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원정도박 혐의로 장세주 회장 검찰 수사, 장세욱 역할론 부상

‘위기의 동국제강’…사태 수습 누가
지난 3월 31일 오전 동국제강 사옥인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 들어서는 직원들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역력했다. 서울중앙지검은 3월 28일 오전부터 동국제강 본사 건물인 페럼타워와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의 자택, 계열사 등 여러 곳을 압수 수색했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3월 초 장 회장과 동국제강이 원정 도박과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만 해도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다”며 “말도 안 된다는 의견이 더 많았는데 압수 수색까지 들어오면서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오너 리스크’ 우려 확산
이번 사태로 동국제강의 ‘오너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먼저 최근 가뜩이나 어려운 경영 환경이 더욱 악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동국제강은 2009년 철강 경기 침체 이후 매출과 영업이익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4년에는 204억 원의 영업손실과 2925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됐다.

동국제강이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2005년부터 추진 중인 브라질 일관 제철소 건설 사업에도 먹구름이 끼었다. 1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로 부채가 늘면서 지난해 부채비율이 240%에 달했다. 또 브라질 제철소 건립을 위해 합작 투자사들에 동국제강이 써 준 채무보증 금액만 1조4000억 원이 넘는 수준이다. 검찰 수사가 장기화되면 해외 사업에서 차질을 빚는 것은 물론 유동성 악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 같은 악재가 동국제강 주가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국제강 주가는 3월 30일 비자금 의혹 수사 소식에 영향을 받아 전날보다 6.51%(410원) 내린 5890원에 장을 마감했다. 동국제강에는 따뜻하지 않은 봄날인 셈이다.

동국제강 임직원들이 동요하는 또 다른 이유는 장 회장의 원정 도박 혐의다. 장 회장은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 처한 가운데도 회사 돈을 빼돌려 해외 도박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역시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장 회장의 도박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장 회장은 1990년 마카오 카지노에서 상습 도박을 한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다. 이후 2001년 동국제강 회장에 취임했고 2004년에는 횡령과 배임 혐의로 기소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장 회장은 현재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이번 검찰의 압수 수색 과정에서 증거인멸을 시도했다는 혐의로 직원 2~3명이 긴급 체포되면서 회사 분위기가 더욱 어수선해졌다. 주주총회를 통해 장 회장을 사내 이사로 재선임한 바로 다음 날 압수 수색이 이뤄진 것도 동국제강에는 부담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장 회장에 대한 회사 내부와 외부 신뢰가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며 “장 회장의 부적절한 과거 행적이 입길에 오르면서 경영자로서의 자질이 시험대 위에 올랐다”고 말했다.
‘위기의 동국제강’…사태 수습 누가
장세주 회장
1953년생. 1976년 연세대 이공대학 졸업. 1978년 동국제강 입사. 1981년 미 타우슨주립대 경제학과 졸업. 2001년 동국제강 회장(현).

장세욱 부회장
1962년생. 1985년 육군사관학교 졸업. 1996년 동국제강 입사. 1998년 미 서던캘리포니아대 MBA. 2010년 유니온스틸 사장. 2015년 동국제강 부회장(현).

장선익 씨
1982년생. 연세대 졸업. 보스턴컨설팅 근무. 2007년 3월 동국제강 경영관리팀 입사. 2010년 동국제강 미국지사 근무. 2013년 동국제강 일본지사 근무(현).


업계에서는 장 회장이 당장 업무에 복귀하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이에 따라 회사 내에서 누가 책임을 지고 사태 수습에 나설지가 관심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우선 주목받는 것은 장 회장의 장남 장선익 씨다. 올해 만 33세인 그는 동국제강 4세 가운데 늘 관심의 대상이 돼 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룹 내에서 역할은 크지 않다. 1997년생인 동생 장승익 군은 아직 고등학생이기 때문에 관심권에서 멀어져 있다.

장 씨는 현재 회사에서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보스턴컨설팅에서 근무하다가 2007년 3월 동국제강 경영관리팀 사원으로 입사했다. 2006년 여름방학을 이용해 동국제강 신입 사원 연수에 참가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후 2010년 뉴욕에 거주하면서 동국제강 미국지사 근무를 시작했다.

2013년에 일본지사로 이동한 후 현재까지 과장으로 근무 중이다. 그는 정몽준 전 새누리당 의원의 장남 정기선 현대중공업 수석부장과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의 장남 유석훈 씨와 서울 청운중 47회 동기동창이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부친인 장 회장이 경영에 참여하기 전까지 현장 실무 부서를 거쳐 왔던 것처럼 말단 사원에서부터 차근차근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며 “아직은 특별한 의미를 두기 어렵다”고 말했다.

장 씨는 주요 계열사의 주주명부에도 이름을 올린 상태다. 동국제강 0.44%, 인터지스 1.75%, 페럼인프라 0.09%의 지분을 갖고 있다. 하지만 장 회장의 나이가 아직 젊고 장 씨의 지분도 미미해 경영 승계를 말하기는 이른 상황이다.


장 회장 장남은 경영 수업 중
장 회장의 동생인 장세욱 동국제강 부회장은 어떨까. 올해 만 53세인 장 부회장은 장 회장보다 아홉 살이 젊다. 2014년 12월 그가 대표이사로 합류하면서 동국제강은 장세주 회장, 장세욱 부회장, 남윤영 사장의 3인 대표 체제로 전환됐다.

육군사관학교 출신(41기, 예비역 소령)인 장 부회장은 1996년 예편한 뒤 부친인 장상태 전 회장의 부름을 받고 그해 동국제강 기획조정실 경영관리팀 과장으로 입사했다. 그 후 미국지사·기술실·포항제철소·경영혁신추진본부 등을 거쳐 2004년부터 그룹 전략경영실장(부사장)으로 지내다 유니온스틸 사장을 거쳐 2014년 12월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현재 동국제강의 지분 10.22%를 보유한 2대 주주다.

장 부회장은 장교 출신답게 자신에게는 매우 엄격하지만 철강 업계 안팎에서는 직원들과의 스킨십 경영을 즐기는 섬세한 최고경영자(CEO)로 통한다. 그가 경영을 맡았던 유니온스틸은 업황 악화에도 비교적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동국제강의 재무구조 개선과 경영 혁신 작업을 이끄는 등 그룹 경영 전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장 부회장은 올 1월 동국제강 대표이사에 취임하면서 소통 경영에 적극 나서고 있다. 평사원이나 대리급 직원들과 같이 출근하면서 애로 사항을 들었다. 동국제강의 위기와 함께 장 부회장의 역할론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동국제강은 부자 승계보다 형제 승계가 먼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동국제강 측은 “아직 향후 동국제강 경영권 향방을 논하기엔 이르다”며 “좀 더 지켜봐 달라”고 말을 아꼈다.


돋보기
국내 첫 민간 철강사

동국제강은 포스코와 현대제철에 이은 국내 3대 철강 업체다. 고 장경호 창업자가 일으킨 동국제강은 2세인 장상태 전 회장으로 경영 역사가 이어졌고 현재 3세인 장세주 회장이 그룹을 이끌고 있다. 동국제강은 1954년 7월 설립됐다.

부산에 터를 잡고 시작한 국내 첫 민간 철강 회사다. 포스코(옛 포항제철)보다 설립연도가 14년이나 앞선다. 장 창업자는 포항·인천·당진 등으로 공장을 확장하며 철강 전문 기업으로 사세를 키웠다. 1965년 50톤 규모의 국내 첫 고로를 준공했고 1971년 국내 처음으로 후판을 생산했다.

동국제강은 2014년 4월 기준으로 계열사 16개, 자산 10조730억 원으로 재계 순위 27위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