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 지분율 낮고 브랜드 로열티 적어 순수지주사 모델은 한계

투자 여력 갖춘 사업지주사 뜬다
기업의 역사가 쌓일수록 창업주 등 대주주의 지배에서 전문 경영인 체제로 옮겨 가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앞으로 우리 기업들도 적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통제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현금 흐름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기업 구조가 개편, 전환될 전망이다.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이 대표적인 예다.

2014년 9월 말 기준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지정한 국내 지주회사는 135개다. 이 중 상장사가 62개나 돼 국내시장 규모에 비해 지주회사 수가 많은 편이다. 그러나 삼성·현대차·롯데·한화·현대중공업 등 10대 그룹 가운데 5개사가 지주회사 체제를 선택하지 않아 아직 지주회사 제도가 주류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한국은 일본과 함께 전 세계에서 드물게 지주회사를 금지한 나라였다. 기업은 생산을 위한 기관이지 기업 자체를 소유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 때문이었다. 일본은 1998년 1월 해당 규제를 철폐했고 한국도 외환위기에 따른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1999년 4월 들어 지주회사 제도를 도입했다. ‘지주회사가 부실기업 정리에 도움이 된다’는 국제부흥개발은행(IBRD)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지분·재무 레버리지는 양날의 검
기업집단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동기는 다양하다. 먼저 레버리지 효과다. 지주회사라는 지렛대를 중간에 끼워 넣어 지분은 물론 재무적 레버리지 효과까지 누리게 된다. 새로 마련된 재원으로는 자회사를 세우거나 신규 사업에 진출하는 등 사업 다각화도 기대할 수 있다. 기존 그룹을 인적 분할한 후 현물출자를 통해 대주주의 지주회사 지분율을 높이면 그룹 전체에 대한 장악력도 잃지 않게 된다. 대주주 지분이 강화된 지주회사가 핵심 자회사에 대한 지분을 강화하는 방법이다.

세제 혜택도 볼 수 있다. 특히 대주주에게 유리하다. 대주주가 직접 배당을 받으면 최고 41.8%에 달하는 소득세를 물어야 하지만 지주사가 받으면 면세다. 이중과세로 보기 때문이다. 상속 과정에서도 지주회사가 절세 효과를 줄 수 있다. 한국의 지주회사는 주식시장에서 순자산 가치 대비 저평가되는 곳이 대부분이다. 또 지주회사 전환 전에 비해 대주주가 보유한 지분의 시장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주회사로 전환한 이후 저렴한 시가를 기준으로 상속세를 내고 이후 지주회사를 청산하면 대주주가 그 차익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존재하는 셈이다.

경영 승계 문제를 해결하고 기업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도 지주회사 체제가 유리하다. 창업주의 자녀 세대로 내려올수록 기업집단이 분할되고 최초 설립 정신 및 정체성도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지주회사 설립을 통해 기업의 창업 정신을 계승하는 것은 물론 지분·인적자원·이미지 등 기존 자원의 분산도 막을 수 있다.
투자 여력 갖춘 사업지주사 뜬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국내 기업집단은 LG그룹 사례처럼 상속과 기업 정체성 유지를 위한 순수지주회사 전환이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단순히 지분과 재무 레버리지만 노린 지주회사 전환은 부작용도 낳는다. 시장의 냉담한 반응과 계열사로부터 받는 배당 외에는 현금 창출을 기대하기 힘든 배경, 여기에 지도력의 부재까지 더해지며 여러 기업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웅진그룹이다.

웅진홀딩스의 법정 관리 선언은 지주회사의 역할과 안정성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다. 대주주의 지분율이 높고 지배 구조의 정점에 선 기업이 최후까지 버틸 것이라는 시장의 예상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웅진의 지주회사 전환은 극동건설 인수와 맞물려 있다. 그룹의 컨트롤타워가 건설과 금융으로 다각화를 진행하기 위해선 재원이 필요했고 지주회사의 지분상·재무상 레버리지 효과를 이용했다. 인수·합병(M&A)과 지주회사의 관계가 긴밀한 것은 지주회사가 레버리지를 일으켜 인수 자금을 마련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버리지의 이면에는 현금 창출에 제약을 가질 수밖에 없는 순수지주회사의 리스크가 도사리고 있었다.

지주회사 전환 동기에 다양한 변수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05년 들어서다. 전환 자체도 많아졌고 무엇보다 동기가 다양해졌다. SK·한진중공업·한진해운·코오롱 등은 상속 이후 경영 지배권 강화를 위해 지주회사로 전환했다. 웅진·금호·하이트는 M&A를 위해, CJ는 사업 구조 개편을 위해, STX는 다각화와 계열사 지원 과정에서 지주회사로 전환했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모두 대주주의 지분율 상승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업지주보다 순수지주회사로 전환했다는 점이다.

이런 흐름과 반대로 사업지주회사로 전환한 곳은 두산그룹이다. 형제의 난과 분식회계로 위기를 겪었던 두산은 2006년 1월 19일 ‘지배 구조 선진화 3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지주회사 전환, 서면 투표제로 소액주주 권리 보호, 100% 사외 이사로 구성된 내부거래위원회 설치 등 투명경영 확립, 감사위원회 활성화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3년 만인 2009년 1월 1일 ‘두산→두산중공업→두산건설→두산’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를 단절하고 지주회사 전환이 이뤄졌다.


지주사도 현금 창출 능력 갖춰야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순수지주회사가 지분과 재무의 레버리지를 일으키기에 좋은 지배 구조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형 지주회사의 특징은 자회사에 대한 지분율이 낮아 우량 자회사라고 하더라도 지주회사가 취할 수 있는 배당률이 낮다는 데 있다. 브랜드 로열티도 적게 받는다. 새로운 수익원을 개발하지 않으면 지주회사의 현금 흐름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LG·SK와 같은 순수지주회사보다 두산·SK C&C 같은 사업지주회사가 현금 흐름의 안정성 측면에서 우월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사업지주회사로의 전환이 주류를 이룰 전망이다.

순수지주와 사업지주의 차이는 LG와 삼성의 예를 참고할 수 있다. 지난 20년간 LG그룹 상장사의 배당성향은 삼성의 2배가 넘는다. 순수지주회사 전환을 통해 투명한 지배 구조를 갖추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성과만을 놓고 보면 삼성보다 불리한 역설이 연출되고 있다. 삼성이 지주회사 체제가 아닌 이상 직접적인 비교에는 무리가 있지만 적극적이고 과감한 투자라는 경영 활동 면에선 LG가 삼성에 비해 구조적으로 어려움을 안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