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산 원유 풀리면 추가 하락 예상, 세계 교역에는 긍정적

‘기지개 켜는 이란’…국제 유가 ‘촉각’
12년을 끌어 왔던 ‘P5+1(유엔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독일)’과 이란 간의 핵 협상이 미국의 주도로 극적으로 타결됐다. ‘P5+1’과 이란은 스위스 로잔에서 8일간의 협상 끝에 이란이 핵 개발 활동을 중단하는 대신 국제사회가 이란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는 내용의 포괄적 공동 행동 계획을 마련하는 데 합의했다.

‘P5+1’과 이란이 발표한 공동 행동 계획에는 허용 가능한 이란의 핵 활동 범위가 비교적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이란은 최소 15년 동안 핵물질 생산을 중단하고 핵무기 개발 물질인 우라늄 농축을 위한 원심분리기도 현재 1만9000기에서 1세대 초기 모델인 6104기만 남기고 없애기로 했다. 특히 이란이 보유한 저농축 우라늄 재고도 대폭 감축하고 농축을 위한 신규 시설도 건설할 수 없도록 한 것은 획기적인 조치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앞으로 이란은 10년 동안 3.67%의 저농도 우라늄만 농축하고 15년 동안 새로운 핵연료 농축 시설도 건설할 수 없게 됐다.
‘기지개 켜는 이란’…국제 유가 ‘촉각’
미국과 이란 등은 공동 행동 계획을 토대로 오는 6월 30일까지 세부 사항에 대한 최종 합의를 이끌어 낼 예정이다. 최종 합의안을 마련하는 대로 국제에너지기구(IEA)와 미국 등의 검증을 거쳐 유엔·유럽연합(EU)·미국 등의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가 단계적으로 풀리게 된다. 이란의 핵 제재가 단계적으로 풀린다고 하더라도 중동 지역이 갖고 있는 지정학적 위험 등의 불안 요인은 남아 있다. 그러나 이란이 국제 원유 시장에 참가하면 유가뿐만 아니라 세계경제와 국제 금융시장에 커다란 변동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36년 만에 열린 중동 최대 시장
이번 이란의 핵협상 타결을 가장 반기는 국가는 당연한 얘기지만 이란이다. 이란 국영방송은 1979년 이후 무려 36년 만에 처음으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핵협상 타결 성명서를 생방송으로 직접 중계했다. 이란 시민들도 거리로 나와 ‘생크 로하니(Thank Rouhani, 로하니는 이란 대통령)’를 외치면서 손가락으로 승리의 V자를 그려 기대감을 표시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선진국들은 앞으로 남은 과제 해결에 불안과 우려를 표시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독일과 프랑스 등도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할 수 있는 디딤돌이 마련됐다’고 환영하면서 중동 중심의 전략을 추진해 나갈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이번 핵협상 타결에 반대하는 국가도 있다.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다. 국제사회는 이들이 중동 지역의 또 다른 불씨로 작용하지 않을까 벌써부터 우려하는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번 핵협상 타결이 이스라엘의 생존을 위협하고 핵 확산 및 핵전쟁 가능성을 높이는 역사적인 실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번 협상 타결로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가 무너진 뒤 차단됐던 중동의 최대 시장인 이란이 36년 만에 다시 열리게 된다. 중동 국가 가운데 인구와 경제 규모가 가장 큰 이란의 시장이 열리면서 세계경제에는 이란발 훈풍이 불 것으로 기대된다. 2013년 기준으로 이란 인구는 약 8000만 명, 국내총생산(GDP)은 4029억 달러로 세계 19위다. 서방의 제재 여파로 사회 기반 시설이 낙후된 이란은 앞으로 대규모 개발 사업에 나설 계획이다.

이란의 핵협상 타결은 최근 하락세를 이어 가고 있는 국제 유가에 추가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란의 원유 수출량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IEA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이란의 하루 원유 생산량은 352만 배럴로 세계 6위, 원유 매장량은 전 세계 확인 매장량의 10%에 달한다.

대부분의 원유 관련 예측 기관들도 올해 7월 이후 경제제재가 본격적으로 해제되면 국제 원유 시장에서 이란 원유 수출 증가의 영향이 가시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란이 현재 확보한 3000만 배럴의 원유 재고는 생산능력과 무관하게 당장 수출 물량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원유 거래 업체 에바트레이드에 따르면 “이란이 원유 수출을 재개해 하루 100만 배럴 이상의 원유가 추가로 시장에 유입되면 유가는 30달러대로 빠르게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스라엘·사우디 새 ‘암초’로 부상
이번 협상 타결로 앞으로 국제 유가가 추가적으로 하락한다면 세계 교역과 경제에는 긍정적인 영향이 더 클 것으로 기대된다. 원유 등 국제 원자재 가격 변동(T년)과 세계 교역 증가율(T+1년) 간 ‘부(負)의 관계’가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란 핵협상 타결로 유가가 추가 하락한다면 세계 교역 증가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개별 국가별로는 원유 수출국과 원유 수입국 여부에 따라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과 한국 등 원유 수입국 경기에는 도움이 될 전망이지만 원자재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러시아·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은 추가적인 타격이 예상돼 미국의 금리 인상이 이어지면 자국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이란의 핵협상 타결로 앞으로 달라질 중동 지역 정세와 또 다른 위험 요인에도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 중동 지역은 이슬람국가(IS) 사태, 예멘의 재분단 위기, 시리아 내전 등으로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럽다. 이번 협상 타결로 중동 국가 간 혹은 미국과의 관계 변화를 통해 중동 정세가 더 복잡해지고 악화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협상 타결의 주체국인 이란과 미국은 당면한 중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조 체제를 계속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란은 앞으로 파탄에 빠진 재정, 폭락한 화폐가치 등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과의 해빙 무드를 지금보다 더 강화해 나갈 방침이다. 미국으로서도 산적한 중동 분쟁을 해결하는 데 핵협상 타결 이후 새로운 파트너인 이란을 강력한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란과 미국과의 협력 관계뿐만 아니라 중동 지역 평화 유지에 ‘암초’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스라엘이 이란 핵협상 타결에 가장 반대해 온 점을 감안하면 전통적인 우호국이었던 미국의 중동 정책에 비협조적으로 나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도 이란의 부상으로 시아파 세력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한 군사 활동을 강화할 가능성도 높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