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미 앞두고 삐뚤어진 역사의식 논란, “워싱턴, 일본 돈에 휘둘려”

‘패전 70주년’…미 의회 연설하는 아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4월 26일부터 5월 3일까지 8일간 미국을 방문한다. 올해는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일본에 승리한 지 70주년이어서 아베 총리의 방미는 미일 양국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 아베는 일본 총리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미 의회에서 상·하원 합동 연설을 하는 영예를 얻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맹’으로 변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아베 총리의 방미를 앞두고 미 정치권에서 그의 비뚤어진 역사 의식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마이크 혼다, 찰스 랭글, 스티브 이스라엘, 빌 파스크렐 등 민주당 연방 하원 의원들은 지난 4월 21일 미 하원 본회의장에서 열린 특별 연설을 통해 “아베 총리는 이번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위안부 문제를 포함해 과거의 전쟁범죄를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혼다 의원은 “아베 총리는 합동 연설에서 일본 정부를 대표해 완벽하고 공식적인 사과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스라엘 의원은 “아베 총리는 성노예로 끌려간 수십만 명의 여성들에 대한 잔학 행위를 솔직하게 자백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연설한 의원들은 모두 친한파이지만 아베 총리의 역사의식에 대한 미 의회 내부의 부정적인 기류를 반영한 것이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유력 언론들도 아베의 역사 수정주의적 태도를 비판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4월 20일 사설에서 “방미의 성공 여부는 아베 총리가 얼마나 정직하게 일본의 전쟁 역사를 마주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아베 총리는 공개적으로 전쟁을 반성하고 성노예 문제를 포함해 침략 행위에 대한 과거의 사과를 존중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자신의 발언에 모호한 수식어를 덧붙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는 그가 사과 문제를 진지하게 여기지 않고 있고 나아가 이를 희석하려고 하고 있다는 의심을 사게 한다”고 비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기사에서 “역사 수정주의적 성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아베 총리가 식민 지배와 침략으로 주변국에 손해와 고통을 입힌 데 대해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어떻게 다룰지 분명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언론들의 이런 지적은 아베에 대한 미국의 불편한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다.


기업 통해 의회에 합법적으로 영향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가 국빈급으로 미국을 방문하고 의회 상·하원 합동 연설 기회까지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돈’의 위력이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 편집장 출신의 동아시아 경제 전문가인 에몬 핑글톤은 포브스 칼럼에서 “존 베이너 미국 하원 의장이 일본 총리에게 아부했다”며 “미 의회는 그 어느 때보다 돈에 의해 운영되고 있고 일본만큼 워싱턴에 돈다발을 뿌릴 수 있는 나라는 없다”고 했다. 그는 “일본은 미국에 진출한 회사를 통해 합법적으로 정치권에 돈을 넣으면서 미 의회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이 미국의 최고 동맹국이라고 자처하고 있다. 영국·프랑스·호주·한국 등이 중국의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 창립 회원국으로 가입했지만 일본은 미국의 ‘반대 권유’를 존중해 AIIB에 끝내 가입하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태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핵심 전략 중 하나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도 아베 총리는 일찌감치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협상에 참여했고 지금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 일본은 미국이 ‘이슬람국가(IS)’와 벌이고 있는 전쟁에도 수천만 달러 이상의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워싱턴 = 장진모 한국경제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