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여주(酒)도 만든 이지민 대표

“한식 밥상에 와인은 안 될 일이죠”
‘오늘 저녁은 이강주(梨薑酒)다. 배(梨)와 생강(薑)이 들어간 술이다. 알코올 도수는 25도. 상큼한 향과 매콤한 맛이 특징이다. 어울리는 음식은 뭘까.’ 저녁 장을 보러 나가는 그녀의 머릿속은 늘 이렇다. 반찬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안줏거리를 고민한다. 답을 구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장바구니를 챙기는 몇 분 동안이면 충분하다. ‘그래, 전이다. 기름에 지진 전이 제격이다. 매생이전·감자전·배추전, 메밀전병.’ 이런 전, 저런 전을 궁리하며 시장 바닥을 누빈다. 그러다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잔뿌리에 흙 기운이 남아 있는 봄 냉이를 본 게다. 1000원짜리 두 장을 내고 얼른 장바구니에 담는다.

이날 저녁상에 오른 안주는 냉이튀김이다. 흙을 깨끗하게 씻어내 튀김옷을 입혀 튀겨 냈다. 튀김이 전보다는 역시 한 수 위다. 바사삭바사삭 씹는 소리부터 맛있다.

냉이튀김의 기름 맛이 이강주의 매콤한 맛과 아주 잘 어울린다. “냉이의 쌉쌀한 맛이 은은한 배향의 개성을 도드라지게 받쳐 주는데, 기가 막힌 마리아주야. 어떻게 냉이튀김을 생각해 냈어.” 남편은 밥상 대신 술상을 차린 아내가 마냥 예쁘기만 한 모양이다. 권커니 잣거니 빈 술잔이 연신 채워지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결국 조선시대 3대 명주로 꼽히는 전통 명주 이강주가 이 부부의 밥상 아닌 술상, 술상 아닌 밥상에서 세 병이나 호로록 사라졌다.

‘오늘은 또 뭘 해 먹나’라며 푸념 섞인 혼잣말로 밥상을 차리는 일반 주부들이 보면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주인공은 ‘국민 주모’로 불리는 ‘대동여주도’의 콘텐츠 제작자 이지민 씨다.


‘국민 주모’가 풀어 놓는 전통주 이야기
대동여주도는 ‘이 세상의 술을 모두 먹어 버리겠다’는 두 여자가 의기투합해 우리의 술인 전통주 이야기를 술술 맛있게 풀어놓는다. 두 여자 모두 30대. 홍보회사 ‘PR5번가’ 대표인 이 씨와 겸업 만화가로 활동하는 쵸키(필명)다. 이야기 아이디어는 주로 이 씨의 머리에서, 만화는 쵸키의 손끝에서 나온다. 그러나 대부분이 이들이 부딪는 술잔 속에서 콸콸 넘쳐 나온다.

“지난해 5월 만화가 허영만 선생님을 따라 전통주 명인 투어에 재미 삼아 따라나섰다가 무척 놀랐어요. 전통주의 맛이 기가 막히더라고요. 게다가 평생을 몸 바쳐 조상 대대로 내려온 술을 이어 가고 있는 명인들의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지요. 그런데 열악한 주변 환경, 즉 명주의 품질에 미치지 못하는 포장과 패키지 등이 큰 충격이었어요.”

LG상사 와인사업부 등지에서 근무하면서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명품 와인과 술을 두루 섭렵한 이 씨에게 모든 게 안타까웠다. “조정형 명인의 ‘이강주’, 이기숙 명인의 ‘감홍로’, 조영귀 명인의 ‘송화백일주’, 양대수 명인의 ‘대통대잎술’, 이기춘 명인의 ‘문배주’, 여기에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매실원주….” 그의 입에서 명인과 명주의 이름이 줄줄 흘러나온다.

이렇게 훌륭한 술들이 국내시장에서조차 대접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2014년 8월 대학원 동기생 쵸키와 대동여주(酒)도를 만들게 된 배경이다.

대동여주도의 전통주는 엽기 발랄하다. ‘전통주=노인네, 오래됨, 고루함, 낡음 등’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젊은 여자의 신선한 시각으로 풀어낸다. 전통주나 명인에 대한 소개는 무척 진지하지만 나머지 내용을 풀어 가는 방식은 종종 취객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이벤트를 걸어 명인들에게 선물 받은 명주를 택배로 쏘기도 한다. 술에 흥건히 취한 자신들의 일상사도 스스럼없이 까발린다. 술값을 아끼려는 사람들을 위해 술 마시고 빨리 취하는 법을 살짝 귀띔하기도 한다. 폐인들에게 대동여주도는 정겹고 귀여운 술주정뱅이(?)인 셈이다. 그러면서도 각각의 술과 어울리는 음식, 와인에서 이야기하는 마리아주를 전통주에 접목해 멋지게 풀어낸다. 전통주로 칵테일을 만들고 그것에 어울리는 안줏거리도 소개한다. 이도 부족한지 술이 당기는 날 찾으면 좋을 술집도 알려준다. 술, 특히 전통주에 대한 다양하고 알찬 정보가 가득하다.

이 씨가 술과 인연을 맺은 것은 초등학교 6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산에서 살 땐데, 아버지가 해운대 바닷가에서 생뚱맞게 맥주를 한 모금 주시더라고요. 맛을 보라고요. 싫지 않았어요. 맛있더라고요.” 이후에도 아버지는 크리스마스나 생일 같은 특별한(?) 날에 한 잔씩 줬다. 자연 스럽게 술잔을 받는 법, 술을 따르는 법 등 주도를 몸에 익히게 됐다. 여기에 집안 내력 하나 더 추가. 집안 식구 중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 명절 때 가족이 모이면 각자 마시는 술도 모두 다르다. 아버지는 막걸리, 어머니는 와인, 남동생은 폭탄주, 그리고 본인은 주종 불문이란다.

가문의 알딸딸한 피와 어릴 적부터 아버지로부터 술 내공을 전수받은 이 씨. 본격적인 술 실력은 대학원에 들어가면서 발휘하게 된다. “일당백이었지요. 술자리의 뒷마무리는 항상 제몫이었어요. 술에 취한 선배 택시 태워 보내기부터 후배들 데리고 해장술 챙겨 먹이기까지….” 그래도 아직까지 자신이 술 취한 모습을 본 사람은 남편(일곱 살 연상의 홍보 영상 감독)뿐이란다.

“정말로 흐트러짐 없이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술을 마신다니까요” 목소리를 높여 강조하는 그녀에게 주량을 물었다. “소주로 따지면 기본이 2병 정도.” 살짝 말꼬리를 올린다.

술을 잘 마시려면 안주와 친해지라고 말한다. “저는 아버지에게 안주를 꼭 먹어야 한다고 배웠어요. 그래야 취하지 않는다고요. 취한 모습 보인 적이 없다 보니 대학원 동기들은 저를 아직도 ‘괴수 주모’라고 부르죠.” 그래도 술은 집에서 남편과 마시는 술이 제일 맛있단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녀의 남편도 아내가 만든 음식과 마시는 술이 가장 좋다고 전한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가정에는 술친구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 이들을 위한 이 씨의 대접은 주안상만이 아니다. 술판이 벌어지기 전에 건넌방에 이부자리도 준비해 둔단다. ‘전사자’들을 위한 주모의 배려다.


“전통주는 조상이 남긴 보석”
술 취한 사람처럼 신바람 나게 자신의 술 이야기를 하다 말고 갑자기 이 씨의 표정이 진지해진다.

“참, 이 이야기는 꼭 하고 싶었어요. 한식에는 우리의 전통주! 한식이 드디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한식 밥상에 와인을 올릴 일은 아니잖아요. 우리 술과 마시면 한층 더 맛있게 한식을 즐길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어요.”

이를 위해 이 씨는 한식과 관련된 요리사나 매니저들이 우리 술 공부를 해줄 것을 당부했다. 또한 외국의 레스토랑에 하우스 와인이 있는 것처럼 우리의 한식당에도 그곳만의 우리 술이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전통주를 삶의 화두로 잡은 그에게 꿈을 물었다. “전국 방방곡곡에 숨어 있는 전통주와 그 지역의 음식을 찾아다닐 겁니다. 그래서 우리의 전통술과 우리의 전통 음식이 얼마나 멋지게 어우러지는지 확인해 알릴 계획입니다. 한걸음 더 나가 영어·중국어·일본어로 된 사이트를 만들어 외국인들에게 우리 전통주의 우수성을 알리는 일도 하고 싶어요. 앞으로 서울에서 저를 찾다가 없으면 시골의 어느 술도가에 빠져 있는 줄 아세요.”

아파트 서재를 술 전시장으로 바꿔 놓고 핸드백에서 불쑥 술병을 꺼내는 여자. “전통주는 우리 조상이 남긴 보석”이라고 외치는 국민 주모 이 씨.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작은 공간에서 대동여주(酒)도란 간판으로 시작한 이지민. 그의 전통주 사랑이 나비효과처럼 큰 반향을 일으켜 우리의 전통주가 지구 반대쪽까지 확산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만남이었다.


유지상 음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