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구조조정 전문성 부족, 퇴직 임직원 낙하산 관행도 여전

지난 4월 6일에는 산은이 최대 주주로 인사권을 행사하는 대우조선해양의 차기 사장을 추천했지만 노조의 반대에 부딪쳤다. 추천인은 정성립 STX조선해양 사장으로 ‘낙하산 인사 논란’이 제기된 것이다. 지난해에는 STX그룹 부실 대출 논란도 있었다.
금호아시아나그룹과도 사사건건 말썽이다. 산은이 주채권은행으로서 구조조정을 담당하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 3월 9일 금호고속 인수 주체로 금호산업을 동원했지만 반대에 부딪쳤다. “새 주인을 찾는 금호산업이 금호고속을 인수하는 주체로 나설 수 없다”는 채권단의 반대 때문이다. 이 갈등은 금호타이어까지 튀었다. 지난 3월 31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장남인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이 대표이사직에 올랐다. 하지만 채권단으로 구성된 주주협회의 반대로 4월 3일 박 부사장의 대표이사 선임안은 무효화됐다.
산은의 이러한 특혜·부실 대출, 인사 개입 의혹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책은행인 산은은 창립 이후 꾸준히 이런 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홍기택 회장의 숙제
2009년부터 햇수로 6년간 분리 운영돼 온 산은은 전문적인 정책금융의 필요성이 대두되며 민영화가 취소됐다. 이에 산은은 올해 1월 1일부터 산은금융지주와 정책금융공사를 흡수, 전문적인 정책금융공사인 통합산업은행으로 다시 출발했다. 지난 4월 10일이 출범 100일째였다.
주요 업무는 ‘부실기업 구조조정’이다. 이렇다 보니 산은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크다. 기업들의 대규모 구조조정이나 인수·합병(M&A) 과정에 산은의 역할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기아자동차·대우조선해양·쌍용자동차 등 경영난을 겪은 기업 또는 그룹은 산은을 통해 회생하거나 새로운 주인을 만날 수 있었다. 현재는 현대그룹·한진그룹·동부그룹·한진중공업·동국제강·STX그룹·금호아시아나그룹 등 여러 부실기업의 주채권은행으로 구조조정을 순조롭게 끝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이 중심에는 홍 회장이 자리한다. 올해 회장직에 선임된 지 2년 차, 그의 2년여 간의 성적표는 어떨까. 업계에서는 구조조정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했다고 지적한다. 물론 산은이 그동안 주채권은행을 맡아 구조조정을 했던 업종 대부분이 조선·건설·해운 등 불황에 시달리는 업종이어서 자연히 부실 대출이 자주 발생하면서 산은의 재무 건전성이 악화된 부분도 있다.
그간 성적을 살펴보면 산은은 STX그룹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실채권이 쌓여 약 1조 원의 손실을 냈다. 동부그룹도 선제적 구조조정을 시행했지만 동부그룹과 상당한 갈등을 겪었다. 산은은 이 과정에서 지난해 말 기준으로 부실채권 비율이 2.28%까지 올랐다. 은행권 전체의 부실채권 비율 1.53%와 비교할 때 훨씬 높은 수준이다. 산은이 최대 주주로 있는 KDB대우증권·KDB생명·KDB자산운용·KDB인프라 등의 매각 이슈도 감감무소식이다. 이에 따라 부실기업 구조조정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기업 관계자는 “산은이 이익을 취할 부분도 분명히 있지만 채권 회수에만 주력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설립 취지에 맞게끔 정책 금융회사로서 기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책을 펴야한다”고 말했다.
홍 회장을 바라보는 시각은 2년 전 선임되던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엇갈린다. 경제학자로서 각종 금융사 사외 이사를 맡으며 쌓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학자 스타일이라는 분석이 있는가 하면 대통령직 인수위원 출신으로 정치권 인사로 사라져야 할 관치금융을 이어 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벤처·중소기업 지원 역할 늘려야
산은도 나름대로 할 말이 있다. 산은의 수익성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정책금융의 역할도 수행해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향 후 산은은 회생 가능성이 사실상 없다고 판단되는 기업이라면 청산하는 쪽이 낫다는 시각을 보이기도 한다. 산은 관계자는 “기업이 다시 활동을 시작할 수 없다면 그곳에 쓰일 지원금을 다른 회사에 주는 게 전체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산은은 기업의 금융을 담당하는 역할이 큰 만큼 특정 기업 특혜 논란에 늘 시달려 왔다. 최근 포스코와 관련된 성진지오텍 특혜 의혹, STX의 부실 대출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산은은 기업 대출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일반적인 논쟁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문제는 산은이 잇따라 부실·특혜 대출 의혹에 시달리는 것은 산은의 수뇌부가 지나치게 ‘친정부’ 성향의 인사이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산은이 정부의 눈치를 보며 독자적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윤석현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산은이 이익을 취할 부분도 분명히 있지만 관치적이라는 성향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며 “산은의 갈 길은 대기업 구조조정의 역할을 줄이고 벤처·중소기업 지원을 늘려야 한다. 시대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봐야 한다”고 했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