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스닥·코스닥의 이유 있는 질주…IT·헬스케어·소비재가 새 주역

신사업은 불황 속에 자란다
어느 국가든 불황을 겪기 마련이다. 지금 잘나가고 있는 미국도 2008년 금융 위기로 대공황을 떠올릴 만한 불황을 경험했다. 그러나 지금의 미국은 소비를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고 주가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세계경제와 주식시장을 이끌고 있다.

불황을 극복하는 데는 공통점이 있다.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며 이전 산업을 대체한다. 1970년대 미국은 두 차례의 오일쇼크로 경기 침체에 빠졌다. 당시 미국을 이끌던 자동차 산업은 오일쇼크로 쇠퇴했다. 자동차를 대신해 석유산업이 등장했다. 당시 석유산업의 부흥은 원유·가스의 시추공 수로 알 수 있다. 1975년 1600개에 불과했던 시추공 수는 1981년 말 4520개까지 증가했다. 광물 및 석유산업이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3%에서 3.9%로 높아졌다.


금융 위기 이후 불황 극복 키는 ‘소비’
또 한 번의 불황이 찾아왔다. 1980년대 초 미국은 이중 침체(더블 딥)에 빠졌다. 레이건 정부는 세금 인하를 통해 재정 적자를 확대했고 적극적인 금융 규제 완화를 실행해 금융 산업을 육성했다. 1980년 ‘예금 금융회사 규제 철폐 및 통화관리법’이 제정되면서 예금 금리 규제가 완화됐고 1982년 ‘예금 금융회사법’을 바탕으로 금리자유화가 급진전됐다. 1986년 금리 상한 규제 폐지, 1989년부터 은행과 증권업의 겸업을 허용했다. 1981년 4.9%에 불과했던 금융업 비중은 1991년 6.4%로 증가한 반면 전통 제조업(화학·철강)은 후퇴했다. 새로운 산업의 등장으로 미국은 불황을 벗어났다.

세 번째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1990년대 초 걸프전, 저축대부조합 파산 등으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추락했다. 유가는 급등했고 소비는 위축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은 전략 비축유를 방출했고 미국의 우방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 수출을 늘렸다.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1990년 배럴당 평균 24.5달러에서 1994년 17.2달러로 하락했다. 기준 금리도 7%에서 4%대로 인하됐다. 저유가와 저금리를 바탕으로 벤처 투자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정보기술(IT) 버블의 시작이었다. 당시 IT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1999년 미국의 벤처 투자 금액은 전년 대비 무려 155%나 급증했다. 새로운 산업은 경기가 여유로울 때가 아니라 어려울 때 떠오른다.

금융 위기 이후 불황 극복의 키는 소비다. 저금리와 저유가는 소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국제금리가 하락하거나 국제 유가가 하락했던 국면에서는 고정자산 투자보다 민간 소비 증가율이 평균적으로 높았다. 다만 현재의 소비는 이전 세대와는 다르다.

첫째, 현재의 소비는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아마존(미국)이나 알리바바(중국)와 같은 글로벌 온라인 상거래 기업들의 매출 성장은 메이시스(미국)나 이세탄미쓰코시(일본)와 같은 전통적인 유통 업체(백화점)의 매출 성장을 훌쩍 뛰어넘었다.

둘째, 시간의 제약도 넘어서고 있다. 택배 회사들은 빠른 배송이 중요하다. 글로벌 택배 기업 중 항공 부문 매출(비중 13%)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페덱스(미국)는 매출액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특히 항공 부문의 매출 성장이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UPS도 전체 매출보다 항공 부문 매출(비중 5%)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신사업은 불황 속에 자란다
셋째, 가격을 인하해 물량을 늘리는 소비가 유행하고 있다. 저가 항공사와 저가 스마트폰이 이에 해당한다. 유럽의 대표적 저가 항공사인 라이언에어(아일랜드)와 이지제트(영국)의 매출액은 모두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저가 스마트폰을 제조하는 회사인 레노버그룹의 매출액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나스닥·코스닥, 신산업 비중 높아
달라진 소비 형태는 주식시장에도 반영되고 있다. 기업에서 고객으로 바로 연결될 수 있고 가격을 인하하면 판매량이 증가하는 대표적 산업들인 IT와 헬스 케어(의약품·의료기기·바이오), 각종 소비 관련 기업이 글로벌 주식시장에서 주도주로 떠오르고 있다. 반면 2000년대 중반 중국 투자 중심의 성장 시대를 주도했던 철강·화학·정유 등은 그 자리를 내줬다. 한국 주식시장도 마찬가지다. 철강·화학·정유 등의 시가총액 비중은 2007년을 정점으로 낮아지고 있는 반면 IT·헬스케어·소비재 업종의 시가총액 비중은 증가하고 있다.

물론 나스닥의 버블 논란이 있다. 그러나 지수 구성상 나스닥의 프리미엄은 유효하다. IT·헬스케어, 경기 및 필수소비재 등 소비 관련 기업들의 비중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에서는 40%인 반면 나스닥지수에서는 무려 62%에 달한다. 헬스 케어의 미국 산업 내 비중은 7.6%로 역대 최고치다. 주식시장에서 헬스 케어의 비중은 14.7%이지만 2003년 고점 15.8%에 비해서는 아직 낮다.
신사업은 불황 속에 자란다
한편 미국 벤처 투자 금액은 2년 연속 증가했다. 벤처 투자 금액과 나스닥지수는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 2014년 기준으로 벤처 투자 금액은 68% 증가했고 벤처캐피털지수는 이전 고점 대비 2배 이상 올랐다. 1990년 중반 경험을 상기해 보면 벤처 붐은 나스닥 붐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벤처 투자가 증가하는 산업은 결국 구산업을 대체하는 신산업이 될 것이다. 과거에 비해 벤처 투자 금액이 늘어난 산업은 바이오, 의료 기기, 대체에너지(태양광·풍력 등) 분야다.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한 투자 비중은 1990년대 중반과 같이 여전히 높다. 이들이 향후 창조적 파괴를 이끌어 갈 주인공들이다.

한국 코스닥의 산업별 비중은 나스닥과 유사하다. 코스피 기업 중 소비 관련 기업, 즉 IT·헬스케어와 경기 및 필수소비재 산업 비중은 44%에 불과한 반면 코스닥은 무려 66%에 달한다. 나스닥이 움직일 때 코스피보다 코스닥이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코스닥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도 버릴 필요가 있다. 2012년까지 코스피의 외국인 순매수 강도(외국인 연간 순매수 금액÷연평균 시가총액)가 강했지만 2013년과 2014년에는 오히려 코스닥이 강했다. 코스닥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0%(코스피는 34%)에 불과하다. 중국·인도 증시의 외국인 비중과 유사하다. 글로벌 트렌드와 성장성을 감안하면 향후 외국인의 관심은 코스닥에서도 높아질 것으로 판단된다.

코스닥 기업들의 실적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코스피와 코스닥의 시가총액 상위 20개 기업(금융 업종은 제외)의 영업이익 추이를 보자. 코스피의 영업이익은 2013년 3분기를 정점으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코스닥 영업이익은 2014년 4분기에 전 분기 대비 소폭 감소했지만 연간 기준 1조4000억 원으로 금융 위기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이익 추정치를 봐도 코스피보다 코스닥이 나은 편이다.

물론 나스닥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코스닥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한국 주식시장은 미국에 비해 할인된 수준에서 거래되기 때문이다. 경기순환적인 관점과 보수적 시나리오를 가정해 보면 한국 주식시장은 미국 대비 27~30% 수준에서 거래된다. 이 수치를 바탕으로 과거 코스닥 최고점(2000년 3월 2830) 대비 계산해 보면 지수는 대략 760에서 840 정도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코스닥의 상승 여력은 충분하다.


신동준 하나대투증권 자산분석실장 djshin@hanaf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