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맨체스터대 경제학 박사. 금융경제연구원 부원장.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2013년 한국경제연구원 초빙 연구위원(현).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창설이 눈앞에 다가왔다. 영국·독일 등 유럽 국가들이 참가를 선언하고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도 찬성 쪽으로 기울면서 급기야 미국도 세계은행·아시아개발은행(ADB)을 통한 간접 협력 의사를 밝혔다.
AIIB 창설은 이제 절차만 남은 셈이다. 한국의 가입은 당연지사다. 이렇게 되니 자연히 선택의 폭이 좁아져 좀 더 중·장기적인 전략을 가지고 미리 미리 미중 외교를 통해 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가입 협상을 벌여 오지 않은 아쉬움이 남는다.
AIIB는 중국이 두 가지 큰 전략 하에 추진하고 있는 다자간 개발 은행이다. 하나는 30년간 고성장을 마감하고 중성장기에 진입한 중국 경제를 다시 부흥시키기 위해 추진하고자 하는 중국 서부 대개발 등 신실크로드 추진에 필요한 막대한 소요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방안이다.
둘째는 아직 내심을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전후 IMF·세계은행·ADB 등으로 대표되는 미국 중심의 국제통화 금융 질서에 대항해 중국 중심의 새로운 국제통화 금융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중국의 원대한 전략이다.
IMF에 대응해 긴급외환보유기금(CRA), 세계은행에 대응해 신개발은행(NDA), ADB에 대응해 AIIB를 설립하고자 하는 데서 중국의 의중이 드러나고 있다.
중국은 지난 30년간 고도 성장 결과 축적된 4조 달러에 달하는 외화보유액과 거대 시장이라는 무기를 활용해 ‘팍스시니카’를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로 한때 주춤했던 미국도 최근 다시 부활하고 있다. 한국으로서는 미중 사이에서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AIIB에 창립 회원으로 참여하게 되면 한국 기업들의 방대한 인프라 개발 프로젝트 참여, 북한 문제에 대한 중국의 협조 등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북한을 마주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한미 동맹이 훼손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 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동북아개발은행 창설이 어려워질 수 있는 점도 문제다. 역내에 ADB·AIIB가 있는데 새로운 다자간 개발 은행을 설립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드레스덴 선언에서 북한 경제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제안한 동북아개발은행은 두 가지 면에서 중요하다.
첫째는 한국 정부가 북한이 핵만 포기하면 경제개발을 지원하겠다고 수차례 제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안 되는 배경에는 남한에 의한 흡수 통일 가능성을 우려하는 북한의 대남 울렁증이 자리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면서 북한을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 발전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이 다자간 개발 은행을 통한 지원이다.
둘째는 다자간 개발 은행은 국제기구로서의 신용도를 이용해 납입자본금의 10배 내외의 채권을 국제 금융시장에서 발행할 수 있어 적은 자본금으로 많은 개발 소요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 납입자본금도 회권국들이 분담하므로 국가별 부담이 적다.
중국도 이 점을 계산하고 AIIB를 추진하고자 하는 것이다. 막대한 자금이 소요될 북한 개발에 적합한 수단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 평화는 동북아 평화에 절대적으로 긴요하다. AIIB가 일정 부분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 개발에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중국과 협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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