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서점가 ‘컬러링북’ 돌풍…치유·명상 효과

색칠하다 보면 잡념 사라져요
컬러링북(색칠놀이 책)이 유럽 서점가를 휩쓸고 있다. 신드롬의 근원지는 프랑스로, 지난해 실용서 베스트셀러 15권 중 7권이 컬러링북이었고 요리책보다 더 빠른 속도로 팔려 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스페인·이탈리아·네덜란드·영국 등 유럽 전역으로 인기가 번져 가는 중이다.

완성된 밑그림에 색깔을 채워 넣는 색칠놀이는 본래 어린이용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1~2년 새 성인 독자들의 구입이 부쩍 늘었고 아예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란 타이틀이 붙은 관련서 출간도 봇물을 이뤘다. 자녀를 키우는 기혼 여성이나 커리어 우먼 등 20, 30대 여성들이 주요 독자다.


SNS에 완성작 올려 입소문
프랑스발 컬러링북 열풍의 중심에는 스코틀랜드 작가 조해너 배스포드의 ‘비밀의 정원(Secret Garden)’이 있다. 2013년에 발간된 이 책은 한국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는 등 세계적으로 140만 부가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비밀의 정원’은 처음 출간된 영국이 아닌 프랑스에서 먼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우연한 성공은 아니었다. 출판사의 마케팅 전략이 제대로 통한 것이었다.

프랑스 소비자들은 대체적으로 항우울제 상품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출판사는 바로 이 점에 착안, 영국에서 출간될 때와 달리 ‘비밀의 정원’ 책 표지에 ‘안티-스트레스’라는 문구를 첨가했는데, 이것이 신의 한 수였다. 책의 부제로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한 것이다.

컬러링북의 메가 히트에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도 한몫했다. 컬러링북을 구입한 독자들이 자신의 완성작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에 속속 올리면서 입소문을 타게 된 것이다. 꽃·동물·건축물 등이 밑그림이다 보니 조금만 공을 들여도 쉽게 아름다운 작품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많은 독자들이 ‘공유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색칠을 하는 동안 잡념이 사라지게 되고 빨간색이나 녹색 등의 원색을 접하면서 스트레스가 해소됐다는 후기들도 함께 전해지며 컬러링북의 인기가 치솟게 됐다. 이를 치유와 명상의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많아졌다. 컬러링북이 피로 사회 속 도시인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있는 셈이다.

출판사 아셰트는 2012년 영국에서 판권을 사온 ‘아트테라피 100 안티스트레스 컬러링북’을 출간하면서 성인을 위한 컬러링북이란 부제를 달아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출판사 측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무엇인가를 창조하고 싶은 열망이 컬러링북의 인기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프랑스에서는 기존 서적을 비롯해 문신, 디즈니 만화, 왕족 패션, 일본 화가의 작품 등 150여 종류의 컬러링북이 출간됐고 크레용이나 색연필 등 색칠 관련 상품들도 덩달아 많이 팔리고 있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영국의 서점가에서도 컬러링북 돌풍이 거세다. 우선 영국의 대형 서점 체인 워터스톤스는 지난해 크리스마스의 매출이 전년 대비 300%나 늘었는데 컬러링북의 판매 증가가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대형 서점인 포일스 런던점은 컬러링북을 찾는 손님들이 많아지자 아예 진열 규모를 키웠다. 우선 컬러링북 섹션을 선반 반 개 규모에서 세 개 반 규모로 넓혔고 컬러링북이 포함된 창의성 섹션은 선반 두 개 규모에서 선반 전체로 대폭 확장했다. 또한 영국에서는 선물용으로 컬러링북을 찾는 손님이 늘고 있고 한 장씩 찢어서 보관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컬러링북도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헤이그(네덜란드)=김민주 객원기자 vitamj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