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일본·미국 버블 형성기와 비교하면 부동산 가격의 고평가 정도와 주식 밸류에이션 부담은 낮아

[머니 인사이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급락했던 주요국의 자산 가격이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넘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미국의 대표 주가지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지난해 3월 저점 대비 75% 이상 상승했다. 코스피는 지난해 11월 이후 2개월여 만에 약 1000포인트나 급등한 후 숨고르기 중이다. 코로나19 이후 주요국의 적극적인 경기 부양책과 저금리 기조의 장기화, 백신 보급 시작, 미국의 집권당 교체 등이 자산 가격 상승의 배경이다. 다만 대부분의 국가와 자산군에서 자산 가격 상승이 광범위하고 가파르게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실물 경제의 회복은 여전히 더디다는 점에서 버블 논란도 함께 이어지는 중이다.

1980년대 후반 일본·2000년대 중반 미국 vs 현재 한국
[머니 인사이트] 한국의 부동산과 주가는 버블인가?
자산 가격 붐은 경기 회복, 풍부한 유동성, 위험 선호 확대 등이 맞물려 수년간 지속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사후적으로 ‘버블’로 판명됐던 사례를 살펴보면 과열을 우려한 중앙은행이 허둥대며 긴축으로 급선회하면서 자산 가격의 붕괴가 시작됐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980년대 일본의 자산 버블 붕괴는 장기 불황으로 이어졌고 2008년 미국 투자은행의 과도한 투자는 세계 경기침체로 연결됐다. 과거 주요국의 버블 형성 및 붕괴 사례와 현재 한국을 비교, 한국의 부동산과 주가의 버블 위험을 점검해 봤다.

결론적으로 최근 한국 자산 가격의 가파른 상승세에도 불구하고 과거 일본과 미국의 버블 형성기와 비교할 때 한국 부동산 가격의 고평가 정도와 주식 시장의 밸류에이션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한국의 가계 신용이 급증함에 따라 위험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향후 일본·미국과 같은 급격한 버블 붕괴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

본격적인 버블 형성 시기였던 1980년대 후반 일본, 2000년대 중·후반 미국과 현재 한국의 가장 큰 차이는 자산 가격의 상승폭과 버블의 규모다. 코스피가 최고치를 경신하고 한국 주택 가격도 2015년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 가고 있지만 1986~1990년까지 나타난 일본의 자산 가격 상승과 비교하면 상승폭은 매우 작다. 국민소득 1만 달러 돌파 이후 한국과 일본의 가격 궤적을 비교해 봐도 서울의 주택 가격 상승률은 상당히 완만한 수준이다.

단순한 가격 상승폭 이외에 펀더멘털로 추정한 적정 가격과의 괴리 측면에서도 한국과 일본의 차이는 크다. 펀더멘털 지표인 소득과 물가로 추정한 부동산 가격과 실제 가격을 비교해 보면 1980년대 후반 일본, 2000년대 중반 미국에서는 20% 이상의 상당한 수준의 버블이 확인되지만 한국의 부동산 가격은 대체적으로 펀더멘털과 동행하는 흐름을 보여 왔다. 한국 부동산 가격은 2020년의 추가 상승과 소득 감소를 반영하며 이제 고평가 영역으로 진입하기 시작했지만 과거 일본과 미국과 비교하면 고평가 정도는 미미하다(<그림1>).

한국 증시, 버블의 끝자락 아닌 상승장의 중반으로 가는 길
[머니 인사이트] 한국의 부동산과 주가는 버블인가?
주식 시장의 고평가 여부를 판단하는 대표적인 지표는 주가수익률(PER)이다. 최근 미국 증시의 12개월 선행 PER은 22~23배로, 정보기술(IT) 버블 당시인 24.5배 수준에 근접하면서 미국 주식 시장에서도 버블 논쟁이 활발하다. 하지만 낮아진 금리 수준을 감안하면 미국 주식은 비싸지 않다. 금리가 높을 때는 주식의 할인율이 높아지면서 주가에 부정적이지만 금리가 낮을 때는 반대로 할인율이 낮아지면서 주가를 부양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팬데믹(세계적 유행) 충격 이후 금리가 대폭 낮아진 상황을 감안하지 않고 팬데믹 이전의 밸류에이션 수준과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코스피의 PER 역시 13~14배까지 높아지며 역사상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하지만 또 다른 판단 지표인 주가순자산배율(PBR)은 과거 평균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유가증권시장이 과열된 것이 아니라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바닥 국면에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듀퐁 분석을 통해 ROE를 순이익률과 자산 회전율, 재무 레버리지로 분해해 보면 한국 기업은 완전히 체질이 바뀌었고 ROE는 저점 확인 후 빠른 반등이 예상된다.

유가증권시장 상장 기업은 경기 민감 산업 비율이 높고 수출 중심이어서 대외 경기에 민감한 특성이 있다. 순이익률도 약 6~7년을 주기로 3~8% 사이에서 급변동한다. 특히 반도체 슈퍼사이클과 달러 약세가 겹치는 시기에는 8%가 넘는 이익률을 기록한다. 2021년 순이익률 전망치는 5.6%에 불과하다. 2022년 예상치는 6.4%로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는 반도체 슈퍼사이클과 달러 약세가 겹치는 시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순이익률이 7~8%만 상승해도 순이익은 40% 가까이 증가한다. 여기에 매출액 증가까지 감안하면 PER은 9~10배 수준으로 낮아진다(<그림2>).

한국 기업들은 새로운 도약의 시작점에 서 있다. 반도체 산업에 슈퍼사이클이 도래하고 있고 지난 7년간 매출이 정체됐던 삼성전자는 비메모리 반도체로의 확장에 성공하고 있다. 현대차는 삼성 등 IT 기업들과 제휴하며 전기차·수소차의 미래를 열어 가고 있다. IT와 자동차에 선진 기술을 모두 가진 국가는 미국과 한국뿐이다. 2013년 원자재 가격 급락에 타격을 입었던 중후장대 산업도 무너지지 않고 2차전지·태양광·풍력 등의 새로운 산업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며 전혀 다른 새로운 회사로 변신하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아시아에서 독보적인 모바일 플랫폼으로 자리잡고 있고 수년 내 이익 회수기를 맞을 때는 이익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후장대 산업 중심의 유가증권시장이 불과 10년도 안 돼 IT·바이오·2차전지·비메모리 등 신성장 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과거 이렇게 빠르게 산업 구조를 전환한 국가는 없었다. 이런 변화들에 힘입어 2012년 이후 8년간 정체됐던 유가증권시장의 매출은 2021년부터 다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버블이 어떻게 형성되기 시작하고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을 통해 가늠해 볼 수 있다. 국내총생산(GDP)과 기존의 물가 데이터로 보면 지금은 저성장·저물가 시대가 맞다. 하지만 기술 혁신을 통해 창출되는 무형 자산과 빅데이터와 같은 새로운 가치들은 GDP로 측정할 수 없거나 인플레를 낮추는 무료 자산들이 대부분이다. GDP로 측정되지 않더라도 ‘후생’을 창출하는 기술 혁신이 있다면 이는 ‘고용’과 ‘실업률 하락’으로 나타난다. 석유와 가스가 신재생에너지로 교체되면서 나타날 에너지 혁명은 생산성의 급격한 향상과 함께 새로운 경제 성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반면 새로운 기술 도입은 인플레를 더욱 낮춘다. 새로운 기술 혁명은 낮은 실업률과 낮은 인플레를 동반하며 필립스 곡선 이론이 작동하지 않도록 만들고 중앙은행은 실업률이 하락해도 인플레가 낮게 유지되면 완화적인 통화 정책 기조를 지속한다. 역사적으로 그 기간 동안 주식 시장은 어김없이 버블이 형성될 만큼 상승했다. 필립스 곡선이 맞지 않다는 것은 버블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조건이 만들어졌다는 의미다.

과거 유가증권시장은 PBR 1.8~1.9배에서 고점을 형성했다. 유가증권시장 PBR은 이제 1.2배 수준에 도달했을 뿐이다. 과거에 비춰 보면 상승장의 중턱쯤 되는 지점이다. 물론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지만 예상대로 ROE가 회복되고 장기 달러 약세가 펼쳐진다면 불가능하지 않은 시나리오다. 역사적 경제 지표와 구조적인 기업의 변화에 근거해 판단할 때 한국 증시는 버블의 끝자락이 아닌 장기 상승장의 중턱쯤 되는 지점이라고 판단된다. 한국의 자산 가격은 하락 위험보다 상승 잠재력이 더 크다.

위험 요인을 꼽자면 부채의 빠른 증가 속도다. 이는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할 요소다. 금리 하락으로 이자 부담이 크게 늘지 않았지만 금리 상승 속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경기와 물가 움직임은 주의해야 한다. 미국 증시의 120년 역사를 돌아보면 버블 붕괴의 시그널은 실업률의 상승, 추세적 인플레이션과 동반된 긴축 정책으로의 전환이었기 때문이다. 이 두 지표를 통해 버블 붕괴 신호를 사전에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신동준 KB증권 리서치센터장·숭실대 금융경제학과 겸임교수(경제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