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상승률 뺀 실질금리 여전히 높아, 급격한 대출 증가 위험천만


한국은행의 기준 금리와 시장 금리가 사상 최저치까지 떨어지면서 가계 대출이 크게 늘고 있다. 하지만 한국 경제가 구조적으로 저성장 시대에 접어든 만큼 명목금리뿐만 아니라 실질금리도 고려하면서 각 경제 주체가 의사 결정을 해야 할 때다.

우리가 흔히 시장에서 관찰하는 금리는 명목금리다. 여기에는 국채 수익률, 회사채 수익률, 예금 금리, 대출금리 등 다양한 금리가 있다. 이 중에서 가계의 소비와 저축 등 경제활동에 가장 중요한 금리는 예금이나 대출금리일 것이다.

실질 대출금리 2.46%…과거 평균 수준

금리가 많이 떨어졌다. 은행 예금 금리로 예를 들어보자. 신규 취급액 기준으로 예금 금리는 한국 경제가 외환 위기(이른바 IMF 경제 위기)를 겪을 때였던 1998년 3월 17.98%까지 올라갔다. 그러던 금리가 올해 7월 1.57%로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대출금리도 큰 폭으로 떨어졌다. 올해 7월 현재 신규 취급액 기준 은행의 가계 대출금리는 3.17%로, 1998년 6월 16.45%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아졌다.

금리가 이처럼 떨어진 것은 한국 경제가 구조적으로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고 물가가 안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3% 안팎으로 추정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5년 후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5%로, 10년 후 1.8%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게다가 물가 안정도 금리 하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통화정책 운용 체계로서 물가 안정 목표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2013~2015년 물가 안정 목표를 소비자물가 상승률 기준 2.5~3.5%로 설정했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실제 물가는 이보다 훨씬 낮았다. 2013년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3%에 그쳤다. 2014년에도 소비자물가가 1.3% 오른 데 이어 2015년에는 8월까지 0.6% 상승으로 더 낮아졌다. 명목금리는 실질 경제성장률과 물가 상승률을 반영한다. 저성장과 저물가로 금리가 이처럼 낮아진 것이다.

금리가 하락하자 가계의 대출이 급격하게 늘고 있다. 올 들어서도 가계의 은행 대출이 주택 담보대출 중심으로 매월 6조~8조 원 정도 늘면서 8월 말 현재 609조6000억 원에 이르고 있다. 가계 대출은 금리가 더 높은 비은행 금융회사에서도 크게 늘고 있다. 올해 6월 말 현재 한국의 가계 신용은 1130조5000억 원으로 지난해 말(1085조3000억 원)에 비해 45조2000억 원이 증가했다. 특히 지난 2분기에는 가계 신용이 32조2000억 원이나 증가해 분기별로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계 대출이 이처럼 대폭 증가한 것은 가계가 전세를 구하기가 어렵고 전셋값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주택 구입 수요가 증가한 데 주로 기인했다. 하지만 그 근저에는 저금리가 있다. 한국은행이 올 들어 기준 금리를 0.25% 포인트씩 2번 내린 결과 기준 금리가 1.5%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뿐만 아니라 국채 수익률(3년)이 최근에 1.65%로 역시 사상 최저치까지 하락하는 등 시장 금리도 전반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기준 금리와 시장 금리가 낮아지다 보니 은행의 예금 및 대출금리도 하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명목금리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뺀 실질금리는 별로 낮아지지 않았다. 신규 취급액 기준으로 올해 7월 가계의 실질 은행 대출금리는 2.46%였다. 물론 1999년 12월 11.69% 이후 실질금리도 하락 추세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2005년부터 올해 8월까지 실질 대출금리 평균이 2.82%인 것을 고려하면 이제 과거 평균보다 조금(0.36% 포인트) 낮아진 것이다. 7월 현재 명목 대출금리는 5.38%로, 2005년 이후의 평균보다 2.21% 포인트 낮은 것에 비하면 실질금리는 아주 소폭 하락에 그쳤다.

실질 가격으로 따져보면 한국의 집값이나 주가도 큰 폭으로 상승하지 않았다. KB국민은행은 1986년부터 한국의 주택 가격을 월별로 조사해 발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1986년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한국의 전 도시 아파트의 평균가격은 4.4배 상승했다. 하지만 소비자물가 상승을 고려한 실질 가격은 1.4배 오르는 데 그쳤다. 실질 가격 기준으로 장기 추이를 보면 한국의 아파트 가격은 1991년 4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1986년 1월을 100이라고 했을 때 1991년 4월 157로 실질 가격이 57%나 상승했다. 1980년대 중·후반까지 지속됐던 3저(저금리·저달러·저유가) 호황이 끝나고 1990년대 들어 수출이 부진하자 당시 한국 정부가 일산과 분당 등 신도시를 건설하는 등 건설투자를 통해 내수를 부양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 이후 실질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했고 1997년 시작된 외환 위기로 구조조정이 본격화했던 1998년 10월 84로 고점에 비해 46%나 하락했다. 그 이후 중간중간 조정 국면도 있었지만 올해 8월까지 오름세를 지속하면서 1998년 10월에 비해 실질 가격이 65% 상승했다.
‘저금리는 착각’…실질금리를 보라
집값·주가도 실질 가격으론 ‘소폭 상승’

그러나 아직도 한국의 실질 아파트 가격은 1991년 수준을 돌파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인구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제일 빨리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경제가 구조적으로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실질 주택 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르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기간이 지날수록 명목 가격마저 떨어질 수도 있다. 명목금리가 낮다고 해서 투자 대상으로 집을 사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한편 한국의 주가도 실질 가격으로 보면 최근에 올수록 상승세가 둔화되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 주가지수인 코스피 기준으로 보면 명목 주가는 1980년부터 올해 8월까지 17.3배 상승했다. 하지만 소비자물가를 고려한 실질 주가는 2.5배 오르는 데 그쳤다. 배당을 제외한 통계다.
앞으로 한국 경제 상황을 보면 명목금리는 더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한국의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하면서 한국의 저축률이 투자율을 웃돌면서 한국 경제는 자금 잉여국으로 전환됐는데, 최근으로 올수록 저축률과 투자율 차이가 더 확대되고 있다. 국민 경제 전체로 볼 때 자금의 공급이 수요보다 더 증가해 금리가 하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기업의 자금 수요가 줄면서 은행의 자금 운용 중 대출 비중이 줄고 유가증권 투자 비중이 늘고 있는데, 은행은 주식보다 국채 위주로 채권 매수를 늘리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가계에 이어 기업마저 자금 잉여 주체로 변하면서 일본 은행들이 국채 매수를 적극적으로 늘린 가운데 일본의 국채(10년) 수익률이 0.4%로 떨어졌는데, 크게 보면 한국 경제도 유사한 길로 가고 있는 중이다.
‘저금리는 착각’…실질금리를 보라
하지만 명목금리가 낮아져도 실질금리는 같은 비율도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장기적으로 더 낮아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 경제가 수요 부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07년까지 비교적 높은 경제성장을 하면서 기업들이 생산능력을 늘려 놓았는데 미국 등 주요국 가계가 부채가 많아 소비를 늘릴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사상 최저 수준까지 떨어진 명목금리의 영향으로 한국의 가계 부채는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늘고 있다.

또한 수출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50%가 넘을 정도로 한국 경제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데, 미국·일본·유로 지역에 이어 중국마저 환율 전쟁에 가담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수출 증가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내수와 수출 부진으로 한국 경제에 디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고 물가 상승률은 중·장기적으로 더 낮아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일본 가계의 명목금리가 거의 영(0)에 가깝지만 금융자산의 절반 이상을 은행에 맡기고 장기적으로 집값이 떨어진 것은 실질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때문이었는데, 이는 한국 경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계는 명목금리보다 실질금리를 고려하면서 의사 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