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매보다 임대 수요 높아…지역 경제 집값에 그대로 투영

이들 지역의 상황은 통계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2015년 4월부터 올해 4월까지 지난 4년간 전국 아파트 값 상승률은 9.1%다. 견고한 상승세를 유지한 것이다. 하지만 같은 기간 거제시는 21.3%, 구미시는 17.1% 하락해 전국에서 하락률 1, 2위를 다투고 있다. 두 지역의 경제 상황이 그대로 집값이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100% 실수요에 의해 영향을 받는 전세 시장도 마찬가지다. 지난 4년 동안 전국 전셋값 상승률은 4.8%였는데 거제시는 마이너스 18.4%, 구미시는 마이너스 11.8%로 전셋값 하락률 1위와 3위를 기록하고 있다(전셋값 하락률 2위 지역도 공단 지역인 울산 동구로 마이너스 11.84%다).
◆일자리에 따라 움직이는 노동자들
이들 지역의 매매가나 전셋값이 약세를 보이고 있는 이유는 주택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인데, 다른 지역보다 심한 것은 이들 지역이 공단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들 공단 지역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제조업은 특성상 생산직 인원을 주축으로 한 많은 노동 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어떤 대규모 공장이 있다고 하면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 지역 토박이만은 아니다. 일자리를 찾아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그 지역에 이사 온 유일한 이유는 (주거 환경 등 다른 요소가 아니라) 일자리를 찾아 온 것이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 더 좋은 일자리가 생기면 쉽게 그 지역을 떠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구미시의 공장을 다니던 사람에게 창원시에 있는 다른 공장에서 더 높은 임금을 제시하는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면 이직을 심각하게 고려한다는 뜻이다.
물론 이런 현상은 전국 모든 지역에서 일어날 수 있지만 공단 지역은 그 비율이 높다는 점이 다르다.
이 때문에 공단 지역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집을 사기보다 임대를 선호한다. 집을 덜컥 샀다가 나중에 잘 팔리지 않으면 다른 지역에서 좋은 이직 제안이 들어와도 다른 지역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임대로 살고 있으면 쉽게 임대 보증금을 회수할 수 있으므로 이런 공단 지역은 매매 수요보다 임대 수요가 더 많다. 이 때문에 공단 지역의 전세가율(=전셋값÷매매가)이 높고 갭(매매가-전셋값)이 적은 것이다. 이에 따라 많은 갭 투자가들이 관심을 두는 지역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 지역의 집값이 지난 몇 년간 약세를 보이면서 갭 투자가들의 무덤이 되고 있다. 공단 지역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가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5년 이후 두 지역의 일자리 감소는 눈에 띈다.
구미시는 2015년 21만111개의 일자리가 있었지만 2년 후인 2017년 20만8426개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추세에 있다. 거제시는 아주 심각하다. 2015년 13만6011개였던 일자리가 2017년 11만8008개로 줄어들었다. 2년 13.2%나 감소한 것이다. 같은 기간 전국의 일자리가 3.5%나 증가했던 것에 비하면 이 두 지역의 일자리 감소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이런 일자리 수 감소는 장기적으로 그 지역의 인구수에 영향을 끼친다. 일자리 수 감소가 심각한 거제시를 살펴보자. 거제시는 2015년을 정점으로 일자리 수가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인구수도 2016년을 정점으로 줄어들고 있다. 1년의 시차를 보이는 것이다. 이는 일자리가 줄어들어 실직자가 늘게 되면 1년 정도는 그 지역에서 구직 활동을 벌이다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 영향으로 일자리 감소
이런 현상은 산업도시, 즉 공단이 많은 도시일수록 심하게 나타난다. 그 지역 토박이의 비율이 낮고 외지인의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 지역 토박이라면 회사를 다니다가 실직하면 자신이 태어나고 살아온 그 지역에서 통닭집을 하든지, 택시 운전을 하든지 하면서 다른 살길을 찾아볼 것이다.
하지만 공단의 일자리를 보고 들어왔던 외지인들은 실직하면 그 지역에서 굳이 살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 자영업을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산업도시의 일자리 감소는 다른 지역보다 집값이나 전셋값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이들 지역의 일자리는 급격히 늘어날 가능성이 높지 않다. 제조업의 특성상 인건비가 전체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그런데 인건비라는 것은 국가별로 차이가 크다. 다국적기업의 시각에서 바라보자. 최저임금이 높고 고용 유연성이 낮은 A라는 나라와 최저임금이 낮고 고용 유연성이 높은 B라는 나라가 있다면 어디에 공장을 만들까.
문제는 다국적기업뿐만 아니라 한국 기업들도 다른 나라로 공장을 이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의 노동시장이 기업들의 입맛에 맞는 곳이라면 거제나 구미를 포함한 산업도시는 예전과 같이 활기를 찾을 것이고 그런 지역의 집값도 쭉쭉 오를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는 것이 현실이다.
또 하나의 변수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물결이다. 4차 산업혁명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저임금이 오르자 패스트푸드점과 같은 식당에서 주문 받는 직원 대신 키오스크를 설치해 대신 주문을 받는다는 기사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최저임금이 오르자 오히려 일자리가 감소하는 아이러니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제조업이 패스트푸드점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생산공정이 자동화되면서 단순 생산직이 설 자리를 로봇에 뺏기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수년간 점점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공단 지역의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갭(실투자금)이 적다고 쉽게 투자하는 것은 손실만 키울 따름이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알아야 투자에도 성공할 수 있다. 단순 제조업 중심의 공단 지역 투자는 다른 지역보다 신중해야 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2호(2019.04.29 ~ 2019.05.05) 기사입니다.]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