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용 부문 떼어낸 캐나다 CPP·네덜란드 ABP…연금 투자 자문 서비스도

전문성·독립성 갖추고 독보적 수익률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 수익률이 해외 연·기금에 못 미치는 이유 중 하나는 기금 운용 조직의 전문성과 독립성이다. 2013년 말 기준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 수익률은 2014년 4.2%를 기록했다. 반면 해외 연·기금 중에서도 운용의 전문성이 뛰어나고 독립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캐나다국민연금(CPP)과 네덜란드공적연금(ABP)은 모두 국민연금에 비해 세 배 가까운 성과를 냈다. CPP와 ABP의 수익률은 16.5%와 14.5%를 기록했다.

물론 두 곳 모두 처음부터 철저한 독립성을 보장받았던 것은 아니다. CPP나 ABP 모두 ‘연금 고갈’이라는 고민에서 그 출발을 찾을 수 있다. 1995년 캐나다의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CPP는 20년 후 자신들의 운용 자산이 모두 고갈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받았다. 이른바 ‘폭탄(the bomshell) 리포트’로 이름 붙여진 이 보고서는 캐나다의 정치·경제권 전체를 뒤흔들었다. 은퇴 후 연금으로 안락한 삶을 기대하며 일하던 캐나다인들의 삶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캐나다는 말 그대로 ‘정신을 바짝 차렸다’. 이 사실을 국민들에게 진지하게 설명한 후 연소득의 6%를 징수하던 것을 9.9%까지 인상하기로 했다. 국민들의 희생만을 요구한 것은 아니다. 1997년 12월 정부는 기금 운용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간섭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CPP와 별개로 캐나다연금투자이사회(CPPIB)를 신설하는 구조 개혁을 단행했다.

CPP는 크게 투 트랙으로 운영된다. 고용복지부에 해당하는 정부 부처(DESD)가 연금제도를 운영하면서 CPPIB라는 독립된 공사가 연금 기금 운용을 맡고 있다.

DESD는 연금의 징수와 전체적인 시스템 운영에만 관여한다. 반면 모든 운용 결정권은 CPPIB가 가지고 있다. CPPIB는 사실상 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민간 회사다. CPPIB는 일반적인 자산 운용사처럼 정치적 요소를 배제하고 기금 운용의 이익 추구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또 실력이 검증된 시장 전문가들을 고용해 시장의 원칙에 충실한 의사 결정을 내리면서 투자 수익을 최대한 많이 챙길 수 있게 한 것이다.


CPPIB, 월가서도 오고 싶어 해
CPPIB의 이사회는 총 12명으로 금융 최고경영자(CEO) 5명, 일반 기업 CEO 4명, 경제학·의학 교수 각 1명, 변호사 1명 등 연·기금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캐나다 각 주 정부 추천을 통해 선임된다. 임기는 3년이지만 일반적으로 3회 정도 연임하면서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이사진이 정부에서 선임되기는 하지만 정부가 직접적인 투자 의사 결정에는 거의 관여하지 못한다. 운용은 이사회 산하 1000여 명의 운용 전문가들이 한다.

CPPIB는 미국 월가 출신의 유명 펀드매니저를 다수 스카우트했다. 이들에게 월가의 수준과 비슷한 급여와 보상 체계를 제시하면서 다른 사기업과 경쟁할 능력을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 ‘캐나다의 미래’를 책임진다는 자부심마저 가지고 있으니 유명 펀드매니저들도 가능하다면 CPPIB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

또한 CPPIB는 모든 투자 기업의 리스트를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상세히 공개하고 있다. 2년에 한 번씩 투자 내역과 성과를 CEO가 직접 캐나다 국민에게 설명하는 자리도 갖고 있다. 누구라도 참석할 수 있고 행사 내용은 인터넷 홈페이지나 유튜브 등을 통해 언제든지 들을 수 있다. 투자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ABP, 운용 전문 자회사 설립
네덜란드의 공무원 및 교직원 연금에 해당하는 ABP 역시 정치적 입김을 배제하고 독립성을 완전히 보장하기 위해 2008년 ‘APG(All Pension Group)’라는 자회사를 설립했다. 1922년 설립된 ABP는 임금 상승률에 대해 100% 보상 급여를 지급하는 게 특징이다. 그만큼 높은 수익률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ABP는 타 연금에 비해 보다 효율성을 중시한다.

ABP와 APG의 관계는 CPP와 CPPIB에 비해 한 층 더 ‘비즈니스적’인 관계다. 캐나다 연금이 정부 기관 시스템을 운영하는 DESD와 자금을 운용하는 CPPIB의 수평적 체제라면, 네덜란드공적연금은 상위 기관인 ABP가 APG에 연금 운용을 맡기는 수직적 체계다. APG는 ABP가 아웃소싱하는 기금뿐만 아니라 연금의 운용까지 맞는 ‘연금 운용 전문 회사’라고 할 수 있다.

APG는 2008년 ABP의 내부 부서가 독립해 만들어졌다. ABP의 연금 관리와 자산 운용 조직이 그대로 APG로 옮겨 왔다. 전체 3000명의 ABP 직원 중 30명 정도만 사무국 형태로 남고 나머지는 모두 APG로 이동했다. 형태는 ‘자회사’다. ABP는 APG의 최대 주주다. ABP가 APG의 지분을 93% 소유하고 있다.
전문성·독립성 갖추고 독보적 수익률
APG에게 ABP는 최대 주주이자 아웃소싱을 받는 최대 고객이다. APG는 ABP뿐만 아니라 외부의 연금 펀드들에 ‘투자 자문 서비스’를 제공해 수익을 내기도 한다.

APG는 15개 정도의 투자 풀을 구성해 소형 연금들이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쉽게 말해 자금력이 떨어지는 소형 연금들이 APG에 가입하면 자산 440조 원의 초대형 펀드와 똑같은 투자를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또 운용 자금은 APG가 직접 운용하기도 하지만 60% 수준의 자금을 블랙록 등 글로벌 자산 운용사에 맡긴다. 직접 운용하며 ‘안전장치’를 만든 후 외부의 자산 운용사를 활용해 ‘수익성’을 높이는 것이다.

APG가 좋은 성과를 내면서 현재 네덜란드의 연금은 대부분이 이 같은 시스템을 통해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네덜란드에서 둘째로 큰 연금인 건강헬스케어산업연금(PFZW)도 비슷한 시기에 관련 조직을 사회보장기금(PGGM)으로 독립시켰다. 업계 3위인 MN서비스는 광물산업연금이 모태다.



돋보기
성장 기업 발굴…문화 콘텐츠 투자도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있는 캐나다연금투자이사회(CPPIB)와 네덜란드공적연금(ABP)은 어떻게 투자하고 있을까. 2014년 기준 말 기준 국민연금은 전체 기금의 59%를 채권에 묻어 뒀고 주식과 대체 투자 비중은 31%와 9% 수준이었다. 반면 수익률 1등인 CPPIB는 주식에 34%, 채권에 31%, 대체 투자에 35% 비중을 두고 있다. ABP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즉 채권보다 주식과 대체 투자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투자법은 기상천외할 정도다. 2014년 9월 미국 증시 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공개(IPO) 기록을 세운 중국 최대 인터넷 상거래 업체 알리바바는 CPPIB가 이미 ‘입도선매’했던 기업이다. CPPIB는 이미 2011년에 5억5000만 달러(약 6113억 원)를 투자했다. 당시 320억 달러 수준이었던 이 회사의 가치는 상장할 당시 2700억 달러로 8.5배나 뛰었다. CPPIB가 알리바바 주식 보유 수 등 자세한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투자 수익이 4조 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ABP는 지식재산권에 대해서도 투자하고 있다. 알 켈리, 마이클 잭슨, 마돈나와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곡 등 25만여 곡에 대한 지식재산권을 사 모았다. 세계 최대 음원 보유자는 바로 ABP로, 업계에서는 ABP를 ‘진정한 팝의 황제’라고 부를 정도다. ABP는 투자 대상이 비단 음원뿐만 아니라 영화·미술·문학작품·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ABP는 이런 문화 대체 투자 분야에서만 연 10%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