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치판에선]
-바른미래당發 정계 개편 폭풍 몰아치나
패스트 트랙 ‘진통’ 바른미래, 4·3보선에서 민중당에도 밀리자 ‘간판’ 존립 위기
[한경비즈니스=홍영식 대기자] ‘4·3 국회의원 보궐선거’는 경남 창원성산과 통영·고성 두 곳에서만 실시됐지만 그 결과가 정치판에 끼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그 무엇보다 여의도 정가에 정계 개편의 바람이 몰아칠 가능성이 높다. 통영·고성 수성에 성공하고 창원성산에서 선전한 자유한국당은 내년 4월 실시되는 총선을 겨냥해 세 넓히기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창원성산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단일 후보에게 아깝게 패배한 만큼 총선 승리를 위해선 합종연횡을 통한 세 확산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 진영이 분열된 상태로는 총선도, 대선도 힘들 것이라는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

정계 개편의 진원지는 바른미래당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유한국당이 1차 흡수 통합 대상 후보로 바른미래당을 꼽고 있기 때문이다. 바른미래당은 이번 보궐선거에서 손학규 대표가 창원성산에 상주하면서까지 이재환 후보 지원 유세에 나섰지만 민중당 후보에게조차 패했다.

그렇지 않아도 선거제 개편을 놓고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는 터여서 바른미래당의 참패가 내부 분열로 이어지면서 정계 개편을 촉발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보궐선거에서 단일화의 긍정적 결과를 확인한 더불어민주당이 민주평화당·정의당과 손잡는 부분적 정계 개편이 시도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 선거 참패에 합당설까지

한국 정치사에서 언제나 그랬듯이 총선을 앞두고 여야 각 정당이 ‘헤쳐 모여’ 할 것이라는 전망은 진작부터 제기돼 왔다. 지난해 말부터 자유한국당은 바른미래당을 향해 “다시 뭉치자”는 신호를 보내 왔다.

바른미래당은 2017년 1월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에서 갈라져 나온 바른정당과 안철수 전 의원이 주도해 창당했던 국민의당이 합당해 탄생한 정당이다. 두 정파는 합당 이후 정강·정책과 지난해 6·13 지방선거 공천, 남북한 정상 간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 여부 등을 놓고 사사건건 부딪쳤다.

올해 들어선 선거제 개편을 두고 격한 갈등을 벌여 왔다. 보궐선거를 앞두고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지만 선거 참패까지 겹쳐 휴화산이 다시 폭발할 가능성이 높다. 바른미래당 내홍의 촉매제는 선거제 개편안의 패스트 트랙 처리 문제다.

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은 4당이 합의한 국회의원 선거제 개편안을 패스트 트랙으로 국회에 상정해 처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선거제 개편안 관련 법안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하기 때문에 내년 총선에서 4당이 합의한 선거제를 적용하기 위해선 패스트 트랙을 통해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게 4당의 방침이다.

패스트 트랙은 국회의 법안 처리가 무한정 표류하는 것을 막고 법안을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한 제도다. 신속 처리 대상 안건으로 지정하려면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 또는 안건의 소관 상임위원회 재적 위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의결되면 이 안건은 국회 본회의에 자동 상정된다. 자동 상정까지는 330일이 걸리기 때문에 내년 4월 15일 치러지는 총선에서 이 선거제가 적용되기 위해선 시간이 별로 없다.

문제는 바른미래당 내 갈등으로 패스트 트랙으로 처리하는 게 여의치 않게 됐다는 점이다. 바른미래당 갈등이 끝내 봉합되지 않으면 당이 쪼개져 정계 개편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새누리당 출신 의원들이 자유한국당으로 옮기고 옛 국민의당 의원들은 안철수 전 의원을 중심으로 새 당을 만들거나 더불어민주당으로 갈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나돈다. 벌써 일부 의원들의 탈당설도 제기된다.

패스트 트랙 추진에 반대하는 의원은 유승민·이언주·지상욱·하태경 의원 등 10명 안팎이다. 이 의원을 제외하고 모두 새누리당 출신이다. 유 의원은 “선거법은 게임의 규칙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다수당의 횡포가 지금보다 심했을 때도 끝까지 합의했던 것이 국회의 오랜 전통”이라며 “아무리 좋은 선거법도 패스트 트랙은 안 된다”고 했다. 손학규 대표의 패스트 트랙 추진 방침에 공개적으로 정면 반박한 것이다.

바른미래당 당헌 53조엔 ‘주요 정책, 법안 등에 대하여는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당 입장을 정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바른미래당 소속 의원은 총 29명이다. 패스트 트랙에 반대하는 의원이 9명을 넘으면 당론 채택이 어렵다. 바른미래당이 이탈하면 선거제 개편안의 패스트 트랙은 무산된다.

◆ 이대로는 ‘미래’ 없다…제3지대 통합론 솔솔

새누리당 출신 의원들은 자유한국당 합류설을 부인하고 있다. 친박근혜계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체제에서 자유한국당에 복귀하더라도 불편한 동거가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출신의 한 바른미래당 의원은 “친박계와 치열하게 각을 세우며 새누리당을 떠났던 터에 친박이 다시 당권을 잡은 상황은 우리에게 결코 달갑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바른미래당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어떤 식으로든 분당 수순을 밟을 것이란 관측이 꾸준히 나온다.

지난해 6·13 선거에서 광역단체장은 물론 기초단체장 모두 패배해 바른미래당 간판으로는 총선을 치르기 힘들다는 위기의식이 적지 않다. 전남에 지역구를 둔 한 바른미래당 의원은 “2016년 총선 때 국민의당 이름으로 당선됐는데 그때에 비해 지금의 지지율이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떨어져 있다”며 “바른미래당 이름으로 내년 총선에 나가 지역구 유권자들의 지지를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평화당 내에서도 셈법이 복잡하다. 선거제 개편안을 두고 내부 갈등도 있다. 일부 의원들은 선거제 개편안이 적용되면 민주평화당의 호남 지역구 의석수를 줄일 수밖에 없다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4당이 합의한 ‘50% 연동형 권역별 비례대표제+석패율제’에 따르면 지역구는 225석(현행 253석)으로 줄어들고 비례대표는 75석(현행 47석)으로 늘어난다.

이 때문에 민주평화당과 지역구가 사라질 처지에 놓인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 호남 출신 바른미래당 의원들까지 아우르는 제3지대 통합론이 제기된다. 바른미래당과의 통합 또는 신당 창당, 더불어민주당과의 통합 가능성도 계속 제기돼 왔다.

하지만 정당들이 이념과 철학보다 선거 유불리에 따라 이합집산 하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한국 정치 70여 년의 역사에서 숱한 정당들이 명멸했다.

국민 머릿속에 제대로 각인된 정당 이름이 몇 개나 될까. 주의와 정견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10년 넘게 같은 이름을 유지한 정당은 민주공화당(17년 5개월), 한나라당(14년 3개월), 신민당(13년 8개월), 자유민주연합(10년 9개월) 등 4개에 불과하다.

지난 70여 년 동안 현 더불어민주당 계열의 정당 이름은 20번 넘게 바뀌었다. 자유한국당의 전신(前身) 정당은 10여 개에 달한다. 한국 정치사에서 100년 정당은 언제 나올 수 있을까. 튼튼한 ‘주의’와 ‘정견’으로 무장한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 영국 보수당과 노동당이 100년 넘게 장수하는 것이 부러울 따름이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9호(2019.04.08 ~ 2019.04.1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