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 개발 비리 수사 진행형…베트남 랜드마크72 매각이 키포인트

‘사면초가’ 경남기업, 회생 가능성은
“A 씨요? 접견실에 있는 것 같던데…. 복도 끝에서 좌측에 있는 접견실로 가 보세요.”

4월 15일 오후 5시 경남기업을 찾았다. 그런데 너무 조용하다. 성완종 전 회장의 죽음과 함께 불거진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시끌벅적할 것이라는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비어 있는 안내 데스크 옆 경비실 직원에게 A 씨(경남기업 직원)의 이름을 말하자 접견실로 안내한다. 접견실에는 한 무리가 대화 중이었지만 A 씨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접견실에 놓인 내선 전화를 통해 A 씨 근무 부서로 연결을 시도했지만 쉽사리 통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드디어 A 씨와의 통화에 성공했다. 5분, 10분, 15분…. 접견실로 내려오겠다는 A 씨는 또다시 감감무소식이다. 차에 두고 온 노트북을 가지러 나가려는 데 정문이 잠겨 있다. “회장 집무실이 있는 2층과 임원실이 자리한 3층으로 갔다며?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네.” 복도에서 마주친 직원들의 표정이 굳어 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접견실로 돌아오자 그제야 찾아온 A 씨가 상황을 설명했다. “좀 전에 갑자기 (검찰이) 압수수색이 들어와서요. 저도 브리핑 때문에 여기에 있으면 안 된다고 하네요. 저도 보고할 부분이 있어 다시 올라가야 하고 외부인은 나가야 한답니다.” 짐을 챙겨 접견실을 나오자 경비원이 쫓아와 잠겨 있던 문을 열어 줬다.


성 전 회장, 사망 전 지분 포기
사면초가. 본의 아니게 경남기업에 갇혀 있던(?) 약 1시간 동안 온몸으로 체감한 경남기업의 현주소다. 경남기업은 과연 기사회생할 수 있을까.

4월 7일 기업 회생 절차(법정관리) 개시 결정. 4월 9일 ‘해외 자원 개발 비리 의혹’에 연루돼 검찰 수사를 받고 있던 성완종(64) 경남기업 전 회장 자살. 4월 15일 42년 만에 상장폐지. 불과 1주일 사이 경남기업에 벌어진 일들이다.

1951년 창립된 경남기업은 2003년 성완종 회장(당시 대아건설 사장)이 인수해 10년 만에 연매출 2조 원을 넘나드는 대어로 성장했던 회사다. 2014년 기준 도급순위는 24위다.

현재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진 경남기업이 살아날 수 있을지 누구 하나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경남기업의 회생 여부는 크게 세 가지 변수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자원 외교 비리 수사, 다른 하나는 베트남 랜드마크72 매각, 마지막으로 내부 결속이다.

먼저 검찰이 자원 외교 비리 수사를 강행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경남기업은 계속 도마 위에 오를 전망이다. 특히 성 전 회장의 죽음 이후 불법 정치자금 의혹인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파문까지 일파만파 퍼진 만큼 이를 밝히기 위한 경남기업에 대한 조사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검찰의 비리 조사가 계속되면 상당한 내부 충격이 있을 것”이라며 “오너 일가의 지배권도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3월 금융감독원 공시 시스템에 게재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경남기업은 성 전 회장이 최대 주주로 9.50%, 계열사 대아레저산업이 8.78%, 성 전 회장이 설립한 서산장학재단이 1.31%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성 전 회장은 앞서 3월 17일 경영권과 지분 포기를 선언했고 법원의 회생 계획안에도 대주주 감자 등이 포함돼 있어 현재의 지분 구조는 더 이상 의미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감자는 기존 주주의 주식 수를 줄이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법정 관리에 들어가면 대주주의 책임을 묻기 위해 감자 후 출자 전환(부채를 주식으로 바꾸는 것)을 하게 된다. 한 대형 건설사 임원은 “출자 전환 후 지분 구조는 완전히 채권자 위주로 바뀌게 된다”며 “대부분의 지분이 사라질 전망인 가운데 법정 관리인도 외부 인사로 선임돼 오너 일가의 지배력은 소멸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성 전 회장은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사망 사흘 전인 4월 6일에도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 승훈 씨 등을 관리인으로 선임해 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둘째 변수는 경남기업이 2012년 베트남에 지은 건물 ‘랜드마크72’의 매각 여부다. 랜드마크72는 총공사비 1조2000억 원이 투입된 대형 사업으로 베트남 내 최고층(72층, 350m) 건물이다. 총면적은 60만8946㎡로 서울 여의도 63스퀘어의 3.5배에 달한다. 국내 최초로 해외시장에 뛰어들었던 경남기업에는 자부심이었고 성 전 회장도 끝까지 지키려고 했던 건물이다. 하지만 랜드마크72는 위기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랜드마크72가 분양에 실패하면서 경남기업을 유동성 위기에 빠뜨렸다는 분석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베트남에서 집 장사하려다가 낭패를 본 것”이라며 “그쪽(베트남) 시장에서 수용하지 못할 정도로 분양가가 높은 가운데 새시가 떨어진다는 등 품질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도 퍼지며 분양에 실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면초가’ 경남기업, 회생 가능성은
현재 상황에서 랜드마크72는 경남기업 회생 여부의 키포인트다. 랜드마크72 매각을 통해 대규모 유동성 확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서는 랜드마크72가 1조 원 정도에 매각될 수도 있다는 평가다. 이 정도 수준에서 매각하게 되면 랜드마크72 사업을 위해 금융권으로부터 빌린 프로젝트 파이낸싱(5100억 원)을 비롯해 다양한 채무를 해소할 수 있을 전망이다. 다만 1조 원에 달하는 부담스러운 매각 규모와 경남기업이 법정 관리에 들어간 상태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자칫 헐값에 매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마지막 변수는 내부 결속이다. 법원은 5월 14일 채권 신고에 이어 7월 15일 집회 기일 등 앞으로 두 달간 경남기업에 대한 자산 실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실사 결과 ‘계속 기업 가치’가 ‘청산 가치’보다 높다고 판단된다면 본격적인 회생 절차를 진행하게 된다.


법정관리인 선임 갈등…청산 시나리오도
일단 랜드마크72 매각이 성공적으로 이뤄져 유동성이 확보된다면 계속 기업 가치가 높아지겠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성완종 리스트’ 등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내부 갈등까지 심화되면 회생에 부담을 느낀 법원이 ‘청산’을 결정할 수도 있다. 최근 경남기업은 회생 절차 관리인 자리를 놓고 성 전 회장과 노조, 전문 경영인인 장해남 사장 등이 의견 충돌로 갈등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이 제3자인 이성희 두산엔진 전 대표를 법정 관리인으로 선임하면서 갈등이 일단락된 듯 보였지만 또 다른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안팎으로 시끄러운 상황 속에서 외부 관리인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데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건설 업계 한 관계자는 “결코 쉽지 않은 회생 과정에 다수의 직원들이 동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구심점 역할을 해 왔던 오너마저 사라진 상태”라며 “경남기업에 대한 애정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외부 인사가 과연 끝까지 회사를 살리기 위해 노력할지, 그저 현 상황을 정리(청산)하는 데 그칠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경남기업은 4월 15일 주식시장에서 사라졌다. 1973년 국내 건설사 중 최초로 기업공개(IPO)에 나서며 주식시장에 입성한 지 42년 만이다. 상장폐지 전날(4월 14일) 최종 주가는 주당 113원이다. 1994년 최고 22만5000원까지 기록했던 경남기업의 주가가 휴지 조각 신세로 전락한 셈이다.


김병화 기자 kb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