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주총서 실제 행사 비율 1%대 그쳐…기관투자가도 의결권 행사 소극적

전자투표제 도입 ‘찻잔 속 태풍’
올 주주총회 시즌은 시작 전부터 관심이 뜨거웠다. 우선 섀도보팅 폐지로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자금을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주주로서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겠다고 밝힌 것도 중요한 변수였다. 하지만 올해 주총에서도 집합투자업자와 국민연금은 소극적인 의결권 행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주식시장의 시가총액 30% 이상을 차지하는 10대 회사의 3월 정기 주주총회 의결권 행사 현황을 살펴보면, 일부 집합투자업자가 이사 선임과 정관 변경 안건에 반대한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안건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의결권 행사 여부가 주주총회 의사 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고 펀드 손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이 없다고 판단해 의결권을 불행사한다고 공시한 집합투자업자도 적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회사가 상정한 모든 안건이 원안대로 승인됐다. 사실 집합투자업자와 국민연금의 찬반 비율만 보고 이들이 소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했다고 비판할 수는 없다. 회사가 주주총회 의안을 올릴 때 신중을 기해 검토하고 문제가 되는 안건이 없나 내부적으로 철저하게 검토했다면 집합투자업자나 국민연금도 당연히 상정 안건에 대해 모두 찬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대 주주 등 지분율 34%…기관투자가 한계
기관투자가가 의결권 행사를 소극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원인 중 하나는 영향력의 현실적인 한계 때문이다. 국내 10대 회사의 최대 주주 및 특수 관계인의 평균 지분율은 34%(17.6~66.6%)에 달한다. 반면 국민연금은 일부 회사의 지분을 10% 내외로 보유하고 있고 집합투자업자들 역시 의결권이 10% 이하에 머물러 국민연금과 집합투자업자들이 모두 반대한다고 해도 최대 주주 및 특수 관계인의 지분을 넘어서기 힘든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관투자가가 소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물론 최대 주주 및 특수 관계인과 국민연금, 집합투자업자 등의 기관투자가를 제외한 나머지 지분을 소액 투자자가 소유하고 있고 이들의 지분율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그러나 소액 투자자는 회사의 정보를 접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관투자가들의 의결권 행사 내역을 보고 의사 결정을 할 가능성이 높다. 전자투표제 시행으로 소액 투자자의 주주총회 의결권 행사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 지금이야말로 기관투자가들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15년 2월 24일 현재 전자투표제를 도입한 회사는 425개이고 전자위임장을 도입한 기업은 358개로 급증했다. 하지만 3월 23일까지 전자투표를 이용한 91개 기업의 행사 주식 비율은 1.93%로 매우 미미했다.

주주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회사 가치를 제고할 수 있는 다양한 주주 제안을 제시하고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에 나서야 한다. 3월에 열리는 주주총회의 대부분은 매년 한 번 개최되는 정기 주주총회로, 경영진으로부터 한 해 동안 경영 성과를 보고받고 이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배당 결정을 하게 된다. 나아가 주주를 대신해 회사의 중요한 사항을 결정하는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이사회 구성원을 선임하고 이들의 활동에 대한 보상 한도, 회사의 조직·활동을 정한 근본 규칙인 정관 변경 등을 결정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회사들은 주주총회 전에 회사의 재무 상태를 보여주고 한 해 동안 회사의 경영 성과 및 당기 성과를 회사 내에 유보해 투자 활동 등에 사용할 것인지 아니면 주주들의 소유 지분에 따라 이윤을 배분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재무제표 승인을 첫째 안건으로 상정한다. 이때 주주들은 회사가 상정한 배당 규모를 보고 주주에게 돌아오게 될 이익이 회사 규모나 재무 상태, 이익 규모 등을 고려해야 한다. 배부될 이익이 지나치게 적거나 반대로 회사 성과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과다하게 이익을 외부로 유출하는 배당 결정이라면 이를 승인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배당을 결정하는 이러한 주주의 고유 권한이 정관 변경 안건에 무심코 찬성해 사라질 수도 있다. 상법개정안에 따라 재무제표 승인 주체를 주주총회에서 이사회로 변경하는 정관 변경 안을 승인하면 이익배당 결정 권한도 이사회가 갖게 된다.

주주총회의 또 다른 중요한 안건은 회사의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이사회의 구성원을 선임하는 것이다. 이사회 구성원은 회사 내부에서 경영을 하는 동시에 이사회 일원으로서 활동하는 ‘사내 이사’와 회사 외부에서 주로 활동하며 이사회에서 경영진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사외 이사’로 구성된다. 최근 국민연금과 일부 집합투자업자를 중심으로 회사가 상정한 사내 이사 및 사외 이사의 자격을 검토해 결격 사유가 있는 이사 후보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국내 10대 기업에선 SK하이닉스 사내 이사 박성욱 후보와 한국전력 상임 이사 장재원 후보는 지배 구조 개선 차원에서, 현대차 사내 이사 윤갑한 후보와 사외 이사 이병국·이동규 후보, 현대모비스 사내 이사 최병철 후보와 사외 이사 이우일·유지수 후보는 회사 가치 훼손 의사 결정을 내린 이력이 있어 일부 기관투자가가 이사 선임을 반대했다.


결격 사유 없는 이사 선임 중요
이처럼 주주를 대신해 회사의 의사 결정을 하는 이사는 특정 주주의 이익보다 전체 주주의 이익을 추구해야 하며 윤리적으로 충분한 자질을 갖고 있어야 한다. 특히 사외 이사나 감사 또는 감사위원은 경영진의 활동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회사 경영진과 독립적인 인물을 선임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회사가 법령상 결격 사유를 가진 인물을 사내 이사로 선임하거나 독립성을 지니지 않은 사외 이사나 감사 또는 감사위원을 후보로 올리고 있어 이들이 전체 주주의 권리를 대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곤 한다.

마지막으로 주주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는 C회사 사례를 소개하면서 주주총회 안건별로 얼마나 중요한지 살펴본다. C회사 전체 이사회 구성원은 사내 이사 5명과 사외 이사 2명으로 사내 이사 중 1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4명은 회사의 최대 주주인 모회사의 현직 회장·부회장·대표·부사장이다. 즉, 이사회의 사내 이사 1명과 사외 이사 2명을 제외한 57%가 최대 주주의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의 임원으로 구성됐다. C회사의 2013년과 2014년 배당으로 최대 주주에게 돌아간 배당액이 2014년 당기순이익의 약 44%에 달한다.

회사는 이러한 배당 안건 외에 우수 인재 유치와 회사 경쟁력 향상을 위해 임원에 대해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을 부여의 안건을 상정했는데, 그 대상자에 아직 선임되지 않은 감사 후보를 포함해 9만7000주를 주도록 했다. 이에 따라 신규 선임될 감사는 보수 총액 4억 원 외에도 공정 가치로 7억5000만 원에 달하는 주식매수선택권을 부여받게 됐다. 감사는 경영진의 경영 성과를 독립적인 위치에서 견제하고 감시해야 하는데 이들에게 지급되는 과도한 보상은 감사의 독립성을 약화시킨다.
전자투표제 도입 ‘찻잔 속 태풍’
이뿐만이 아니다. C회사가 상정한 이사 보수 승인 건은 보수 총액 내지 한도액을 40억 원으로 해 타 회사와 다를 바 없는 건처럼 보인다. 하지만 보수 총액 내지 한도액 결정은 이사 보수 총액 내지 한도액의 규모뿐만 아니라 주주총회에서 승인된 이사 보수가 어떻게 지급되고 있는지 함께 살펴봐야 한다. C회사는 주주총회에서 승인된 이사 보수 총액 40억 원 중 사외 이사 2명에게 각각 2800만 원을 지급하고 사내 이사 5명 중 최대 주주 회사의 임원이자 사내 이사인 4명은 급여를 받지 않고 나머지 1명의 A 사내 이사에게 총 5억7300만 원(급여 3억400만 원, 상여 2억6900만 원)을 지급했다.

보수 총액에 포함되지 않는 보수인 주식매수선택권에 대해서는 잔여 수량이 37만4000주가 있는 것으로 공시했다. 주식매수선택권은 매년 부여 주식의 20% 한도 내에서 사업 목표 달성도 평가에 기초해 이사회 결정에 따라 지급하는데 A 사내 이사의 재직 기간은 3년으로 매년 주식매수선택권을 부여받았으며 2015년 3월 31일 기준으로 A 사내 이사 주식의 공정 가치는 342억 원에 달했다. 그러나 특정 주주를 대표하는 무더기 사내 이사 선임, 감사에게 과하게 지급되는 주식매수선택권과 보수, 특정 사내 이사에게 지급되는 이사 보수 승인의 건 모두가 무사히 회사가 올린 원안대로 승인됐다.

주주들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첫 단계인 주주총회에서 주주로서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주주총회 안건과 그 이면의 사실 관계, 기업 활동 내역을 잘 검토해야 한다.


김명서 지속가능금융센터 센터장 mskim@eco-partner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