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 인사이트]
-Fed의 외환시장 개입 논의 한창
-한은도 3년 1개월 만에 기준금리 1.50%로 인하


[한경비즈니스 칼럼=신동준 KB증권 자산배분전략부 상무(숭실대 금융경제학과 겸임교수)] 대한민국은 2010년 중반부터 2012년 초까지의 금융 위기를 가장 빠르고 모범적으로 탈출한 나라로 전 세계 투자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한국 기업들은 약진하며 글로벌 시장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해 나갔다. 코스피지수는 2011년 4월 미국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보다 2년이나 먼저 금융 위기 이전 고점을 뚫었다. 당시 대한민국은 가장 투자하고 싶은 나라로 꼽힌 단골 국가였다.

◆환율 전쟁 이후 6년 반…뚜렷이 드러난 명암
환율 전쟁의 아픈 역사 다시 반복될까
하지만 2012년 여름 이후 상황이 꼬이기 시작했다. 2012년 6월 그리스 사태(그렉시트)를 전후로 “유럽 위기는 대공황 이후 최대의 충격이 될 것”이라는 당시 고위 당국자들의 이례적 발언들이 연일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대기업들은 즉시 하반기에 계획돼 있던 고용·투자·구매 계획을 취소하며 컨틴전시 플랜에 돌입했다. 정부는 그때부터 위기에 대비해 재정 흑자 기조를, 기업은 현금 확보를 추구했고 가계는 부채 부담으로 소비를 줄이면서 한국 경제는 멈춰 섰다.

2013년 1월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포럼에서 컨설팅그룹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의 데니스 낼리 회장은 “지난 16년간 글로벌 최고경영자(CEO)들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실시해 왔는데 특정국(한국) 기업인들의 자신감이 이처럼 낮게 나온 것은 처음인 것 같다”며 흥미로운 결과라고 소개했다. 새해 기업 실적 개선에 자신감을 보인 한국 기업인들이 6%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반면 같은 시기 선진국들은 모두 대규모 양적 완화 등 공격적 경기 부양에 나서며 한국을 추월했다. 2012년 9월 미국 중앙은행(Fed)과 유럽중앙은행(ECB)은 나란히 3차 양적 완화(QE3)와 무제한 국채 매입(OMT)을 발표했다. 12월 일본중앙은행(BOJ)은 대규모 추가 양적 완화(QQE)를 결정했다. 엔화를 시작으로 이때부터 자국의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는 절하 경쟁이 시작됐다. 이후 소위 ‘환율 전쟁’으로 확산됐다.

한국은행도 2012년 7월 이후 1년 동안 세 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하지만 매번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뉘앙스를 반복하며 상대적으로 매파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2012년 상반기까지 한국 경제는 양호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2013년 이후 환율 전쟁이 본격화한 지 6년 반이 흘렀다. 지난해 말 기준 달러 대비 통화가치 변화율을 살펴보면 명암은 뚜렷하다. 주요 통화들에 대한 달러 가치인 달러지수는 같은 기간 동안 21%나 급등했다. 미국 경제는 성장하는 혁신 기술 기업을 다수 보유한 데다 셰일 혁명으로 이제는 석유마저 수출하는 국가로 탈바꿈한 영향이다.

원화는 6년 동안 달러 대비 4% 약해졌지만 상대 가치 측면에서는 세계 주요 24개 통화 중 가장 강한 통화가 돼 버렸다.
환율 전쟁의 아픈 역사 다시 반복될까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보면 미국으로 수출되는 제품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국가로 나가는 제품의 가격은 통화가치가 벌어진 만큼 모두 비싸졌다는 의미다. 반도체처럼 제품 자체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어 비싸도 팔리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면 그동안 가격으로 경쟁하던 한국의 다수 산업들의 경쟁력은 상당 부분 크게 훼손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장 기업들의 매출 성장이 2013년부터 정체됐다는 점과 국내 주식시장에서 반도체를 제외한 나머지 산업의 시가총액 비율이 대폭 낮아지고 있다는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기업들은 가격 경쟁력 훼손을 피하기 위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면서 한국의 내수 회복이 더뎌졌다.

그나마 한국 경제를 이끌던 반도체의 슈퍼 사이클이 지난해 하반기 이후 둔화하기 시작하면서 산업 구조 개혁 타이밍을 놓친 한국 경제의 아픈 부분이 드러나는 중이다.

금융 위기 이후 처음으로 2018년 4분기 이후 한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분기별 명목 성장률과 채권 금리는 단기물부터 30년물까지 모두 미국보다 낮아지며 역전된 상태다.

주식시장의 부진도 깊어지고 있다. 2013년 이후 선진시장과 신흥시장 주식은 각각 80%, 25% 올랐지만 코스피지수는 5% 상승으로 제자리걸음이다. 24개 주요국 중 멕시코·말레이시아에 이어 셋째로 부진하다.

◆적절한 원화 약세 일부 용인할 필요 있어

지난해 하반기에는 미·중 무역 분쟁이 격화하면서 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 증시의 하락 폭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원화는 상대적으로 더 강했다. 중국 위안화 환율 상승이 달러당 7위안을 위협하고 신흥시장 통화가치가 큰 폭으로 약세를 보이는 상황에서도 원·달러 환율 상승은 1140원 수준에서 막혔다.

이는 불황형 흑자가 원인이었는데, 신흥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한국의 경상 흑자와 외환보유액 증가는 한국의 신용 위험을 상대적으로 낮춰 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고령화와 내수 부진으로 장기금리가 추세적으로 낮아지면서 재정·경상수지가 흑자 기조인 한국의 원화 채권은 외국인들에게 매력적인 대상이다. ‘AA-’ 이상 우량한 신용 등급을 보유한 국가 중에서 한국 채권시장보다 금리가 높고 큰 시장은 미국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한국 등 신흥시장의 주식은 달러가 약세일 때 강세를 보여 왔다. 미국 등 글로벌 경제가 좋을 때 미국의 유동성은 기대 수익률이 더 높은 신흥시장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원화와 신흥시장 통화가치가 강해지고 주가는 상승하는 패턴이었다. 코스피지수의 추세적 상승은 늘 원화 강세와 함께 나타났다.

하지만 지금은 첫째 추세적 달러 약세나 원화 강세로의 전환도, 둘째 만약 달러가 약세로 전환돼 원화 강세가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한국 경제와 금융시장에는 과거와 같은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감속 성장에도 불구하고 여타 국가 대비 미국 펀더멘털의 우위가 압도적으로 유지되고 있는데다 달러 약세 재료인 Fed의 향후 1년 이내 세 차례의 금리 인하는 이미 시장에 다 반영돼 있다. 오히려 지금은 유로존·영국·일본·한국 등 여타 신흥국의 금리 인하에 대한 반응이 더 새롭고 강하다. 완만한 달러의 강세 추세는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펀더멘털 차이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분위기 변화는 미묘하다. 7월 중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달러 강세가 자신의 정책에 위협이 되고 있다며 참모들에게 달러 약세를 만들어 낼 방법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금융시장에서는 Fed의 외환시장 개입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유로존·영국·일본의 중앙은행도 여차하면 동반 통화 완화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하는 가운데 7월 18일 한국은행도 금리를 올린 지 8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다시 1.50%로 0.25%포인트 낮췄다.

한국 경제는 내부적으로 성장 동력을 찾기 쉽지 않은 데다 원화 강세 누적에 따른 수출의 가격 경쟁력마저 상당 부분 훼손된 상태다. 그나마 올 들어 원화가 달러 대비 6% 약세를 보이는 등 24개 통화 중 터키(-7%)를 제외하고 꼴찌를 기록하는 바람에 2019년 7월 16일까지의 통화가치 변화 순위는 태국·대만·스위스·중국 다음인 5위로 밀렸다.

올해 두드러진 원화 약세 덕분에 무역 가중치와 상대 물가를 고려한 원화가치인 실질실효환율도 장기 균형 수준까지 하락하며 고평가에서 막 벗어나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환율 전쟁의 분위기가 다시 감지되고 있다.

환율 전쟁의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적절한 원화 약세는 일부 용인할 필요가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4호(2019.07.22 ~ 2019.07.28)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