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옥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통일, 치밀하고 ‘스마트’하게 준비해야죠”
유성옥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은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국내 최고의 대북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1977년 설립된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한반도 주변 정세에 대한 분석과 평가에 기초해 국가 안보 및 한반도 통일 전략을 연구·개발하는 국책 연구 기관이다. 특히 2012년 유 원장이 취임한 이후 ‘실사구시’를 모토로 연구원들의 연구가 실제 정책에 반영되는 데 가장 큰 힘을 기울이고 있다.


2012년 말 북한에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고 벌써 4년이 됐습니다. 그간 김정은 체제가 보여준 특징은 무엇입니까.
“김정은 체제는 근현대사에 걸쳐 전례 없는 3대 세습 정권입니다. 사실 정권 초반에는 일종의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젊은 유학파 지도자라는 점에서 나름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체제는 완전한 1인 독재 체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고모부인 장성택이 제거되면서 잘못된 정책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시스템이 아예 사라져 버렸습니다. 오히려 더 위험해진 것이죠. 2013년 3월 내놓은 ‘핵-경제건설 병진’ 정책과 같은 무리수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변화할 것 같습니까.
“김정은의 카리스마를 높이는 데 더 주력할 겁니다. 김정은은 숙청을 통한 공포정치, 잦은 인사 교체, 군부 길들이기를 통해 제도적 리더십을 장악했습니다. 단 아직 인격적 리더십, 즉 ‘카리스마’는 부족한 편입니다. 그래서 외모나 발언 등에서 보듯이 ‘김일성 흉내 내기’를 통해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로서 자리매김하려고 할 것입니다. 문제는 최근 권력층 내부에서 보이지 않는 동요가 생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이른바 ‘장성택 학습 효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지도층들은 겉으로는 예전보다 더 김정은을 따르는 것처럼 행동할 것입니다. 반면 속으로는 언제든지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더 강하게 품으며 김정은에 대한 불신이 더 커질 것입니다. 특히 군사 부문에 대한 과도한 투자와 문수물놀이장·마식령스키장 등 각종 전시성 사업의 남발로 김정은의 정책에 대한 의구심이 더 커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북한의 경제 상황은 어떤지요.
“김정은은 집권 이후 꾸준히 인민 생활 향상과 경제 강국 건설을 공개적으로 언급해 왔지만 경제는 악화일로입니다. 지난해는 식량 생산량이 다소 증가해 주민들의 생활이 좀 나아졌지만 오히려 지역별·계층별 격차는 확대됐습니다. 또 경제와 관련한 일부의 성과는 북한 당국의 정책 결과라기보다 ‘장마당 경제’, 즉 시장경제의 활성화에서 비롯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미 북한 주민들은 90%의 생필품을 시장을 통해 구합니다. 즉 정치는 공포에 의한 1인 독재 체제, 경제는 시장경제화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당연히 국가가 주도하는 경제정책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겠죠.”


가장 주시해야 할 것은 북한의 상황이 급변하는 사태입니다.
“실제로 김정은 체제는 외형적으론 안정돼 보이지만 다양한 불안 요인을 따져보면 체제가 급격히 무너질 수 있는 개연성이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고위 간부들은 불안한 입지로 흔들리고 주민들은 불만이 더 커지고 있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급변 사태는 우리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전 분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로서는 철저하게 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은 그런 준비를 의미하는 것인가요.
“개인적으로 아주 시의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결국 변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핵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경제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은 뻔하기 때문이죠. 결국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팔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전술적·전략적으로 북한을 잘 컨트롤해 가며 북한과 관련된 리스크를 줄일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 주민들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한 체제 선택과 ‘합의에 의한 통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력 통일 혹은 강압적 흡수 통일은 사회에 큰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통일 대박’은 국민들에게 통일의 필요성을 알리고 통일의 의지를 갖도록 만드는 의미 있는 화두라고 생각합니다. 통일은 우리 주도의 통일이 돼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꾸준하고 치밀하게, 정말 잘 준비해야 합니다.”


최근 북한의 사이버 테러가 곳곳에서 발생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인터넷을 접해 온 김정은은 2009년 후계자로 등장하자마자 ‘각 도의 제1중학교에서 유능한 컴퓨터 전문가를 많이 양성해야 한다’고 지시할 만큼 이 분야에 관심이 큽니다. 또 집권 후 ‘핵·미사일·사이버전’을 ‘만능의 보검’이라고 칭할 만큼 사이버전 능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북한의 당과 군 산하에는 1700여 명 규모의 전문 해커를 보유하고 있고 프로그램 개발 등 해킹 지원 세력은 13개 조직, 4200여 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이들은 한국의 주요 시설이나 언론사 등에 대한 사이버 테러를 꾸준히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와 별도로 중국·동남아 지역에 1000여 명의 정보기술(IT) 인력을 외화벌이 일꾼으로 위장 파견해 사이버 공격의 전초기지로 활용 중입니다. 이들은 특히 우리의 인터넷 공간에서 선전·선동전을 집중 전개합니다. 인터넷 게시판 등에 올라온 그들의 글을 보면 최근 유행어 등을 그대로 사용하며 보통의 누리꾼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표현을 합니다. 우리의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습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국내외 연구소 중 대북 및 통일 문제에 관해 뛰어난 경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경쟁력은 ‘3박자가 갖춰진 협업 구조’에서 온다고 봅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는 전문 지식을 갖춘 박사급 연구진뿐만 아니라 오랜 실무 경험을 가진 경력직 연구원 그리고 북한 현장 경험을 가지고 있는 엘리트 탈북자 출신 연구진도 포진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축적된 경험·지식·시스템을 활용해 다양한 시각에서 현안을 조망하고 효율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업무의 특성상 대부분이 대외적으로 공개되지는 않지만 연간 1000여 건 이상의 전략·정책 보고서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실제 정책에 반영되는 비율은 우리 연구원이 가장 높은 편에 들 것입니다.”


원장님 취임 후 기존의 국가안보전략연구소에서 국가안보전략연구원으로 승격되는 등 여러 변화가 있었습니다. 가장 중점을 두는 방향은 무엇입니까.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기본적으로 대공 방첩 분야와 국제 문제, 북한(통일) 문제를 포괄하는 종합적인 안보 연구 기관입니다. 최근 들어서는 국제 안보 환경의 변화에 부응한 사이버 테러 등 신안보 분야 연구에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금년 초 신안보연구실을 신설하는 등 조직 개편을 단행하고 공개 학술회의(북한 사이버 테러 위협과 대응 전략, 3월 31일)를 연 것이 그 예입니다. 저는 연구의 양보다 질을 중시합니다. 지나치게 아카데믹한 것보다 현실을 중시합니다. 그래서 연구원들에 대한 평가제도 역시 이를 더 평가할 수 있도록 바꿨습니다. 또 ‘협업’을 더 중시하도록 했습니다. 이런 변화들이 서서히 성과로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올해 남북 관계에서 가장 관심 있게 봐야 할 이슈를 짚어 주셨으면 합니다.
“올해는 광복·분단 70년을 맞은 의미 있는 해입니다. 이 때문에 변화의 물꼬가 터질 수도 있는 시기라고 봅니다. 특히 4월 말 한미군사훈련이 마무리되면 북한은 어떤 ‘이슈’를 던지고 우리의 대응을 시험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통 큰 대화’라는 명분을 앞세우고 ‘전술적인 제안’을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에 ‘스마트’하게 대처해 북한의 ‘전략적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스마트’한 것은 거칠지 않습니다. 부드럽지만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매우 치밀하고 냉정하게 대응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대화를 위한 대화’, ‘원칙 없는 대화’는 남북 관계의 진정한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북한의 본질적인 변화를 유도하고 우리 주도의 통일 환경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대화여야 합니다. 이에 따라 올해는 지속 가능한 평화와 한반도 통일을 향한 확고한 발판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북한이 금년을 ‘통일 대전(大戰) 완성의 해’로 정하고 있는 만큼 북한의 어떠한 도발에도 철저히 대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장승규·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