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치판에선]
-楊, 민주연구원장에 선임
…親文 “당·청 소통 역할” 非文 “총선 물갈이 칼 휘두를 것”
유랑 끝내고 돌아온 양정철…떠는 非文 중진
[한경비즈니스=홍영식 대기자]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2년간의 해외 유랑 생활을 끝내고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원장 직함을 달고 정치권으로 돌아왔다. 민주연구원은 4월 29일 양 전 비서관을 새 원장에 선임했다. 그는 5월 15일 공식 취임한다.

비문(非文 : 비문재인) 측 중진은 잔뜩 긴장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그가 다른 자리도 아닌 내년 ‘4·15 총선’의 전략 컨트롤 타워를 맡았기 때문이다. 비문 측은 그가 물갈이 칼날을 휘두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웬만한 중진은 교체 리스트에 올라갈 것”이라는 등의 괴담도 돈다. ‘공천포비아’라는 말까지 나온다. 친문(친문재인) 측이 “당·청 소통에 초점을 맞추고 총선에서 당이 승리할 큰 틀의 전략을 마련할 뿐”이라며 ‘물갈이 괴담설’을 부인하고 있지만 비문 측의 긴장감을 누그러뜨리지는 못하고 있다.

비문 측이 경계하는 이유는 그가 현 정권에서 차지하는 위상 때문이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을 만든 주역이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국내언론비서관과 홍보기획비서관으로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맡았던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일했다. 2009년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엔 노무현재단 사무처장을 맡아 재단 이사장이었던 문 대통령을 도왔다. 문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과 ‘사람이 먼저다’ 등도 기획했다.

◆ 문 대통령을 정치권으로 이끈 핵심 실세

2012년 대선 패배 뒤엔 문 대통령이 재도전에 나서도록 길을 닦았다. 2016년 문 대통령의 대선 캠프 역할을 한 ‘광흥창팀’을 이끌었다. 이 때문에 그는 문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참모이자 동지로 불린다. 2002년부터 2017년까지 네 번의 대선에서 양 전 비서관과 함께 일한 한 친문 인사의 전언이다.

“양 전 비서관은 정치 입문을 주저하던 문 대통령을 정치권으로 이끌었다. 2012년, 2017년 대선 때 선거 밑그림을 주도적으로 그린 문 대통령의 핵심 브레인이다. 메시지 강도를 어떤 수준에서 하고 세력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 등 대선 전반의 전략이 그의 손에서 출발했다. 2016년 히말라야 트레킹과 책 콘서트 기획 등을 통해 문 대통령이 다시 대선 후보로 나서게 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하지만 그는 대선 승리 뒤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유랑의 길에 나섰다.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며 미국·일본·뉴질랜드 등을 돌며 저술 작업을 했다. 그는 지난해 초 발간한 ‘세상을 바꾸는 언어’에서 한국을 떠난 이유를 이렇게 기록했다.

“나무는 가만있으려고 해도 바람이 가만두지 않는 법이다. 괜히 한국에 있다가 ‘비선실세’ 따위의 억측이나 오해를 받기 싫었다. 권력과 거리를 두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게 대통령을 돕는 길이고 청와대 참모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꺼이 머나먼 유랑의 길에 나선 이유다.”

백의종군을 선언하고 외국을 전전하던 정권 핵심 실세가 정권 출범 2년 만에, 총선을 1년 앞둔 시점에 정치권에 귀환하는 것이어서 비문 측이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비문 측의 한 중진 의원은 “1등 창업 공신이 다른 자리도 아닌 하필이면 선거 전략 사령탑으로 온 것은 대통령의 물갈이 의중이 실려 있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니냐”며 “비문 측 다선 중진 의원들이 불안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연구원 부원장에 문재인 정부 1기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지낸 백원우 전 의원과 선거 전략가인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내정한 것에 대해서도 비문 측에서는 심상치 않게 보고 있다.

백 전 의원은 청와대에서 공직기강과 정치권 비리 등을 다뤘던 인물이다. 비문 측의 한 의원은 “물갈이 작업과 연관된 인사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4선 이상은 20명이다. 이 가운데 친문은 거의 없다.

양 전 비서관의 복귀와 때맞춰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공천 물갈이’를 예고했다. 당 총선공천제도기획단 관계자는 “현역 국회의원은 전원 당내 경선을 치르고 정치 신인에게는 심사 단계부터 10%의 가산점을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당내에서는 “친문 체제 구축을 위한 정지 작업”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당에선 ‘20년 집권론’을 내세운 이해찬 대표가 총대를 멘 양상이다. 이 대표가 총선이 1년이나 남았는데도 조기 비상 체제에 들어가는 것은 집권 4년 차를 목전에 두고 실시되는 총선의 중요성 때문이다. 내년 4월 총선은 문재인 정권에 대한 평가는 물론 2022년 대선 전초전의 성격도 갖는다.

총선에서 소기의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20년 집권론’은커녕 문재인 정부 후반기 정권 운영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다. 집권 후반기에 접어들면 정권의 힘이 빠질 가능성이 높은 마당에 의회 권력마저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레임덕을 재촉할 수 있다.
유랑 끝내고 돌아온 양정철…떠는 非文 중진
◆ 정치 신인에 가산점…靑참모 정치권 입성 길 넓혀주나

더욱이 지난 4·3 보궐선거에서 확인됐듯이 민심도 심상치 않다. 문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공을 들여온 북한 비핵화 해법은 안갯속이다. 경제는 추락하고 있다. 대통령 지지율은 반 토막이 났다. 이 대표가 양 전 비서관에게 민주연구원장을 제안한 것은 친문 강화로 국정 운영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 청와대 1기 참모들과 장관 출신들이 대거 총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것도 비문 측을 잔뜩 긴장하게 하고 있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 정태호 일자리수석, 이용선 시민사회수석, 한병도 전 정무수석, 윤영찬 전 국민소통수석, 김영배 민정비서관, 박수현 전 대변인,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송인배 전 정무비서관, 권혁기 전 춘추관장, 조명균 전 통일부 장관, 홍종학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등이 출마할 것으로 알려졌다.

양 전 비서관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간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역구(서울 구로을)에서 출마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내 친문 측에서는 조국 민정수석 차출 목소리를 꾸준히 내고 있다. 비문 측 중진 의원은 “이들이 출마하면 기존 지역구 의원들과 경쟁이 불가피하다”며 “신인들에게 많은 가산점을 주는 것은 비문 쪽 다선 의원들의 물갈이 폭을 늘려 청와대 참모와 장관 출신들의 정치권 입성 길을 넓혀 주려는 전략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비문계 의원은 “선거가 아직 1년 남았는데 청와대 1기 참모들이 대거 출마 움직임을 보이고 양 전 비서관이 선거 전략의 책임을 맡은 것을 보면 청와대가 총선을 친문 위주로 치르겠다는 뜻이 확실해 보인다”고 말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진문(眞文 : 진짜 문재인)의 여당 접수 시작으로 여당이 청와대 여의도 사무소가 된 모양새”라고 비판했다.

청와대와 여권 핵심부에서 양 전 비서관이 이끄는 민주연구원이 대대적인 물갈이 전략을 세우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고 당은 실행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이철희 의원은 이런 시나리오를 부인했다.

“민주연구원은 정책을 연구하는 곳이다. 총선용 여론조사도 한 적이 없다. 양 전 비서관은 마지못해 원장을 맡았다. 그가 공천 작업에 관여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친문 직계가 공천을 주도하면 욕먹을 것이다. 공천 작업은 당 사무총장의 주도로 시스템으로 하는 것이다. 대통령 지시 사항은 정무수석의 몫이다. 양 전 비서관은 당과 시중의 여론을 대통령에게 전하는 순기능 역할을 할 것이다.”

다른 시각도 있다. 친문계 한 의원은 “민주연구원이 선거 승리를 위해 지역별로 현역 의원 교체 비율은 얼마로 하는 등 실질적인 물갈이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며 “대통령 복심이 이런 전략을 정한다면 당에서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 전 비서관은 스스로를 ‘양날의 칼’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문 대통령 옆에 있으면 쓰기는 편하지만 자칫 시스템을 깰 수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공선(公線)과 비선(秘線)의 경계를 허물 수 있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그랬던 그가 민주연구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양날의 칼’이 더불어민주당에 득이 될지, 해가 될지 주목된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2호(2019.04.29 ~ 2019.05.0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