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드는 거품 논란, 실물경제·금융시장 안정이 관건

글로벌 증시가 강한 상승세를 보이는 가운데서도 세계 경기는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회복 국면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유일하게 낙관적으로 예측됐던 미국 경제는 근린 궁핍적 성격이 짙은 강달러의 부담으로 작년 4분기 성장률이 2.2%로 둔화(3분기 5%)된 데 이어 올 1분기에는 0~1%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경기 선행지표가 고개를 들고 있지만 일본과 유럽 경제도 아직까지는 침체 혹은 저성장 국면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노무라증권·BNP파리바·IHS이코노미스트 등은 한국 경제의 올해 성장률이 2%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아 충격을 주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행도 4월 수정 전망을 통해 3.4%에서 3.1%까지 하향 조정했다.

금융 위기 이후 미국 중앙은행(Fed)의 제로 금리와 양적 완화(QE) 정책을 바탕으로 글로벌 증시가 오른 시기를 ‘제1 유동성 장세’라고 부른다. 지난해 4분기 이후 선진국에서는 유럽·일본, 신흥국에서는 중국·인도가 주도한 글로벌 증시 상승 국면은 ‘제2 유동성 장세’로 구별한다.
QE·저금리가 부른 ‘제2 유동성 장세’
최근처럼 실물경기가 완전하게 뒷받침해 주지 못하는 여건 속에 글로벌 증시에 제2 유동성 장세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하나는 각국 중앙은행의 QE 같은 통화정책을 통해 본원통화 자체가 많아져야 한다. 다른 하나는 초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예금 금리가 낮아지고 채권(혹은 부동산) 가격이 더 이상 높아질 수 없는 수준까지 올라 시중 자금이 증시로 유입되는 것이다.
Fed의 QE가 주도했던 때(제1 유동성 장세)와 달리 이번에는 유럽중앙은행(ECB)의 QE로 글로벌 유동성이 더 늘어나고 있다. 특히 초저금리 기조가 지속됨에 따라 예금 금리 등 각종 시장 금리가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수준에 이르면서 채권 등 다른 시장에서 이탈된 자금도 증시로 몰리고 있는 점이 제1 유동성 장세와 다른 점이다.
특히 기준 금리 인하로 대부분 국가의 예금 금리가 초저 수준으로 떨어짐에 따라 은행에서 이탈된 자금이 증시로 속속 유입되고 있는 현상이 주목된다. 대부분 유럽 국가의 예금 금리가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짐에 따라 은행에서 이탈된 자금이 증시로 유입되면서 유럽 주가도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도 가용 예금 금리(예금 금리-수수료 및 이자소득세)가 0%대에 진입함에 따라 시중은행에서 이탈된 자금이 한편으로는 부동산 시장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증시로 이동되는 흐름이 감지된다.
위험 선호 현상, 아직은 안정권
세계 경기 둔화 속에 글로벌 증시가 활황을 보임에 따라 한편에서는 유동성 장세에 대한 기대와 함께 다른 한편에서는 ‘증시 거품’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앞으로 글로벌 증시에 제2 유동성 장세가 지속될 것인가는 QE를 중심으로 한 각국의 통화 완화 정책이 금융시장 안정과 실물 경기 회복에 얼마나 기여하느냐에 좌우될 것으로 예상된다.
각국의 통화 완화 정책이 금융시장 안정에 기여한다면 실물 경기가 회복되기까지 그 정책 기조가 지속되고 증시는 유동성을 바탕으로 다시 한 번 유동성 장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금융시장 안정에 기여하지 못한다면 증시를 비롯한 자산시장에 낀 ‘거품’ 우려로 실물 경기가 회복되기 이전이더라도 ‘긴축’ 기조로 돌아서 증시에 충격을 줄 수 있다.
금융 위기 이후 선진국을 중심으로 추진해 왔던 통화 완화 정책은 금융시장 안정을 저해할 수 있는 리스크를 내재하고 있다. 각국의 통화 완화 정책은 금리 하락을 유발함으로써 투자자가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해 고위험 자산을 보유하려는 유인을 확대하기 때문이다. 이때 주가 등 자산 가격이 적정 수준 이상 오를 때 ‘거품’이 발생한다.
각국의 통화 완화 정책은 아직까지는 금융시장 안정을 크게 해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한 고위험 자산 보유 현상은 증권사와 소형 은행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건전성 규제 등으로 아직까지는 위험 선호 현상이 금융 위기 이전과 비교해 크게 높아지지 않았다.
각국의 소득(GDP) 갭과 디스인플레이션 정도로 볼 때 앞으로도 통화 완화 정책은 지속될 여지가 많아 보인다. 금융 위기 이후 각국의 통화 완화 정책은 금융시장 안정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실물 경기 회복에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실물 경기가 어느 단계 이상 회복되기까지는 통화 완화 정책이 계속 추진될 것이다. 강한 달러의 부담을 느끼는 Fed도 금리 인상 등에는 최대한 신중을 기할 가능성이 높다.
Fed가 금리를 올리더라도 파급효과가 광범위한 금리 정책만으로는 금융시장 안정을 유도하기에 적절하지 않다. 따라서 Fed도 이를 감안해 ‘미시 건전성(시장 참가 금융사의 건전성을 모니터링하고 규제하는 정책)’ 정책과 ‘거시 건전성(금융 위기 점염 경로를 사전에 차단하고 금융 시스템의 복원력을 키우는 것)’ 정책을 병행해 금융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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