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IT·금융 ‘투톱’ 지주사 체제 가닥…갈 길 먼 현대차·롯데

순환출자 해소·지배력 강화 ‘묘수 찾기’
삼성·현대차·SK·롯데 등 한국 경제를 대표하는 국내 주요 기업집단은 이제 지배 구조 개편을 통해 새로운 성장의 길을 찾아야 할 때가 됐다. 특히 삼성은 2014년에 이어 2015년에도 지배 구조 개편의 선봉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이 변하면 현대차·롯데 등 다른 기업집단도 동참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지배 구조는 그룹 매출의 3분 2 정도를 차지하는 삼성전자를 중심에 두고 봐야 한다. 현재 삼성전자는 삼성생명(7.6%)과 삼성물산(4.08%)을 통해 지배한다. 이건희 회장은 지분율 3.38%를 가진 개인 최대 주주다. 주목할 기업은 이재용 부회장(지분율 25.1%)이 최대 주주인 제일모직이다. 제일모직은 이건희 회장(20.76%)에 이은 삼성생명의 2대 주주다. 즉 삼성의 지배 구조를 아주 간략하게 말하면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삼성의 지배 구조는 숙제를 안고 있다. 먼저 이 회장 일가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분율은 4.7%에 불과하다. 또 금융과 산업이 혼재하고 있다. 타 기업집단에 비해 많이 해소하긴 했지만 아직도 기업집단 내 횡행식 출자, 상향식 출자 등의 문제점이 남아 있다.

그러면 어떻게 숙제를 풀어야 할까. 숙제를 풀기 전, 즉 지배 구조를 개편하면서 세워야 할 원칙이 있다. 먼저 당연하지만 이 회장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또한 지배 구조를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과거 복잡한 지배 구조는 ‘순환출자’를 통해 가공 자본을 만들 수 있던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복잡한 지배 구조를 가지고 있는 기업은 오히려 다양한 규제 등으로 경영의 ‘비효율’이 더 커진다.


이재용 부회장 리더십의 시험대 될 수도
단순한 지배 구조는 경영의 ‘선택과 집중’을 가능하게 만든다. 삼성은 확실히 타 기업집단보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데 주목해 온 곳이다. 이는 삼성전자의 그룹 내 매출 비중이 말해준다. 그러나 지금은 이를 더 강화해야 한다. 이제 삼성이 경쟁해야 할 상대는 국내 기업이 아닌 글로벌 기업이기 때문이다. 결국 삼성은 최근 한화와의 ‘빅딜’에서 보여줬듯이 정보기술(IT)과 금융이란 ‘투톱’으로 가야만 한다.
순환출자 해소·지배력 강화 ‘묘수 찾기’
마지막으로 주주 가치를 높이는 쪽으로 가야 한다. 현재 삼성은 크게 보면 이 회장 체제로부터 이 부회장 체제로 넘어가는 과도기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잡음이 지나치게 발생한다면 ‘경영권 승계’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특히 삼성은 주주 행동을 강조하는 외국계 자본이 가장 많이 투입된 기업집단이다.

이런 원칙을 바탕으로 한 삼성의 지배 구조는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까. 가장 먼저는 현 체제를 유지하는 방안이다. 사실 삼성의 지배 구조는 현 상태에서도 별 문제가 없다. 대규모 지배 구조 개편은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들어간다. 그러니 사업 구조 재편과 순환출자 해소 정도로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삼성은 ‘지주회사’ 시스템이라는 지배 구조 재편을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이유는 이 부회장 체제가 힘을 얻기 위해서는 강력한 지배 구조가 필요하고 ‘투명성 강화’라는 사회적 기대와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즉 이 부회장은 그룹의 성장과 함께 지배 구조의 개편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이뤄내야만 ‘3세 경영’의 당위성을 얻을 수 있다.

이 때문에 현재 재계와 금융 투자 업계 등에선 여러 변화 시나리오를 내놓고 있다. 물론 매출 300조 원의 그룹인 만큼 전체적인 변화는 2020년 이후에나 완결될 전망이다. 그만큼 천천히 이뤄질 것이고 상황에 따라 바뀔 가능성도 높다.

가장 먼저는 핵심인 삼성전자를 인적 분할해 지주사인 가칭 ‘삼성전자홀딩스(자기자본 약 50조 원)’와 사업자회사(자기자본 약 110조 원)로 나눈다. 이렇게 되면 홀딩스는 배당에 대해 세금을 내지 않으므로 현금 창출력이 더 커진다. 또 이 회장 일가와 계열사가 보유한 사업자회사의 지분을 홀딩스로 현물출자하면 특수 관계인의 지분율은 33.9%까지 높아지고 지주사가 보유한 사업자회사의 지분율도 32.5%로 상승하게 된다.

이와 함께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도 가능하다. 현재 제일모직이 금산 분리(5%룰) 등의 영향으로 삼성생명의 지분 7.5% 중 5%를 초과하는 것을 직접 매입하는 것이 좋다. 현재 금융사인 삼성생명이 제조업인 삼성전자의 지분을 7.5%나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이 회장 개인이 삼성생명의 최대 주주이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물산과 합병하면 외형이 커지면서 제일모직 단독으로는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삼성전자 지분의 매입이 쉬워진다. 또 삼성생명 등 금융 계열사가 기존처럼 우호 주주로 남을 수도 있게 된다.

관련 업계에서는 삼성전자홀딩스와 제일모직의 합병도 예상한다. 지주회사 SK 위에 SK C&C가 있는 ‘옥상옥’ 구조인 SK그룹과 비슷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SK C&C와 SK의 합병은 금융 투자 업계의 주요 이슈다.

삼성생명의 분할 역시 가능한 시나리오다. 앞으로 제조업 자본도 중간금융지주를 통하면 금융사를 보유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즉 제일모직을 인적 분할한 뒤 삼성생명에서 인적 분할한 금융지주사와 합병해 새로운 중간금융지주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이는 현행법상 부담스러운 면은 있지만 중간금융지주회사법의 변화도 가능할 수 있다는 게 재계와 금융 투자 업계의 전망이다.

사실 삼성보다 현대차는 앞으로 지배 구조의 변화 가능성이 더 큰 기업집단이다. 즉 삼성에 비해 진행이 덜 돼 있는 것이다. 삼성은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통해 지배 구조의 정점에 있는 제일모직 지분을 성공적으로 3세대에게 상속했다. 그러나 현대차 그룹은 이런 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다.


롯데의 지배 구조는 복잡하기로 유명
현대차그룹은 현재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가 지배 구조의 핵심이다. 특히 정몽구 회장 일가의 지분이 많지 않은 편이고 그마저도 각 계열사에 나뉘어 있다는 게 지배 구조 변화의 큰 걸림돌이다. 실제로 지금 상황에서 정몽구 회장이 지분을 그대로 정의선 부회장에게 상속하면 현대모비스 지분은 7.0%에서 3.5%로, 현대차 지분은 5.2%에서 2.6%로, 현대제철 지분은 11.8%에서 5.9%로 지분율이 모두 반 토막이 난다. 특히 그룹 순환출자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사실상의 지주회사 현대모비스에 대한 정 부회장의 지분은 없다.

이 때문에 현대차그룹 지배 구조 재편의 핵심은 ‘흩어진 지분을 현대모비스로 모으는 것’ 그리고 ‘정 부회장의 자금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부각되고 있는 기업은 현대글로비스다. 현대글로비스는 정 부회장이 최대 주주(23.28%)인 기업이다. 즉 현대글로비스를 크게 성장시켜 정 부회장의 자금력을 키우고 이를 현대모비스에 합병해 지주회사를 만드는 시나리오다.
순환출자 해소·지배력 강화 ‘묘수 찾기’
주목할 사실은 지난 2월 정 회장과 정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 보유 주식 중 30%가 넘는 지분 13.39%를 매각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현대글로비스 주가가 폭락하기도 했다.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의 합병이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전망에서였다. 하지만 금융 투자 업계에서는 이를 대주주 지분율 30%가 넘는 기업에 해당되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즉 규제에서 벗어나 현대모비스의 ‘본격적 성장’을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금융 투자 업계에서는 정 부회장의 지분율이 높은 이노션(40%)·현대위스코(57.87%) 등도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이노션은 올해 상장이 예정돼 있다.

롯데의 지배 구조는 복잡하기로 유명하다. 웬만한 기업집단은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인수·합병(M&A)을 통해 급속도로 성장했고 각 계열사들이 십시일반 투자해 신규 법인을 설립하다 보니 금융과 제조업이 혼재하고 어지러운 순환출자, 횡행식 출자, 교차 보유가 눈에 띈다.

물론 복잡한 지배 구조에 따른 장점도 있다. 타 그룹사에 비해 각 계열사에 지분율이 큰 편인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의 지배력이 더 강력해지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특히 사업의 대부분이 한국에 있지만 지배 구조의 정점은 일본에 있어 상속세에 대한 부담도 덜하다.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역사다. 삼성과 현대차는 경영권이 2대에서 3대로 넘어가는 과정이다. 반면 롯데는 1대에서 2대로 넘어가는 과정이다. 당연히 그만큼 경영 승계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적었다는 의미다.

롯데의 복잡한 지배 구조는 기업 가치를 저평가 상태로 만들었다. 투자자들이 한눈에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롯데그룹의 핵심 기업인 롯데쇼핑의 주가순자산배율(PBR)은 0.4배에 불과하다.

물론 롯데의 지배 구조는 현행법상 전혀 문제가 없다. 다만 결국 롯데 역시 지배 구조를 바꿀 수밖에 없어 보인다. 투명성 개선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장기 성장성과 금산 분리 등의 문제를 감안할 때 지배 구조를 단순화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실제로 롯데그룹은 최근 순환출자 고리를 줄이는 데 여념이 없다. 2013년 6000개에 육박했던 순환출자 고리가 2014년 들어 400여 개(12월 말 기준)로 줄어든 게 그 증거다.


LG·SK, 지배 구조 개편 거의 마무리
이에 따라 금융 투자 업계에서는 롯데그룹 지배 구조 변화의 포인트를 사실상의 지주회사인 호텔롯데와 주력 회사인 롯데쇼핑에 맞추고 있다. 즉 롯데쇼핑과 호텔롯데를 각각 지주회사와 사업부문으로 나눈 각 지주회사를 하나의 지주회사로 통합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신 총괄회장 등 대주주 일가의 지분을 각 지주회사에 출자하면 통합 지주사의 지분을 3분의 2 정도 확보할 수 있다.

롯데쇼핑과 호텔롯데를 합병한 후 인적 분할하는 것도 비슷한 효과를 낸다. 호텔롯데는 일본롯데홀딩스에서 100% 소유하고 있고 대주주 일가도 롯데쇼핑 28.8%, 롯데제과 27.3%, 롯데푸드 9.4%, 롯데칠성 18.8% 등을 보유하고 있어 지주회사를 만들면 쉽게 7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만약 필요 없이 지분이 많다면 증자를 통해 신규 사업에 진출할 수도 있다.

재계 상위권 기업 중에서는 LG와 SK는 지배 구조 개편이 거의 마무리된 기업으로 꼽힌다. LG는 이미 1990년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을 완전히 마쳤고 SK는 SK C&C와 SK의 합병만 남겨 놓은 수준이다. 반면 현대중공업은 가장 갈 길이 먼 기업으로 꼽힌다.

현대중공업은 크게 네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중공업의 순환출자 구조를 가지고 있다. 둘째, 대주주 일가의 지분은 현대중공업에 대한 정몽준 회장의 지분 10.2%와 재단 지분 3.2%가 거의 전부다. 셋째, 금융과 산업이 혼재돼 있다. 하이투자증권·하이자산운용 등 금융사를 핵심 기업인 현대중공업이 아닌 현대미포조선이 보유하고 있어 지주회사 전환 시 금융을 분리하기가 쉽지 않다. 넷째, 악화된 조선 업황에도 비슷한 일을 하는 기업이 3개나 된다. 즉 중복 투자가 지나치게 많은 것이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단기적으론 현대중공업과 현대삼호중공업의 합병을 예상하고 있다. 특히 현대중공업은 현대삼호중공업 지분을 94.9%를 가지고 있어 합병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보다 멀리 보면 현대중공업 역시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도 불가피한 것으로 예상된다. 지주회사는 현대미포조선을 인적 분할해 만드는 방법과 현대중공업을 인적 분할해 만드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현대미포조선을 인적 분할하면 대주주의 현대중공업 지분을 현대미포조선 지분으로 바꿔야 하는 과정이 있다.

그래서 지주회사는 오너가 직접 지분을 보유한 현대중공업 중심으로 설립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위한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현대미포조선이 보유한 현대중공업 지분 8.0%(1조1000억 원 정도)를 3% 정도는 자사주로 매입하고 3% 정도는 오너가 직접 매입하고 나머지는 우호 세력에 넘기는 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인 것으로 보인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