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 약세로 가격 경쟁력 높아져…비유로존 영국은 6.3% 상승 그쳐
“미국은 내 첫사랑이었다. 그러나 유럽에서 굉장한 가능성을 보고 있다.”세계적인 투자 귀재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이 지난 2월 말 독일 한 오토바이 장비 업체(데트리프 루이스 모토라트페에트립스)를 사들이며 남긴 말이다. 세계적인 큰손이 오토바이 장비 회사 하나를 인수한 것이 큰일인가 싶지만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버핏 회장의 투자 타깃이 유럽으로 옮겨졌다는 점이다. 그가 유럽에 투자한다는 것은 곧 유럽 시장을 밝게 본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버핏 회장의 마법이 통한 것일까. 최근 유럽 시장으로 돈이 몰리고 있다. 유로 약세에 이어 2015년 1월 유럽중앙은행(EBC)의 양적 완화 정책에 경기 회복 기대감이 겹치면서 투자가 이어지자 올해 1분기 유럽 주요 국가들의 증시 수익률은 20% 이상 상승했다.
수출 기업의 실적 큰 폭 개선
이에 따라 최근 어떤 국가의 어떤 섹터들이 유망주로 떠올랐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독일과 프랑스’의 ‘경기 소비재(자동차, 섬유 및 의복, 호텔 및 레저, 백화점 등과 같은 업종)’다. 유로존의 대표 국가인 독일과 프랑스는 최근 유로 약세와 양적 완화의 최고의 수혜주로 꼽힌다. 유럽연합(EU)으로 묶여 있는 유럽은 ‘유로존과 ‘비유로존’으로 구분해 살펴봐야 한다. 최근 성장세에 한몫하는 유로 약세에 따른 수혜주는 유로를 사용하는 유로존에 있는 국가다. 유로존 상위 7개국은 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핀란드·그리스, 비유로존 국가는 영국·스위스·스웨덴·덴마크·노르웨이다.

양길영 하나대투증권 애널리스트는 “유럽에서 특히 독일과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기술력이 뒷받침되는 명품 소비재가 많다. 유로 약세로 명품 소비재를 생산하는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실적이 개선되고 기업 이익 전망치가 높아져 결국 주가 상승으로까지 연결된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유로존에 있는 경기 소비재 업종이면서 해외 수출(특히 미국) 활동이 활발한 기업은 글로벌 매출이 더해져 실적이 큰 폭으로 개선된다.
경기 소비재 섹터에서 유망 종목을 꼽자면 독일의 자동차 명가 다임러·폭스바겐·BMW 등이 대표적이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성장과 함께 이들 기업의 주가는 연초 대비 약 30% 상승했다. 다임러는 올해 차량 판매 증가율을 4%로 제시했는데, 이는 전 세계 차량 판매 증가율 3%보다 1% 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프랑스의 대표 명품 업체인 LVMH 루이비통과 명품 화장품 로레알 역시 주가가 연초 대비 약 30% 올랐다. 한국인에게 ‘자라’라는 브랜드로 친숙한 스페인 최대 섬유 회사인 ‘인디텍스’도 유로존 내 오름세를 타고 있는 경기 소비재 섹터의 대표 종목이다.
양 애널리스트는 “각 국가의 증시를 높이는 데는 어떤 국가에서 ‘좋은 제품’을 가지고 있는 ‘수출주’가 있느냐, 없느냐가 포인트”라고 말했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스페인은 인디텍스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증시 수익률이 큰 오름세를 타지 못했다. 유로존 국가 중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그리스를 제외하면 성장률 14.1%로 꼴찌다.
전문가들은 스페인 성장 둔화의 원인으로 스페인의 ‘은행’을 꼽는다. 스페인의 대표 기업 중 시가총액이 큰 대형주는 대체로 은행이다. 시가총액 1위이자 유럽 최대 은행인 산탄데르와 방코빌바오비스까아르헨따리아은행(BBVA) 등이 대표적인데, 이들 기업은 현재 경기 하락 국면에 처해 있다. 은행 전체 이익 중 남미 국가 의존도가 2014년 기준으로 산탄데르는 47%, BBVA는 55%에 달한다. 이 때문에 최근 브라질 등 남미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서 남미 시장의 높은 점유율과 이익 의존도가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남미의 경제 상황이 반등하지 않는 이상 스페인의 호전 소식은 듣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여기에 은행 다음으로 시가총액이 큰 대형주가 에너지·유틸리티 등 불황을 겪는 업종이라는 점도 걱정거리다.
반면 유로존 내에서 1분기에 가장 높은 증시 상승률을 기록한 국가는 이탈리아와 포르투갈로 나타났다. 각각 26.7%, 26.9% 상승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는 전반적으로 유럽 경기가 돌아설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형성된 것으로, 이탈리아·포르투갈은 독일·프랑스와 달리 뚜렷하게 실적이 개선된 섹터가 없어 투자하기엔 이른 감이 있다”고 조언했다. 스페인 역시 이러한 ‘기대감’을 바탕으로 소폭이나마 증시가 오른 곳에 포함된다.
다시 유로존에서 성장한 섹터를 살펴보자. 경기 소비재의 뒤를 이어 ‘헬스 케어’와 ‘산업재’의 상승률이 높았다. 헬스 케어 시장은 20.2%의 상승률을 올렸다. 주목할 만한 종목은 프랑스 제약 기업인 사노피다. 백신 전문 기업인 이 회사에는 버핏 회장도 2008년 투자에 참여했었다. 하지만 2014년 11월 주가가 대폭 하락했다. 백신 제품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로 돌아선 소비자의 영향으로 하루에 10% 이상 주가가 뚝뚝 떨어졌다. 그러나 유로 가격이 떨어지며 가격 문제가 해결돼 주가가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
네슬레·스와치, 스위스 프랑 강세로 타격
산업재 섹터도 17.5%나 올랐다. 유망 종목은 독일의 DHL이다. 유럽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 심리에 따라 소비가 늘며 택배 및 화물 운송량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바탕이 된다. 독일 전기 제어 업체인 슈나이더일렉트릭도 유망 종목으로 꼽힌다. 에너지 세이빙, 정전 대비 프로그램 등 독자적 기술을 갖춘 이 기업은 산업재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수출이 활발한데다 경쟁 업체가 거의 없어 향후 기업 성장 가능성이 높다.
유로 약세의 수혜에서 제외된 비유로존의 상황은 어떨까. 대표적으로 영국의 올 1분기 증시 수익률은 6.3% 소폭 상승했다. 영국이 다른 국가에 비해 증시가 크게 오르지 못했다. 양 애널리스트는 이를 두고 “영국은 지리상으로는 유럽이지만 경제적으로는 미국에 가깝다”면서 “영국과 미국은 경제정책이 함께 가는 경향이 강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국은 미국과 같이 금리 인상 기대감이 있었고 파운드는 유로 대비 강세였다. 이 때문에 최근 유로존 증시 강세 국면에서 영국이 소외됐다”고 설명했다.
영국의 성장 부진은 또 다른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영국을 이끄는 주요 기업이 에너지·소재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업황 부진이 실적은 물론 주가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영국의 대표 정유 기업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과 로열더치쉘은 올 1분기 5% 안팎으로 급락했다. 양 애널리스트는 “영국의 경기 소비재는 최근 파운드가 다운되면서 턴을 했지만 영국 경제의 큰 축이 되는 에너지·소재 섹터가 증시를 계속 끌어내리고 있다. 이들 섹터 실적이 개선된다면 영국 증시도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국과 반대로 덴마크 증시는 31.2% 상승해 비유로존에서 가장 많이 올랐다. 덴마크 중앙은행이 금리를 전격 인하하자 자국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덴마크가 유럽 내에서 큰 시장이 아닌데다 덴마크 통화인 크로네에 대한 투자자들의 낮은 관심과 환전의 불편함 등으로 덴마크 시장에 대한 투자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비유로존에서 눈여겨볼 섹터로는 소비재가 있다. 영국·네덜란드계 다국적기업인 유니레버의 주가가 1분기 30% 올랐다. 반면 스위스의 대표 소비재 기업인 네슬레와 스와치는 스위스 프랑이 강세를 타며 주가가 많이 떨어진 상태다.
유럽 증시는 올 1분기에만 20% 상승했다. 그렇다면 이미 다 오른 것은 아닐까. 약 5년간의 양적 완화를 마친 미국 증시는 같은 기간 동안 153%, 현재 양적 완화가 진행 중인 일본은 30개월 동안 115% 상승했다. 자국 통화가치는 하락했지만 주가 상승 폭이 환율 손실분을 만회했다. 따라서 양 애널리스트는 유럽은 중·장기 관점에서는 주가 상승 여력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