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게도 우리 주위에는 좋은 인재와 시스템을 갖추고도 직원들과 불화가 일어나거나 미숙한 리더십으로 갈등에 휩싸이는 사례가 종종 있다. 왜 그럴까. 최고의 인재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 역사상 최고의 명군으로 칭송 받는 세종을 살펴보자. 그는 집현전이라는 ‘싱크탱크(Think-tank)’를 설치해 조선 최우수 인재들을 불러 모았다. 신숙주·성삼문·정인지 등 시대를 대표하는 젊은 학자들을 등용했다. 그 결과 한글 창제는 물론 조선 초기 정치·학문·문화를 정비하고 나라의 기틀을 성공적으로 닦았다.
◆인재 확보보다 소통이 중요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세종이 집현전을 설치해 인재를 불러 모았다는 것 자체보다 그가 어떻게 인재들과 소통했는지, 그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어떤 리더십을 구사했는지 눈여겨봐야 한다. 최고의 인재들이 최대한의 성과를 내도록 소통한 세종 리더십의 핵심은 ‘경청운주(傾聽運籌)’라고 정리할 수 있다.
‘경청운주’는 말 그대로 먼저 경청하고 대안을 찾아 실행한다는 의미다. 아는 내용도 경청해 듣고 모르는 부분은 물어 함께 공부한다. 상황을 파악한 후 계획하고 철저히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리더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덕목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사실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경청(傾聽)’은 상대의 말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내면에 깔려 있는 동기나 정서에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한다. 세종은 본인 스스로 탁월한 군주이자 유능한 학자였다. 하지만 그가 자주 했던 말은 “나는 잘 모른다”는 말이었다고 전해진다. 왕이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전제 왕권 시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그의 입에서 나온 낮은 자세의 말은 신하들에게 큰 울림을 줬을 것이다.
그는 항상 낮은 자세로 백성·신하·학자를 불문하고 겸손하게 의견을 물었다. 집현전의 주요 역할이 왕을 교육하는 경연관이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정책 결정도 혼자 하지 않았다. 신하들의 의견과 집현전 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충분히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다수의 의견을 존중하려는 세종의 면모는 토지 세법에 대한 의견을 수렴할 때 가장 잘 나타난다. 당시 세종은 공법이라는 새로운 세법 안을 두고 백성들에게 찬반 의사를 물었다. 지금으로 치면 ‘국민투표’를 기획한 것이다. ‘세종실록’에는 무려 5개월 동안 진행된 찬반 투표의 과정과 결과가 상세히 기록돼 있다.
오랜 기간 진행한 의견 수렴 과정에도 찬반이 팽팽하게 갈리자 그는 다시 면밀한 조사를 거쳤다. 전라도와 경상도부터 시범 사업을 진행하는가 하면 시범 사업 중 문제점이 발생하자 수정 과정을 거쳤는데 최종 확정되기까지 무려 14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됐다. 이는 세밀한 배려로 백성의 불편을 최대한 줄이고자 하는 노력이었고 동시에 수많은 의견을 경청하려는 자세가 있기에 가능한 업적이었다.
◆자신을 낮추고 배려하라
운주(運籌)는 정밀하게 연구해 계획을 세우고 철저하게 실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양한 의견을 두고 어떤 정책이나 시스템을 밀어붙이는 것은 여러모로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세종은 충분히 의견을 수렴하고 오래 연구한 결과를 통해 판단이 섰을 때 결코 흔들리지 않고 실행에 옮겼다. 단, 단기 대책뿐만 아니라 중·장기 청사진을 그려내 미래의 리스크까지 관리하는 면모를 보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북방 개척을 통한 국경 확립이다. 당시 황희 정승을 포함 다수의 대신들이 반대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세종은 이미 수차례 회의를 열고 발생할 문제점들을 의논하고 대비책을 마련했다.
현지 조사를 통해 지리 조건을 확인하고 결정했다. 세종은 최윤덕을 보내 여진족을 쫓아내고 지금의 국경을 확립하는 데 성공했고 4군 6진 개척의 토대를 마련했다. 만약 그가 ‘운주’의 면모를 보이지 못했다면 여진족의 침입과 약탈이 이어졌을 것이고 명나라와의 외교에도 차질이 생겼을 것이다.
‘경청운주’의 자세를 기반으로 한 세종 리더십의 진면목은 신하들을 배려하고 그들과 소통하는 모습에서 잘 나타난다. 어느 추운 겨울 늦은 밤에 집현전에서 깜빡 잠이 든 신숙주에게 자신이 입고 있던 비단옷을 덮어준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그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각별하게 배려했다. 당시 파격적인 제도 중 하나는 ‘사가독서(賜暇讀書)’였다. 왕이 하사하는 일종의 유급휴가 제도였다. 집현전 학자들은 세종의 지시에 따라 오랜 기간 근무해야 했고 승진이 상대적으로 빠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에 불만을 갖는 학자들이 있다는 말을 들은 세종이 그들을 위해 제도적으로 배려하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사가독서 기간에 심신이 지친 집현전 학자들은 집이나 조용한 절에서 재충전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세종의 배려 덕에 집현전 학자들은 조선 역사 초기 왕조의 기틀을 탄탄하게 다지는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집현전을 통한 다방면의 연구가 조선의 학문과 문화를 완성하는 원동력이 됐다.
각 방면의 뛰어난 인재를 모아 놓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경청운주를 몸소 실천하는 리더의 몫이다. 자신을 낮추고 구성원들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가운데 정해진 목표를 향해 치밀하게 움직인 세종이야말로 이를 실천적으로 보여준 위대한 인물이다.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
약력 :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은 한국 화장품과 제약 산업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윤 회장은 농협중앙회를 거쳐 1974년 대웅제약에 입사해 부사장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창업의 꿈을 이루기 위해 1990년 한국콜마를 설립하고 국내 화장품업계 최초로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시스템을 도입해 매출 1조원의 기업으로 키워 냈다. 2017년엔 이순신 리더십을 전파하는 사단법인 서울여해재단을 설립해 이사장을 맡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8호(2019.04.01 ~ 2019.04.07)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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