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폴리틱스]
-8년간 상임위 심의 딱 한 번
…당·정·청, 국회 통과 추진 불구 ‘의료 제외’에 한국당 반대
8년 묵은 서비스발전법, 여전히 갈 길 멀다

[한경비즈니스=홍영식 대기자]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3선(選) 법안’으로 불린다. 18대 국회 때 처음 제출된 이후 20대 국회까지 3대 국회에 걸쳐 제대로 된 논의 없이 국회에 계류돼 있어 이런 별칭이 붙었다.

이 법안은 서비스산업의 경쟁력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서비스산업 육성으로 내수 기반을 확충하고 일자리 창출도 견인하자는 것이 목표다. 범(汎)정부 차원에서 서비스산업 발전 기본 계획을 심의하고 관련 정책을 협의하기 위해 정부가 5년마다 중·장기 정책 목표를 정하도록 했다.

연도별 시행 계획 수립과 시행, 추진 상황을 점검하고 서비스산업을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를 만든다는 내용도 있다. 기존 제조업 중심에서 벗어나 서비스산업의 특성을 반영한 연구·개발(R&D)을 유도하고 재정·금융 지원을 제공한다는 것도 담겼다.

서비스산업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취업유발계수를 보면 서비스업은 17.3명으로 일반 제조업 평균(8.8명)의 두 배 수준이다. 전자(5.3명)·자동차(8.6명)·선박(8.2명) 등보다 월등하게 높다. 특히 관광산업의 취업유발계수는 18.9명에 이른다. 취업유발계수는 10억원의 재화를 산출할 때 창출되는 고용자 수다. 경제 성장세와 비교해 취업자 수가 얼마나 늘어났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 “법안 통과 땐 신규 일자리 35만 개 만들어질 것”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한국의 서비스산업 생산성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면 경제성장률이 최고 3.6%로 올라가고 일자리도 15만 개 더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비스산업 생산성을 1~100 범위로 볼 때 한국은 43,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은 67 수준이다. 서비스산업이 OECD 수준의 생산성을 낸다고 가정하면 성장률이 0.5~1.0%포인트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KERI)은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콘텐츠 산업 분야 11만 명, 의료 분야 10만 명, 교육 분야 9만3000명 등 총 35만 개의 신규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한국 서비스산업의 현실은 암울하기 짝이 없다. 국내 서비스업은 대체로 저부가가치·저임금 분야에 많이 치중돼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월평균 임금 200만원 미만 취업자 비율이 제조업은 29.3%인데 서비스업은 48.1%인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 창출 효과가 큰 대기업이 각종 규제로 서비스업에 원활하게 진출하지 못하는 것이 관련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주요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서비스업의 대기업 비율(0.05%)은 OECD 32위로 최하위권이다. 대기업당 서비스업 종사자 수는 697명으로 OECD 30위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서비스발전법안이 제출됐지만 지난 8년간 국회 관련 상임위원회 소위원회 문턱도 넘지 못하고 있다. 법안은 총 27조로 구성돼 있다. 지금까지 여야 협상은 1~5조에서부터 막혀 더 이상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1~5조는 법안의 적용 대상에 관한 것이다.

이 법안이 국회에 첫 제출된 것은 18대 국회 때인 2011년 12월 30일이다. 정부(기획재정부) 입법 형태였다.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은 통과를 적극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야당이던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18대 국회 회기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됐다.

이명박 정부 때 기획재정부는 19대 국회 출범 약 두 달 뒤인 2012년 7월 20일 이 법안을 약간 수정해 다시 국회에 제출했다. 19대 국회에서 이 법안은 20번 넘게 기획재정위원회에 상정됐다. 여야 간 협상 테이블에만 수십 번 올랐다.

하지만 기획재정위 경제재정소위원회는 19대 국회 4년간 딱 한 번 논의하는 데 그쳤다. 국회 속기록을 살펴보면 소위는 4년 동안 이 법안을 15차례 축조 심사 대상에 올렸다. 하지만 제대로 된 심사는 법안이 회부된 지 3년이 지난 2015년 11월 9일에야 이뤄졌다.
8년 묵은 서비스발전법, 여전히 갈 길 멀다
◆ 한국당 “의료 빼면 법안 제정 의미 퇴색”

여야는 법안의 기본 취지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논란의 핵심은 ‘의료 민영화’였다. 더불어민주당은 ‘보건·의료 분야 제외’ 문구를 넣지 않고는 법안을 처리할 수 없다는 방침을 고수했다.

서비스산업발전법 제3조 1항엔 ‘서비스산업에 관하여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 외에는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른다’고 돼 있다. 기본법인 서비스발전법이 우선이라는 얘기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서비스발전법이 제정되면 이 조항 때문에 자칫 원격의료와 의료법인의 부대사업을 불허하는 의료법이 무력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정부는 5년마다 서비스산업선진화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서비스산업발전 기본 계획을 수립·시행해야 한다’고 제5조에 명시하고 있는데 기본 계획 수립·시행 과정에서 의료 민영화 부분을 포함할 수 있다고 반대했다.

2015년 11월 9일 재정경제소위 속기록에 따르면 김현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부가 이 법으로 의료를 영리화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고 있다”며 “적용 대상에서 보건 의료 분야 제외를 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정부와 새누리당 의원들은 “의료 공공성을 지킨다는 내용을 명시할 수 있지만 보건 의료 부문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할 수 없다”고 맞섰다. 박명재 새누리당 의원은 “서비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게 의료와 금융 부문이다. 만약 의료 금융이 없다면 법안 제정 의미가 퇴색되는 것”이라며 “R&D 자금과 인력 양성 지원은 (이 법을 통해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언석 당시 기획재정부 2차관은 “법안 어디를 봐도 의료 민영화를 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이 없다. 이 법의 핵심은 세제와 R&D, 창업, 인력, 기술 지원 등을 통한 서비스산업 발전을 위해 정부가 중·장기 계획을 세우는 것”이라고 야당의 주장을 반박했다. 소위원회는 결론 없이 끝났고 이후 19대 국회뿐만 아니라 20대 국회 들어와서도 제대로 된 법안 심사는 한 번도 이뤄지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은 19대 국회에서 의료법의 일부 조항과 국민건강보험법·약사법 등을 서비스산업발전법의 적용에서 배제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한 바 있다.

20대 국회 들어 이명수 자유한국당 의원이 제출한 법안엔 서비스업 정의를 ‘통계법 제22조 제1항에 따라 통계청장이 고시하는 한국표준산업분류에 의한 것’으로 규정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한국표준산업분류에 따르면 보건업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에 병원과 의원, 공중보건의료업 등이 포함된다며 반대했다.

서비스발전법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도 한동안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이 의료 영리화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뜻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취임한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홍 부총리가 법안 처리에 적극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는 2월 28일 한경 밀레니엄 포럼에서 “서비스산업이 (일자리 창출의) 보물 창고가 될 수 있다”며 “가장 바라는 것은 서비스발전법의 국회 통과”라고 말했다.

그는 기재부 정책조정국장을 맡고 있던 2011년 직접 이 법안을 만들었다. 이 때문에 이 법안은 ‘홍남기 부총리의 수제품(手製品)’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최근 “서비스발전법안을 전향적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최소한 불씨는 다시 살아난 셈이다.

당·정·청은 3월 13일 서비스발전법 통과를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국회 처리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당·정·청이 보건 의료는 서비스업에서 제외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김정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의료법·약사법·국민건강보험법·국민건강증진법에서 규정한 사항에 대해서는 이 법을 적용하지 아니함’이라는 문구를 추가한 법안을 발의했다.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반대하고 있다. 8년 묵힌 서비스발전법의 갈 길은 여전히 멀어 보인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2호(2019.04.29 ~ 2019.05.0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