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형 중소기업을 필요로 하는 시기다. 김현성 일본 주쿄대 국제교양학부 교수
1972년생. 2009년 일본 도쿄대 경제학 박사.
2011년 일본 주쿄대 국제교양학부 교수(현).
강의를 하다 보면 불황기에 유효한 성장 동력이나 산업에 대한 질문과 함께 세계적 불황이 언제 끝날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그 해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전에 과연 지금이 비정상적인 불황인지를 인구동태에 비춰 살펴보자. 문제의 근원을 알아야 해답을 찾는 길이 짧아지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불황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인구가 증가하던 국가에서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면서 경제성장도 둔화되기 시작하는 것은 세계경제사에서 종종 발견된다. 특히 생산가능인구의 증가가 경제성장에 프리미엄을 주게 된다는 것이 ‘인구 보너스(bonus)’라는 개념이다. 한국은 그 반대로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며 경제성장이 지체되는 ‘인구 오너스(onus)’ 시대에 접어들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인구는 2030년부터 줄어든다. 15세에서 64세 인구, 즉 생산가능인구는 2017년부터 감소세에 들어간다. 이미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생산가능인구의 증가가 둔화된 결과다. 서울 대도심의 초등학교 학생 수가 감소해 학년당 학급 수가 줄어드는 사례가 흔한 일상이 됐다.
옆 나라 일본을 보자. 1991년부터 장기 불황이 시작됐다. 그 원인을 엔·달러 환율 및 금리 조정에 의한 버블의 형성과 붕괴에서 찾는 경향이 많았다. 과연 그럴까. 생산가능인구의 동향에 비춰 보자. 일본은 2008년 인구가 정점에 다다랐지만 생산가능인구는 이미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감소하기 시작했다.
장기 불황의 시작과 생산가능인구의 감소가 일치하는 것이다. 불황 초기에 일본 정부는 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7년 동안 약 70조 엔에 달하는 재정 확장책을 실행했다. 그 내용도 인구 보너스 시대에 사용하던 공공 정책 일색이었다. 그 결과 정부의 재정 적자도 급격히 확대됐다. 불황의 근원에 대한 오판이 후세의 짐이 된 것이다.
그러면 인구 오너스 시대에는 어떻게 해야 성장 동력이 유지될 수 있을까.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이노베이션의 주체를 재설정하는 접근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즉 그 주체를 대기업에서 벤처기업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인구 보너스 시대에는 대량생산을 필요로 했고 대규모 자본 투자가 가능한 대기업이 주역이었다. 인구 오너스 시대에는 소량의 질 좋은 제품의 수요가 증가한다. 벤처형 중소기업을 필요로 하는 시기다.
물론 한국은 1997년부터 벤처기업 진흥책을 추진하고 있다. 아쉽게도 그 내용은 세제 혜택이나 금융 지원이 대부분이고 유효기간도 있다. 경제성장 시기에 유효했던 프로그램 일색이다.
반면 이노베이션은 장기간의 투자를 요구한다. 그리고 기계가 아닌 사람의 머리와 손에 의해 이노베이션의 구상과 실행이 가능하다. 장기적인 지원, ‘자본(資本)’보다 ‘인본(人本)’에 입각한 내용이 필요하다.
단기자금을 지원하는 ‘당근’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우수한 인재가 유입될 수 있도록 맛있고 커다란 ‘호박’을 제시해야 한다. 이는 벤처형 중소기업을 보호의 객체가 아닌 이노베이션의 주체로 봐야 가능한 것이다.
그 결과 벤처형 중소기업에 우수한 인재가 유입되는 긍정적 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건실한 중소기업에서 한평생 근무하더라도 경제적 불안 없이 살 수 있다면 결혼과 2세를 계획하는 청년층이 증가하고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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