2017년 4월 내린 업무정지 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대법 “안진회계법인 업무정지 처분 다시 재판하라”

하지만 본안 심리를 거친 1심과 달리 2심은 이 사건 자체가 각하돼야 한다고 판결했다. 쉽게 말해 누가 얼마나 잘했는지 못했는지를 따지기 전에 소송 자체가 요건을 갖추지 못해 재판이 성립할 수 없으므로 별도의 판단 없이 종결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재판부는 “취소 소송은 처분 등에 의해 발생한 위법 상태를 배제해 원상으로 회복시키고 그 처분으로 침해되거나 방해 받은 권리와 이익을 구제하는 소송”이라며 “원칙적으로 처분 효력이 존속하고 있고 취소를 통해 원상회복이 가능해야 그 취소를 구할 이익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처분에 효력 기간이 정해져 있는 경우 그 처분의 효력 또는 집행이 정지된 바가 없다면 그 처분의 효력은 소멸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의 설명에 따르면 안진회계법인에 주어진 1년의 업무정지 처분은 이미 효력이 소멸된 처분이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업무정지 기간의 경과로 이 사건 처분의 취소를 구할 특별한 사정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처분의 집행 기간이 경과돼 처분의 효과가 소멸된 경우에는 설령 그 처분으로 인해 명예, 신용 등 인격적인 이익이 침해돼 그 침해 상태가 집행 기간 경과 후까지 남아 있더라도 이와 같은 불이익은 그 처분의 직접적인 효과라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안진회계법인이 감사팀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고 향후 감사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똑같은 잘못을 반복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며 “향후 다시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만 않는다면 업무정지 처분이 반복될 가능성도 없다”고 덧붙였다.

대법은 이를 다시 뒤집었다. 2심의 ‘각하’ 판단은 옳지 않다는 취지로 사건을 파기 환송한 것이다. 대법원은 “감사팀이 속한 회계법인 전체에 대해 업무정지 처분을 하는 것이 적법한지, 처분 사유가 인정되는 경우에도 이 사건 감사팀이 행한 위반 행위의 내용과 정도, 감사팀이 회계법인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 등을 고려했을 때 업무정지 처분이 과중한 처분인지 여부를 따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만약 이 사건에서 법원이 본안 판단을 하지 않는다면 피고(금융위)가 이 사건 업무정지 처분을 하면서 채택, 적용한 법령 해석에 관한 의견이나 처분의 기준을 앞으로도 반복, 적용할 것”이라며 “그렇다면 이 사건 업무정지 처분에 따른 업무정지 기간이 만료됐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업무정지 처분의 위법성 확인 내지 불분명한 법률 문제의 해명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2017년 대우조선, 안진회계법인엔 무슨 일이?

2017년 금융 당국은 안진회계법인에 12개월간 신규 감사 업무정지 조치, 과징금 16억원, 2014년 위조 감사조서 제출에 따른 과태료 2000만원 등의 조치를 내렸다. 안진회계법인이 소속 회계사의 회계 감사 기준 위반 행위를 묵인·방조·지시하는 등 조직적으로 관여하거나 일정 기간에 걸쳐 계속해 중대한 위법 행위를 해 왔다고 판단한 것이다.

당시 증권선물위원회 관계자는 “검찰 수사 결과와 증거 등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담당 회계사뿐만 아니라 임원 등 경영진이 대우조선의 분식회계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고 판단했다”며 “딜로이트안진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6년간 대우조선의 감사인을 맡으면서도 장기간 회사의 분식회계 사실을 묵인·방조해 감사인으로서의 기본 책무를 저버렸다”고 강조했다.

투자자들은 분식회계를 통해 허위 내용이 기재된 각종 보고서를 믿고 대우조선해양의 주식을 샀다가 이후 주가 하락으로 손해를 봤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김 모 씨 등 투자자 290명은 대우조선해양과 안진회계법인을 상대로 소송을 내 실제로 이기기도 했다. 지난해 2월 1심 판결은 투자자들이 약 146억원을 배상받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투자자들로서는 사업보고서 등이 정당하게 작성된 것이라는 신뢰하에 대우조선해양의 주식을 취득했으니 대우조선해양 등이 피고들에게 손해배상을 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된 소송 여러 건이 현재 법원에 계류 중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12호(2021.01.18 ~ 2021.01.2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