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명쾌한 지분 구조…소유·경영 통해 책임 경영

제너럴일렉트릭(GE)은 미국인들에게 단순한 기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위인전이라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토머스 에디슨이 바로 GE의 창립자다. 천재 발명가가 137년 전에 세운 GE는 세계 최초의 전구, 미국 최초의 산업용 연구·개발 시설 설립, 두 차례의 세계대전 기간 중 항공기 엔진 생산 등 ‘주식회사 미국’을 대표하는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가 됐다. 1896년 다우존스공업지수에 최초로 포함된 12개 기업 중 현재까지 생존하고 있는 기업도 GE가 유일하다.

미국 최고(最古)·최대(最大)의 기업인 GE가 자랑하는 경쟁력은 따로 있다. 바로 투명한 기업 경영과 안정된 지배 구조다. 1892년 에디슨종합전기회사와 톰슨휴스턴 전기회사가 합병하면서 등장한 GE의 역사 중 지금까지 회장을 역임한 사람은 현재의 제프리 이멀트 회장을 포함해 8명에 지나지 않는다. 초대 회장인 찰스 코핀은 1892년부터 1922년까지 무려 30년을 재임했고 잭 웰치도 1981년 41세의 나이에 회장에 오른 후 2001년까지 20년을 재임했다.

초대 회장인 찰스 코핀의 재임은 1892년, 즉 GE의 출범부터 함께한다. 창립자인 에디슨은 우리로 치면 이병철 회장이나 정주영 회장 같은 신화적 인물이지만 전문 경영인에게 과감하게 자리를 내줬다. 19세기 말부터 이미 소유와 경영의 분리 개념을 확립했다는 뜻이다.


GE 최대 주주 지분율은 5.3% 불과
GE는 전 세계에서 주식 소유 구조가 가장 잘 분산된 기업으로 꼽힌다. 주주 수만 해도 500만 명에 이른다. 현재 지분 구도를 봐도 창립자 가문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최대 주주인 블랙록은 뉴욕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의 자산 운용사다. 최대 주주의 지분율은 5.3%에 불과하다.
투명한 지배 구조가 혁신 이끌어
GE로 대표되는 영미권 기업의 지배 구조는 오늘날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GE의 지배 구조 개선 작업을 회원국이 따라야 할 모범 규준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미국식 기업 지배 구조의 핵심은 철저한 전문 경영인 체제의 확립이다. GE를 비롯해 포드·제너럴모터스(GM) 등 미국을 대표하는 굴지 기업의 최대 주주는 모두 자산운용사·우리사주·사모펀드 같은 기관투자가들이다.

지분의 분산도 영미권 글로벌 기업들의 특징이다. 최대 주주의 지분율은 적게는 4%대, 많아도 8%대가 일반적이다. GE는 기관투자가로 구성된 1~3대 주주가 지주사인 GE를 지배하고 있는데, 이들의 지분을 모두 합쳐도 14.5%에 불과하다.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와 나눠 갖기식 지분 참여로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국내 대기업과 비교하면 글로벌 기업들의 단순명쾌한 지분 구조가 더욱 눈에 들어온다.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투명한 지배 구조는 위기 돌파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경영권 승계를 둘러싸고 오너·대주주·소액주주 등 이해관계인 간에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한국의 현실과는 대조적이다. 좋은 예가 미국의 듀폰이다.

듀폰은 1998년 당시 화학과 섬유 부문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었다. 당시 듀폰은 창사 200주년을 기념해 글로벌 산업의 미래 전망과 메가트렌드 포럼을 개최했다. 듀폰은 애초에 1·2차 세계대전에 사용된 다이너마이트와 플루토늄 제조 등 화약 제조사로 명성을 쌓았다. 이후 나일론과 스판덱스의 원료인 라이크라를 개발하며 화학섬유 산업 1인자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지만 한국·중국 등의 추격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결론은 섬유에서 농업·생명과학·식품회사로의 변신이었다. 듀폰은 장기적으로 식량·환경·건강 문제가 글로벌 산업·경제의 핵심이 될 것으로 내다봤고 기업의 체질을 과감하게 바꾸기로 결정했다.


기업의 목표는 주주 이익 극대화
2013년 기준으로 듀폰의 전체 매출액 357억 달러 가운데 32.8%인 117억 달러를 농업 부문이 차지하고 있다. 15년 전 그룹의 주력이었던 화학·소재 부문의 매출 비중은 36.7%로 줄었다. 그 대신 안전·예방이 38억 달러, 영양·건강이 34억 달러, 전자통신이 25억 달러, 산업생명과학이 12억 달러의 매출을 차지했다. 변신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내리막길을 걸었던 듀폰의 시가총액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맥을 못 추던 경쟁 기업과 다르게 수직 상승하기 시작했다.

듀폰의 과감한 결정은 투명한 지배 구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1998년 회장에 오르며 변신을 주도한 이는 찰스 홀리데이다. 그는 1970년대부터 듀폰의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18대 CEO로 취임했다. 홀리데이 회장 자신을 비롯해 당시 경영진은 화학·섬유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로, 사내에선 ‘마피아’로 불리기까지 했다. 기득권에 안주할 수 있었던 이들이 스스로 대변신을 주도한 것은 기업의 지속 가능성, 주주와 기업의 이익만을 놓고 고민했기때문이다.



인터뷰 | 강성부 LK투자파트너스 대표
투명한 지배 구조가 혁신 이끌어
“국민연금 역할, 10년 안에 큰 변화 올 것”


강성부 LK투자파트너스 대표는 얼마 전까지 신한금융투자에서 글로벌자산전략팀장으로 일하며 채권 크레디트 부문에서 오랜 기간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활약해 왔다. 특히 기업 지배 구조에 정통한 것으로 유명한 강 대표는 최근 한경비즈니스와 함께 ‘글로벌 기업의 지배 구조 2015’를 펴내기도 했다.

해외 기업과 한국 기업의 지배 구조에서 핵심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선진 지배 구조를 가진 기업은 대부분이 영미권의 기업들이다. 이들 나라에선 오너가 직접 경영에 잘 나서지 않는다. GE나 듀폰 같은 기업들은 100년, 2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2대까지는 몰라도 3대에까지 이르면 지분과 경영권 자체가 희석될 수밖에 없다. 한국 기업도 마찬가지다. 현재 경영권이 창업자의 3대, 길게는 4대까지 넘어간 기업들도 있는데, 오너십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곳이 많다. 순환출자, 일감 몰아주기 같은 폐해들은 모두 이런 배경에서 나온다. 선진국에선 이미 이런 문제를 국회에서 갑론을박하지 않는다. 이학수법(특정재산범죄수익 등의 환수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안) 같은 것도 없다. 한국 기업들도 10~20년 후면 결국 지주사를 중심으로 한 투명 경영 체제가 강화될 것이다.”

지분율도 중요한 차이점인 것 같다.
“그렇다. 영미권 기업은 역사가 오래될수록 지분이 굉장히 많이 분산돼 있다. 최대 주주들도 대부분이 사모 펀드나 자산 운용사 같은 기관들이다. 반면 한국은 순환출자가 일반적이다. 10대 그룹이 거의 그렇다. 롯데는 지분 구조의 70%가 순환출자 방식이다. 아니면 자회사들이 손자회사들을 십시일반으로 조금씩 돕는 곳이 많아 이 기업이 어떤 기업의 계열사인지 모호한 곳도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지배 구조에 대한 갈등이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지배 구조와 관련해 항상 따라붙는 꼬리표가 오너 리스크다.
“한국 기업을 보자. 창업주 등 오너가 거의 사망할 때가 다 돼서야 후계 구도가 잡힌다. 지속 가능한 경영에서 보면 당연히 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다. 반면 글로벌 기업은 전문 경영인 체제가 잡혀 있어 CEO 후보들을 오래전부터 정해 놓는다. 그 안에서 철저히 검증하고 훈련시키는 프로그램과 메커니즘이 잘 작동하고 있다. 잭 웰치도 41세에 회장에 올라 GE의 혁신을 주도했다. 일렉트로닉이라는 이름을 벗어던지고 금융 등에 과감한 투자를 단행한 것은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혁신가의 몫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준비된 CEO의 역량 덕분이었다.”

그렇다고 갑자기 전문 경영인 체제로 가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나.
“한국은 서구 사회가 200년에 걸쳐 겪은 변화를 수십 년 만에 압축해 풀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지금 상황에서 당장 전문 경영인 체제로 가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동안 마땅한 CEO 후계 프로그램도 없었다. 현실은 여전히 오너 경영 체제가 당분간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시장에서 재벌의 위기를 의심하는 시선 또한 점점 강해지고 있다. 3~4세 경영자들이 유례없는 저성장 시대를 돌파할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국민연금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한국 기업들이 제일 못하는 게 있다. 배당성향과 배당수익률이 글로벌 주요국 중 꼴찌 수준이다. 기업 이익의 주주 환원이 잘 안되고 있다는 뜻이다. 주주들도 권익 보호를 위한 액션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예전엔 그런 수단이 없었다. 최근 들어 생긴 변화가 국민연금의 역할론이다. 시장에서 국민연금에 변화를 바라는 요구가 크다. ‘식물 대주주’란 표현까지 나오지 않았나. 국민연금의 수익률을 1%만 올려도 매년 25조 원 이상의 복지 재원이 늘어난다. 복지 수요가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결국 국민연금도 배당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갈 것이다. 투명 경영의 시작인 지주회사는 법적으로 배당에 대해 세금을 안 내게 돼 있다. 향후 10년 안에 큰 변화가 올 것이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