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축통화 지위 노려, 달러 의존도 축소 포석도

일대일로 구상은 2013년 10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인도네시아 국회 연설에서 언급한 것으로,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의 경제 벨트를 합친 개념이다. 중국은 내부적으로 지방 간 불균형 심화에 따른 갈등을 해소하려고 이 같은 개념을 구체화했다. 또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 공동체에 중국이 배제되고 주변국들이 참여하는 상황을 사전에 방지할 목적도 있다.
AIIB 통해 위안화 무역 결제 확대
AIIB 창설의 주된 목표는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에 참여하는 국가의 경제성장 기반을 구축하고 이들 국가 간의 무역을 장려하고자 하는 것이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 과제로는 ▷참여국 간 정책 협조 ▷인프라 정비 ▷무역 활성화 ▷무역 통화 기조 확립(위안화 국제화) ▷민간 교류 활성화 등이다.
5대 정책 목표와 연관이 있지만 그중 ‘무역 통화 기제 확립’이 주목 받는다. 중국은 시진핑-리커창 체제 출범 이후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들겠다는 목표로 국제화 과제를 적극 추진해 왔다. 가장 먼저 아세안 10개국과 위안화 무역 결제 협정 체결을 추진했고 이후 범위가 빠르게 확산돼 현재 달러화 다음으로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내에서는 위안화 무역 결제가 가능한 지역을 20개 시범 도시에서 전국으로 확대 적용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외국인들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위안화를 본토에 직접 투자할 수 있는 역외 위안화 거래센터도 런던·파리·프랑크푸르트·서울 등 12곳에 개설했다. 특히 중국은 높아진 국제 위상에 걸맞게 달러 위주의 국제통화 체제 변경의 일환으로 위안화를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 바스켓에 포함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막대한 외화보유액을 활용한 통화 스와프 협정은 그동안 3단계에 걸쳐 이제는 거의 모든 국가와 맺었을 만큼 가장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전의 1단계에서는 중화 경제권과 홍콩·대만 등 화인 경제권 같은 중국의 실질적인 영향권에 속한 국가와 통화 스와프 협정을 추진해 왔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2단계에 들어서는 한국을 비롯해 말레이시아·벨라루스·인도네시아·싱가포르·우즈베키스탄·몽골·카자흐스탄 등 주로 신흥국과 통화 스와프를 체결했다. 유럽 재정 위기가 발생한 2011년 이후 3단계에서는 이전 두 단계의 성과와 유로 랜드 회원국을 중심으로 선진국과의 통화 스와프 협정을 체결하고 있다.
중국이 최근 수년간 위안화의 국제화를 꾸준히 추진하고 있는 것은 국제 금융시장에서 자국의 경제 위상에 걸맞은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목적이 가장 크다. 금융 위기 이후 중국은 미국과 함께 ‘차이메리카’ 혹은 ‘G2 시대’가 열렸다고 할 만큼 국제적인 위상이 매우 높아졌다. 구매력 기준으로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국제 금융회사들은 2020년, 이르면 올해 안에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자금 조달의 효율성·편리성 높일 수 있어
최근 들어 중국이 위안화의 국제화를 서두르는 것에 대해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국제 위상 확보 이외의 다른 목적에 더 주목하고 있다. 외화보유액의 달러에 대한 의존도를 축소해 이른바 달러 함정(dollar trap)에서 탈피하려는 계획이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증가하던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 규모와 비중을 금융 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줄여 온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된다.
위안화의 국제화를 통해 기축통화 발행에 따른 화폐 발행 차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물론 금융회사 자금 조달의 효율성과 편리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도 강하다. 미국은 1977~1995년 동안 해외 부문에서 얻은 화폐 발행 차익이 연간 23억~118억 달러로 전체 조세 수입의 0.4~1.8%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국제 채권 발행 통화는 달러화·유로화·파운드화·엔화·스위스 프랑화 등 5개국 통화에 집중돼 있어 중국은 경제 규모에 상응하는 자금 조달상의 편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최근 급진전에도 불구하고 IMF가 8가지 지표를 사용해 주요 통화의 국제화 정도를 평가한 결과를 보면 위안화는 아직까지 상당히 뒤처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제적 사용도에서 달러 등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IMF는 위안화의 국제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자본거래의 통제를 지적했다.

특정국 통화가 이런 요건을 갖춰 지역 공동 통화 혹은 새로운 기축통화로 도입돼 정착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경과해야 한다. 유럽은 유로화가 도입되기까지 길게는 20세기 초 자유 사상가에 의해 첫 통합을 구상한 시점부터 따진다면 100년 이상이 소요됐다. 하지만 중국은 최대한 시간을 단축해 위안화의 중심 통화 기능을 확보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장기적으로 중국 정부는 위안화가 완전한 태환성을 갖춘 국제통화로 통용될 수 있도록 자본시장 개혁을 병행해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본 자유화에 따른 잠재적 리스크를 완화하기 위해 위안화 절상, 유동성 관리 강화, 규제와 감독 체계 개선, 금융 중개 시스템의 발전, 금리자유화, 자본시장 개방 등의 조치를 장기적인 계획 아래 체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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