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신규 프리미엄 브랜드 공개…‘힐스테이트’ 선호도 경쟁사에 밀려

현대건설이 새 브랜드 론칭하는 까닭
현대건설이 10년 가까이 고수해 온 아파트 브랜드 ‘힐스테이트’ 외 다른 브랜드를 추가한다. 새로운 고급 주택 브랜드(이하 프리미엄 브랜드)를 내놓기로 한 것. 기존 힐스테이트를 신규 프리미엄 브랜드와 병행 사용할 방침이지만 프리미엄 브랜드에 ‘고급 아파트 적용’이라는 타이틀을 달아준 만큼 힐스테이트의 위상을 크게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대건설은 4월 20일 기존 힐스테이트 외에 프리미엄 브랜드를 별도로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힐스테이트는 일반 아파트에, 프리미엄 브랜드는 3.3㎡ 당3000만 원 이상 고급 아파트에 적용할 방침이다.

갑작스러운 브랜드 론칭 소식에 건설 업계는 후끈 달아올랐다. 현대건설은 고급 주택 분야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현하는 차원에서 새로운 브랜드를 도입하게 된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지만 배경을 궁금해 하는 분위기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대건설과 힐스테이트에 무슨 일이 있는지 그 내막을 살펴봤다.


강남에 ‘제2 현대타운’조성 포석
힐스테이트는 2006년 론칭한 아파트 브랜드다. 현대건설이 2000년대 아파트 브랜드 시대에 돌입하면서 사용한 ‘현대 홈타운’에 이은 둘째 브랜드였다. 힐스테이트 론칭 당시 현대건설은 ‘집에 담고 싶은 모든 가치’를 키워드로 아파트 외관·인테리어·조경 등 모든 부문에서 한 차원 높은 주거 상품·서비스를 선보이겠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힐스테이트 자체가 고급 주택 브랜드였다는 것이다.

심지어 ‘힐스테이트’라는 브랜드명 자체가 고급 주거 단지를 뜻하는 ‘힐(Hill)’과 높은 지위와 위엄을 뜻하는 ‘스테이트(State)’가 만나 품격과 자부심이 느껴지는 프리미엄 공간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힐스테이트를 고급 브랜드라고 강조했던 게 무색해지는 것”이라며 “그냥 브랜드 인지도가 낮아 바꾼다고 하면 될 것을 애써 변명하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현대건설이 새 브랜드 론칭하는 까닭
힐스테이트의 브랜드 인지도는 준수한 편에 속한다. 하지만 래미안(삼성물산)·자이(GS건설) 등에 비해서는 저평가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부동산114가 2014년 12월 10~31일 전국 성인 남녀 85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아파트 브랜드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래미안이 브랜드 선호도 1위를 차지했고 e편한세상(대림산업)·푸르지오(대우건설)·자이(GS건설)·더샵(포스코건설)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힐스테이트의 브랜드 선호도는 6위에 그치며 전년보다 2계단 하락했다. 국내 건설업계의 ‘맏형’인 현대건설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결국 이번 프리미엄 브랜드 론칭은 힐스테이트 인지도 하락에 따른 특단의 조치로 보인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특히 지난해 현대차그룹이 10조55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투입하면서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공사 본사 부지를 매입한 가운데 ‘강남 현대타운 조성’이라는 특명을 받은 현대건설로서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야만 했다는 분석이다.

현대건설 직원 김모(32) 씨는 “브랜드 론칭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유독 강남에서 힐스테이트의 인지도가 낮은 것은 사실”이라며 “반포자이나 삼성래미안처럼 내세울 만한 대표 아파트 단지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 같다”고 말했다.

최근 현대건설은 서울 서초구 반포동 삼호가든 3차 재건축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삼호가든 3차는 최고 34층, 총 835가구로 재건축이 완료되면 일반 분양 물량이 기존 가구 수(424가구)와 비슷해 사업성이 우수하고 입지 여건도 준수해 차세대 강남 랜드마크 단지로 꼽힌다. 강남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해야 하는 현대건설에는 군침이 돌 수밖에 없는 사업장이다.

하지만 조합원들의 반응이 시원치 않다. 삼호가든 3차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결과야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현재로서는 힐스테이트가 조합원들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인근 ‘반포 래미안퍼스티지’와 ‘반포 힐스테이트’의 시세 차이만 봐도 아쉬운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KB부동산 시세에 따르면 반포 래미안퍼스트지 전용면적 84㎡의 평균 매매가는 입주(2009년) 당시 12억4000만 원에서 현재(3월 기준) 14억5000만 원으로 약 2억1000만 원 정도 올랐다. 반면 같은 입지의 반포 힐스테이트의 84㎡ 평균 매매가는 입주(2011년) 당시 13억7500만 원이었지만 현재 12억2500만 원으로 오히려 1억5000만 원 떨어졌다.

사실 현대건설은 1970년대 강남 아파트 시장을 주도한 주역이다. 현대건설은 1975년부터 압구정동 일대에 현대아파트(1차)를 짓기 시작해 현대건설 주택사업부를 모태로 탄생한 현대산업개발(구 한국도시개발)과 함께 1987년 14차까지 총 6148가구의 대규모 ‘현대타운’을 완성했다. 당시 잠실과 반포 일대에 지어진 아파트들과 달리 중·대형 면적이 많아 상류층을 위한 대단지 고급 아파트로 입지를 굳힌 압구정 현대아파트에는 현재도 다수의 상류층이 거주하고 있다.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도 그중 하나다.

강남 시대의 막을 열었던 현대건설은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제2의 강남 현대타운’을 조성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를 위해 그룹까지 지원사격에 나선 모양새다. 현대차그룹이 적잖은 출혈의 감수하며 한전 부지를 매입해 대규모 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 또한 현대건설에 적지 않은 힘을 실어주고 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현대건설은 한전 부지 주변 삼성동과 잠실동 일대 재건축 사업 수주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브랜드 같이 쓰는 현대ENG와 차별화
이와 관련해 대형 건설사의 한 임원은 “현대건설로서는 꼭 사수해야만 하는 압구정 현대아파트도 조만간 재건축 사업을 시작한다”면서 “시공사 선정까지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그전에 주목할 만한 강남 대표 단지를 조성해야만 조합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번 프리미엄 브랜드 론칭에 대해 현대엠코 분양 아파트와 차별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기존에 ‘엠코타운’이라는 브랜드로 주택 시장을 공략해 온 현대엠코는 2014년 4월 현대엔지니어링에 합병되면서 신규 분양 아파트에 현대건설의 ‘힐스테이트’ 브랜드를 사용하고 있다. 힐스테이트 효과는 나쁘지 않았다.

힐스테이트로 분양한 7개 단지 중 6곳이 높은 청약률을 기록하며 ‘완판’됐다. 전문가들은 미소 짓는 현대엔지니어링과 달리 현대건설로서는 ‘배가 아팠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장경철 부동산센터 이사는 “아파트 브랜드라는 게 건설사의 얼굴인데 현대건설에 비해 시공 능력이 뒤처지는 현대엔지니어링이 같은 브랜드로 상품을 내놓으니 신경이 쓰였을 것”이라며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해 브랜드 공유 협의 당시 프리미엄 브랜드에 대한 사용 승낙을 받지 못했던 만큼 (프리미엄 브랜드) 공유가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대건설이 던진 프리미엄 브랜드 론칭 카드가 묘수로 평가될지, ‘꼼수’로 평가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며 “이르면 삼호가든 3차 수주전 결과로 판가름 날 것”이라고 말했다.

3월 14일 시공자 선정을 위한 입찰 공고를 낸 삼호가든 3차의 입찰 마감은 5월 8일이다. 현대건설은 5월 초 프리미엄 브랜드에 대한 세부 내용을 공개할 예정이다.


김병화 기자 kb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