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치판에선]
-황교안 대표, 정치 생명 건 ‘삭발 승부수’

-여권도 물러설 땐 정권 치명상 입어
-선거법·예산안 등 정기국회 ‘첩첩산중’


[한경비즈니스=홍영식 대기자]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후폭풍이 추선 연휴 이후에도 정가를 뒤흔들고 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9월 16일 삭발 승부수를 던졌고, 검찰은 조 장관 주변을 둘러싼 여러 의혹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법무부 간부가 대검찰청 간부에게 윤석열 검찰총장을 배제한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조 장관 가족 의혹을 수사하는 게 어떻냐는 제안을 한데 이어 당정이 검찰의 수사 브리핑 등을 제한하는 공보준칙 개정을 추진하고 있어 논란은 더 커지고 있다.

여권과 야당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법무부와 검찰 간 긴장감도 날로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국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문재인 정권과 자유한국당 간 격돌은 ‘조국 개인을 넘어선 조국 싸움’양상이다. 한국당 내에선 조 장관 임명 철회가 관철되지 않으면 정권 퇴진 운동에 들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양측의 격돌은 내년 총선과 2022년 대선까지 연결된 전략적 차원에서 발생한 것이어서 어느 일방이 물러서는 것은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황 대표가 청와대 앞에서 삭발식을 진행한 것 자체가 문재인 정권과의 정면승부를 의미한다. 황 대표의 ‘삭발투쟁’은 기존 장외투쟁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당내 일각의 비판에 따른 선택이라는 것이 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황 대표의 장외투쟁에 대해 당내에선 식상해하는 분위기가 없지 않았다. 지난 2월 말 취임 뒤 황 대표는 여러번 장외투쟁을 선택했다. 선거법 등 ‘패스트 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으로 장외에 나간데 이어 8월엔 청와대를 향해 회전문 인사 중단과 대북정책 전환 등을 촉구하며 거리로 나갔다.

황 대표가 ‘조국 사태’가 벌어진 이후에도 똑같은 투쟁방식을 택하자 당내 일각에선 장외투쟁 이외에 국민들에게 호소력있게 다가설 수 있는 투쟁 방식을 내놔야 한다는 요구가 적지 않았다.

당의 한 중진 의원은 “현 상황은 장외투쟁을 넘어 사활을 건 시퍼런 결기를 보여줘야 하는 국면”이라며 “황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너문 안일하게 대응해왔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청문회 대응도 오락가락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황 대표의 장외투쟁은 국민들, 특히 청년 층의 호응을 이끌어 내는데 실패했다”며 “조국 파문으로 문재인 정권의 지지율이 떨어졌지만, 그 지지율이 한국당으로 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황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의 투쟁 전략이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국민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 투쟁전략을 치밀하게 짤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선택한 것이 삭발 투쟁이다. 공당의 대표가 삭발 투쟁을 벌이는 것은 이례적이다. 황 대표는 “투쟁에서 결단코 물러서지 않겠다. 지금은 싸우는 길이 이기는 길”이라며 배수진을 쳤다.

그가 이렇게 나오는 것은 조 장관 임명 관철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게 되고, 대표직을 내려놔야 하는 위기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선가도에도 큰 차질을 빚게되리라는 것은 불을보듯 뻔하다.

삭발투쟁은 정권에 맞서는 결기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그 효과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저희가 할 수 있는 저항의 표현이라 생각한다. 투쟁의 비장함을 표시한 것”이라며 “그런 뜻에서 당대표가 결단한 것”이라고 의미를 뒀다.

그러나 박지원 대안정치연대 의원은 “제1야당 대표의 삭발 충정은 이해하지만 21세기 국민들은 구태정치보다는 새로운 정치를 바란다”고 했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조 장관 해임건의안 제출과 국정조사, 특검까지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뿐만 아니라 민주평화당과 대안정치연대, 정의당이 부정적인 뜻을 밝히고 있어 본회의 처리 의석 수 확보가 여의치 않게됐다. 하지만 이를 고리로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 총력 투쟁에 나서겠다며 비상사태를 선언해 정기국회가 발목 잡힐 가능성이 높아졌다.

당장 정기국회 일정부터 어그러졌다. 여야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들이 9월 16일 오후 국회에서 만나 정기국회 일정 조정 문제를 논의했으나 합의에 실패했다. 이에 따라 9월 17일 예정됐던 교섭단체 대표연설부터 차질을 빚었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조 장관을 법무부 장관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조 장관의 교섭단체 대표연설 참석을 거부하면서 절충점을 찾지 못했다.

청와대와 여당은 야당의 반발을 정쟁으로 몰아세우며 ‘민생 국회’를 외치지만, 내심 긴장하고 있다. 보수 야당뿐만 아니라 검찰과도 정면 대결해야 하는 험난한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조 장관을 둘러싼 검찰 수사 결과는 정국 향방을 결정짓는 핵심 요인이 될 전망이다.

‘스모킹 건(범죄·사건 등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의 결정적 증거)’이 하나라도 나온다면 조 장관 개인에게만 그칠 일이 아니다. 집권 후반기로 넘어가는 문재인 정권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조 장관은 ‘문재인 페르소나(분신)’로 불렸다. 그런 만큼 문재인 정권에서 그가 차지하는 상징성이 크다. 이 때문에 검찰의 수사는 문재인 정부의 레임덕을 촉발시킬 수 있다는 분석마저 나온다.

청와대와 민주당뿐만 아니라 정치권 외곽의 문재인 정권 지지자들이 검찰 비판에 나서며 총력 방어전을 펼치고 있는 것은 조국 사태가 정권의 명운과 직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검찰이 노골적으로 정면 격돌한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들다.

한 친문(친문재인) 중진의원이 “조국 개인 차원을 넘어 이 싸움에서 밀리면 자칫 정권의 둑이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고 한 것은 그만큼 절박한 상황이라는 얘기다.

조국 사태 뿐만 아니다. 선거법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물리적 충돌을 두고 벌이는 검찰과 경찰 수사, 선거제 개편안, 검경 수사권 조정 등 정치판은 온통 지뢰밭이다. 이에따라 최소한 내년 4월 총선까지는 극한적인 대립 정국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2호(2019.09.16 ~ 2019.09.2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