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생. 2004년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졸업. 2012년 서울대 기술경영경제정책 박사. 2012년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경제연구실 선임연구원(현).
중국의 힘을 새삼 느끼게 된다. 중국이 주도하는 국제금융 기구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흥행 대박을 기록했다.
미국의 반대 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AIIB가 이처럼 흥행에 성공한 것은 무엇보다 연간 7300억 달러 규모로 예상되는 아시아 인프라 투자시장에서 AIIB가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시아개발은행(ADB)과 비교해 보면 AIIB의 파급효과를 짐작해볼 수 있다. AIIB의 초기 자본금은 1000억 달러로 ADB 자본금 1638억 달러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교육·위생·보건 등으로 사업이 분산돼 있어 인프라 투자가 전체 사업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ADB와 달리 AIIB는 인프라 투자에 특화돼 있어 비즈니스 기회는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 AIIB는 일차적으로 시진핑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 중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구체화하는 데 중점적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중국판 마셜 플랜’으로 불리는 일대일로는 주변 아시아 신흥국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주변국의 경제 발전을 도모하고 교류를 증진시키겠다는 것이다. 인프라 투자가 시급한 주변국들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 과정에서 중국은 인프라 수출을 확대함으로써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과잉생산 문제를 해소하는 한편 위안화 국제화도 가속화되는 효과를 누릴 것으로 예상된다. 4조 달러에 육박하는 외화보유액의 투자 효율성 제고와 중동으로부터의 안정적인 수입 루트 확보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중국 외화보유액의 절반 이상이 미국 등 선진국 채권에 투자돼 있어 저금리 상황에서 낮은 수익률과 환차손 부담 등으로 투자 다변화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여러모로 AIIB가 ‘신의 한 수’인 것이다.
한국 역시 수혜가 예상된다. 직접적으로는 한국의 AIIB 참여로 아시아 인프라 투자시장에 대한 국내 기업의 진출 기회가 확대될 전망이다. 아시아는 중동 다음으로 국내 건설·엔지니어링사의 수주 비중이 높은 시장이다. 중국이 AIIB를 주도함에 따라 중국 기업의 참여가 두드러질 가능성이 높지만 AIIB가 국제기구를 추구하고 있는 만큼 회원국들에 대한 비교적 공정한 수주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시아 시장에서 수주 실적을 쌓아 온 국내 관련 기업들의 수주 증가가 예상된다. 또한 향후 AIIB의 활동이 본격화되고 역내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실행 단계에 접어든다면 철강·화학제품 등 소재와 산업재 부문의 과잉공급 상황도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장기적으로는 AIIB를 통해 아시아 지역의 인프라 투자가 확대됨에 따라 역내 경제 발전이 가속화되면서 한국의 대(對)아시아 수출이 증가할 전망이다. 2014년 한국의 아시아 수출은 3242억 달러로 전체 수출의 57.9%를 차지하고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수출도 1784억 달러(31.9%)에 달한다. 현재 아시아 지역에서 상하수도·전기·포장도로 등의 기초적인 인프라를 이용하지 못하는 인구가 8억~10억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AIIB를 통해 이들의 시장 편입이 가속화되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직 AIIB 정식 출범까지 회원국 간 지분 협상 등 여러 문제가 남아 있지만 성공적인 출범에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성장성이 둔화되고 있는 중국에 AIIB가 성공적인 돌파구 역할을 해낼지, AIIB를 출발점으로 아시아 신흥국들이 성공적인 경제성장을 이뤄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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