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기에 17개국 주가 사상 최고치, 투자자들 “자고 나니 돈 불어”

‘유동성의 힘’…전 세계 동시 랠리
2015년 1분기는 글로벌 주식 투자자들에게 ‘축제 기간’이었다. 세계 곳곳의 주식시장에서는 신고점 경신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1분기에는 최소 17개국의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1분기 글로벌 증시가 강한 상승세를 보였던 가장 큰 이유는 유동성, 즉 ‘돈의 힘’에 있다. 미국·유럽·중국 등 핵심 국가들의 가장 큰 정책 목표는 ‘경기 부양’이다. 미국은 최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통해 ‘인내심’ 문구를 삭제하며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었다. 그러나 미래의 기준 금리 수준을 나타내는 점도표(dot plot)를 큰 폭으로 하향 조정하며 경기 부양 스탠스를 유지했다. 유럽은 규모와 시기 모두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양적 완화를 시행했다. 중국은 성장률을 낮췄지만 추가적 완화 정책의 여지를 남겨둠으로써 경기 부양을 위한 글로벌 정책 공조의 스탠스를 확고히 했다.

각국 정부의 경기 부양책은 저성장 때문이다. 세계 주요국은 저성장을 넘어서기 위해 마이너스 금리까지 도입하는 등 유례없는 저금리 상황을 만들었다. 세계적 저금리는 은행에 잠들어 있던 돈을 빠져나오게 했다. 여기에 각국 정부는 증시 부양책들을 속속 발표했다. ‘기대를 먹고 산다’는 주식시장은 미래 경기를 가늠하는 일종의 ‘심리 지표’다. 즉 각국 정부는 양적 완화로 풀린 돈을 주식시장에 투자해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강요 아닌 강요’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2014년에 비해 50% 넘게 하락한 원유 등 에너지 가격 하락은 대다수를 차지하는 석유 수입국들의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또 달러화 강세가 계속될 것이라는 예상은 통화 약세로 혜택을 볼 제조업 중심국의 수출 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늘리게 만들었다.


국제 에너지 가격 하락도 호재
결과는 주요국 증시의 강한 상승세다. 미국·영국·독일 등의 증시는 올 1분기 신기록을 경신했다. 미국 다우존스산업지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3월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나스닥지수 역시 3월 20일 5042.14로 2000년 3월 10일 기록한 사상 최고치(5132.52)에 다가섰다. 또 영국 FTSE100지수는 3월 중 사상 처음으로 7000선을 넘어섰다.

양적 완화를 발표한 유로존의 상승세는 글로벌 주요 증시 가운데 단연 선두였다. 독일 DAX지수가 22%에 이르는 상승 기록을 세웠고 범유럽 지수인 스톡스600 지수 역시 16% 뛰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증시도 1분기 각각 18%와 22% 오르는 등 주가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재정 위기의 주범이었던 남유럽 국가들의 증시도 뛰고 있다. 1분기 유럽에서 가장 선전한 포르투갈 증시로 조사됐다. 포르투갈 PSI20지수는 2015년 1분기에 24.8% 뛰었다.

서구만 오른 게 아니다.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 증시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1분기 아시아 증시의 최고 성적표는 중국이 받았다. 상하이종합지수는 1분기에 15.9% 올랐고 중국에서 둘째로 큰 선전지수는 38.6%나 치솟았다. 선전 시장의 상승률은 세계 주요 증시 중 최고 성적이다.

3월 한 달만 해도 중국 증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상하이와 선전 증시 거래 규모는 사상 최대인 19조4700억 위안에 이른다.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5배 이상 늘어났다. 중국 투자자들이 3월 증시에 쏟아붓기 위해 빌린 자금도 지난 3월 30일 기준 1조4800억 위안으로 사상 최대다. 2월에도 1조1600억 위안이나 됐다.

일본 증시도 성적이 좋다. 연 80조 엔에 달하는 일본은행(BOJ)의 돈 풀기에 힘입어 투자자들이 일본 증시에 몰리고 있다. 일본의 포털 사이트 ‘야후’의 종목 게시판에는 ‘자고 일어나 보니 돈이 불어 있다’며 즐거워하는 댓글들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가히 ‘물 반 고기 반’ 장세다.

실제로 일본의 주요 지수인 닛케이225지수는 1분기에 전년 같은 기간보다 10% 상승했다. 2013년 4분기 이후 가장 좋은 성적이다. 일본 증시는 일본은행의 양적 완화 등 경기 부양 정책과 그에 따른 엔화 약세가 수출 기업들의 호황을 이끌며 4년째 꾸준히 상승 중이다. 또 일본은행과 연금 펀드 등의 직접적인 주식 매입도 증시 상승에 기여하고 있다.


2분기에도 상승세 이어지나
한국도 비슷하다. 1분기의 마지막 날 2000선을 터치한 코스피지수는 4월 8일 전 거래일보다 12.23포인트(0.6%) 오른 2059.26에 장을 마쳤다. 코스피가 종가 기준으로 2050선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 9월 19일(2053.82) 이후 7개월여 만이다. 코스피는 장중 외국인과 기관의 순매수에 힘입어 2060선에 진입하는 등 지난 4년간의 박스권(1800~2050)에서 벗어나 상승 추세 진입의 신호탄을 쐈다. 코스닥 시장은 더 뜨겁다. 4월 8일의 코스닥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1.20포인트(0.18%) 오른 668.03에 마감되며 670선 턱밑까지 상승, 코스피지수와 함께 나흘째 연고점을 경신했다.

콜린 그래햄 BNP파리바 자산솔루션부문 대표는 “아시아 시장은 정부 경기 부양책에 힘입은 풍부한 유동성, 낮은 인플레이션 등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성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다른 신흥 경제국보다 아시아 시장 투자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물론 1분기 글로벌 증시의 강한 상승세가 2분기에도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1분기 장세가 전형적인 유동성 장세이기 때문이다. 즉 돈의 힘으로 투자자들의 심리를 돌아서게 만들었지만 기업의 이익이 변하지 않고 있다. 주가가 기업 실적의 반영이란 점을 감안하면 기업 이익이 상승하지 않으면 결국 주가는 조정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KTB투자증권이 4월 5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유로존 상장 기업들의 주당순이익(EPS)은 연초 이후 오히려 하락세가 강화돼 주가와 기업 이익 간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김윤서 KTB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는 현재 유럽 증시가 기업 펀더멘털을 반영하고 있기보다 전례 없는 유동성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며 “유로화 가치 절하에 따른 실적 개선 기대감만을 지나치게 빠르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증시 상승도 유동성에 힘입은 것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유가증권 시장에서 4조8000억 원어치를 순매도했던 외국인은 지난 1분기에만 3조1000억 원어치를 사들이는 ‘폭풍 매수’를 하며 주가를 끌어올렸다.

다만 향후 글로벌 주식시장에 대한 긍정적인 분석이 아직까지는 대세다. 글로벌 증시 상승의 가장 큰 동력이 된 미국 기업들의 실적과 현금 흐름이 아직 탄탄하기 때문이다. 가빈 베이커 피델리티자산운용 매니저는 투자 전문지 배런스와의 인터뷰에서 “2000년 나스닥 시장은 ‘꿈’으로 움직였지만 지금은 ‘현실’에 기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00년 나스닥 시장에서 시가총액 상위 5개 종목은 마이크로소프트(MS)·시스코·인텔·오라클·썬마이크로시스템즈였다. 당시 이들의 주가수익률(PER)은 각각 57배, 127배, 43배, 103배, 85배 등이었다. 지금 나스닥 시가총액 상위는 애플·구글·MS·페이스북 등으로 바뀌었고 이들의 PER는 각각 15배, 19배, 16배, 39배 등이다. 배런스 매니저에 따르면 15년 전 나스닥 시장의 PER는 100배가 넘었지만 지금은 21배로 S&P500지수(17.5배)보다 약간 높다. 특히 재닛 옐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증시 거품 여부를 묻는 질문에 “주가 밸류에이션이 상승세에 있지만 여전히 역사적인 범위 안에 있다”고 말했다.

한국 증시에 대한 전망은 조금 더 긍정적이다. 유동성뿐만 아니라 기업 실적도 좋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전년 동기 대비 코스피 분기 영업이익 증가율 전망은 1분기 마이너스 1.9%, 2분기 10.1%, 3분기 23.1%, 4분기 21.4%로 1분기를 저점으로 이익 모멘텀이 강화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오승훈 대신증권 투자전략팀장은 “4월 어닝 시즌에서 양호한 이익 발표가 나타난다면 한국 기업 이익에 대한 신뢰는 한층 더 높아질 수 있고 오는 3분기까지의 높은 이익 모멘텀이 주가에 반영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며 “한국 기업의 이익 추이를 감안하면 3월 중순과 같은 대규모 외국인 순매수가 재유입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