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위험관리 방식이 더 큰 위기 불러…열린 플랫폼 구축해야

계기판·관제탑 모두 멈춰 선 경제
흔히 경제 운영을 비행기 조종에 비유한다. 계기판 정보와 함께 컨트롤 타워에서 전해지는 지시는 안전 운항에 필수적이다. 경제 주체들도 시장 정보를 토대로 여러 가지 중요한 결정을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정책과 정보만 믿고 결정을 하기 어려워졌다. 소위 계기판 정보도 들쭉날쭉하고 컨트롤 타워의 역할마저 위기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시장에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최근 안심 전환 대출까지 적용해 가면서 사전적인 뇌관 제거 작업에 나선 한국의 경제 상황은 전통적인 정책의 통제력이 약화된 현실을 반영한다. 간과하기 쉬운 사실은 현재의 상황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위험관리의 결과라는 점이다. 환경이 변했는데 대응 방식이 구태의연하다면 효율적인 위험관리라고 할 수 없다.


개방과 협업…새로운 생태계 필요
불행히 세계경제 환경은 앞으로 더욱 심각하게 꼬일 가능성이 높다. 세계적으로 거시 정책 차원의 조율이나 집행은 더 이상 크게 기대할 게 없다. 진정한 투쟁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경제체제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그런데 자체적으로 적응 여력이 제한된 역내 경제는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심각한 혼란을 피할 길이 없다. 위험관리의 중요성이 강조됨에도 불구하고 신흥 시장으로 위험이 집중되는 현상은 결과적으로 제대로 된 위험 파악과 거래가 불가능한 폐쇄적 경제구조에서 비롯됐다는 얘기다. 즉, 인터넷의 저쪽 세상과 달리 이쪽에서의 개방 플랫폼 결여가 위험관리의 어려움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현실적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어렵다면 전략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현재의 위험관리가 더 큰 미래의 위험관리 부담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우리에게 결여된 게 무엇인지 냉철하게 판단하고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 몇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

첫째, 각개전투의 이전투구를 지양해야 한다. 급할수록 차분히 준비해야 한다. 심모원려(深謀遠慮:깊은 꾀와 먼 장래를 내다보는 생각)의 관점으로 생태계를 유지하는 역할이 우선시돼야 한다. 개별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위험에 대해서는 플랫폼 차원에서의 대응 여력 구축이 중요하다.

둘째, 관료와 정치권 주도로 불가피한 지배 구조상의 공백을 민간과 시장으로 적극적으로 채워 나가야 한다.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시장 대신 정책이, 민간의 자율성 대신 기득권 우선의 이해관계가 더욱 고착화되고 있다. 소통과 교류가 절실한 상황에서 단절과 통제가 강화되면서 체제적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지배 구조가 그대로인 상황에서의 단기 위험관리는 위험을 미래로 넘겨 놓는 작업에 불과하다.

셋째, 잠재적 위험을 키우지 않는 위험관리를 위해서는 중앙집권적 관리보다 개별 단위에서 다양한 연관을 통해 스스로 관리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관료 중심의 통제 위주로는 이러한 생태계를 조성하기 어렵다. 특히 현재의 선택으로 관련 위험이 미래에 불특정 다수로 전가되지 않도록 하려면 연계성 있는 시장 플랫폼(connected market platform)을 우선 구축해야 한다. 아마존(Amazon)과 같은 정보에 기초한 다양한 참여자들의 기여로 유지되는 플랫폼이 역내 차원에서 발현돼야 한다.

작금의 상황은 ‘개방과 협업(collaboration)’이라는 새로운 생태계로의 전환 여부에 따라 미래의 운명이 갈리도록 돼 있다. 그런데 역내에는 제대로 된 플랫폼이 구축돼 있다고 보기 힘들다. 그동안 수출 드라이브로 조성된 우리의 생태계는 이러한 새로운 생태계의 필수 요소를 갖추기에는 과도하게 분화(fragmentation)돼 있다. 실제로 모든 것이 연결된 세상에서 플랫폼에 기초한 협업을 이끌어 낼 수 없다면 미래 주도형 생태계의 조성은 불가능해진다. 현실이 요구하는 위험관리와 우리의 대응 능력 간에는 상당한 격차가 존재한다. 연결된 세상의 위험관리는 연결된 플랫폼 위주로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는 연계성을 활용한 시장 접근에 소홀했다. 사실 기존 패러다임의 승자가 선별되고 고착화되면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허용할 만한 정치사회적 지배 구조 형성이 지연됐다. 따라서 경제 생태계의 활력이 점차로 약화될 수밖에 없다. 생산성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네트워크에서 구현돼야 하는데 연결고리를 찾기도, 협소한 시장을 배경으로 플랫폼 단위의 시도를 감행하기도 어렵다.


과도한 정치 의존 버려야
지금과 같은 상황을 ‘정책’으로 풀어내기는 어렵다. 게다가 언제부터인가 한국은 정치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 정치는 모든 것을 해결하는 요술 방망이 같지만 경제문제에 대해서는 피할 수 없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근본 해법 대신 단기적 즉답만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사회 지배 구조상의 문제는 정치적 해법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플랫폼 없이 개별적으로 이뤄지는 위험관리는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기존의 데이터 수집과 분석만으로는 쉽게 착시 현상에 빠지기 쉽다. 기존의 단선적 위험 분석과 대응 체계로는 복잡한 연관으로 나타나는 위험 프로파일을 관리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소위 생태계적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기존의 환경에 익숙한 제반 물적·인적 인프라만 가지고는 현재의 복잡한 상황을 이해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비관만 할 필요는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는 지금의 특징을 최대한 활용해 가치를 창출하고 나눠야 한다. 정책의 수단이나 집행 방식 그리고 컨트롤 타워의 시장 모니터링 기능, 더 나아가서는 시장 지표의 구성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데이터 분석 기법과 엄청난 컴퓨터의 역량, 전체를 보는 시각, 복합적인 대화 채널 등 나름대로 가용한 수단이 있기 때문이다.

작금의 상황에서 요구되는 키워드는 이쪽에서 기존 패러다임에 갇혀 묵시적으로 억압되고 있는 시장과 민간 주도 경제의 발현이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정치제도의 개혁과 현재의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글로벌 차원의 전략 구사다. 더 이상 편협한 안목의 대리인이 이끄는 경제로는 다가오는 파고를 넘을 수 없다. 민간의 창의성이 마음껏 발현될 수 있는 생태계는 연계성에 기초한 플랫폼 단위에서 가능하며 핵심 동력은 글로벌 시장이다. 발상의 전환으로 자생적 연결 고리를 만들어 주고 모두가 참여하게 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미 세계경제가 원하는 방향은 ‘참여적 발전’이다. 기술로서 이러한 환경 조성이 충분히 가능해졌다. 모두의 행복을 위하고 기존 패러다임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모바일 플랫폼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해야 한다. 모바일 환경의 핵심은 국경이라는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이므로 내부에서 약화되는 동력을 안타까워하지 말고 변화된 바깥세상이 요구하는 것들을 충족해 나가면 된다. 이제 필요한 것은 발상의 전환이다. 기술로 무장한 글로벌 경제 플랫폼이 가져다줄 경제 혜택에 대해 차분하게 준비할 때다.

해외에 진출해 공동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협업 체계는 다른 인위적 배려보다 자연스럽고 시장 경쟁 환경에 부합한다. 특히 역내 시장의 공동 개척이라는 명제 하에 국내 산업 역량이 집결한다면 플랫폼 확장에 필요한 연계성이 자연스럽게 구축될 수 있다.

우리끼리만의 폐쇄적 환경에 안주하지 말고 기술 발전이 허용하는 새로운 환경을 충분히 활용해 디지털 영토 확장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물론 경쟁력의 핵심이 개방과 협업이라는 사실을 숙지하면서 그동안 시도해 보지 못했던,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오픈 플랫폼 구축에 우리 경제 생태계의 모든 참여자들이 적극 나서야 한다. 이것이 잠재 위험의 증가를 수반하지 않는 미래 지향적 위험관리의 요체다.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