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VC사업부, 전기차 핵심 부품 완성 단계…‘스마트카’시장 야심
올해 1월 초 세계 최대 가전 쇼인 국제 전자제품 박람회(CES)에서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은 정보기술(IT) 업계가 아닌 자동차 업계 관계자들을 만났다. 자동차 부품 전시관을 주로 둘러본 후 “스마트 자동차 전장 부품 시장에 대비하라”고 주문하는 한편 메르세데스-벤츠의 디터 제체 회장과 비즈니스 협력을 위해 40분간 대화를 나눴다. 구 부회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장 부품을 계속 팔고 있고 많은 자동차 업체들과 얘기하고 있다”며 “LG전자가 카 내비게이션을 한 지 10년 됐는데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 카 내비게이션 이외의 다른 전장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구 부회장이 이끄는 LG전자의 자동차 부품 사업이 차세대 성장 엔진으로 속도를 내고 있다. 관련 사업부의 매출이 조 단위로 성장한 데 이어 최근 주요 글로벌 고객들을 연이어 확보하는 중이다. IT 기업의 ‘화려한 외출’을 뛰어넘어 명실 공히 ‘자동차 부품 회사’로 변모하고 있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스마트카 핵심 부품 시장 주도 야심
구 부회장은 2013년 7월 VC(Vehicle Components)사업본부를 신설하고 직접 사업을 챙기며 차세대 먹을거리로 키워 왔다. 자동차 부품 전문 업체인 LG CNS의 자회사 V-ENS를 합병하고 대우자동차 출신 부품 전문가 이우종 사장을 선임하면서 스마트카 핵심 부품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그동안 VC사업본부는 태양광 사업 등과 함께 기타사업부문으로 함께 실적이 발표돼 구체적인 수치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매출이 1조 원을 넘어서면서 조 단위의 의미 있는 실적이 나오자 올해 1분기부터 개별 사업부문으로 수치를 공개할 계획이다. 박경렬 LG전자 VC기획관리 상무는 “특히 자동차 인포테인먼트 부품들의 채용 차종과 지역이 늘어나면서 매출이 늘고 있다”며 “지난해 두 자릿수 이상의 성장을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핵심 부품은 크게 네 가지 영역으로 나뉜다. xEV(범용 전기자동차) 솔루션, 인포테인먼트 기기, 안전 및 편의 장치, 차량 엔지니어링이 그것이다. xEV 솔루션은 전기차를 움직이는 모터·인버터 등 구동 부품과 동력원을 제공하는 배터리 팩, 공조·냉각 관련 부품 등이다. 인포테인먼트는 운전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AVN(오디오·비디오·내비게이션) 등 전장 장치가 포함된다. 김지산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재는 인포테인먼트 기기가 90% 정도 성과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향후 xEV 솔루션이 주축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VC사업본부는 B2B로 고객의 요구에 따라 주문생산방식으로 설계·생산을 하고 있다. 구 부회장은 CES에서 벤츠 회장을 만나고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과 함께 BMW 독일 본사에서 LG자동차 부품 설명회를 여는 등 완성차 기업들과 손을 잡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왔다. 가장 최근엔 독일 폭스바겐그룹과 자율 주행 기능을 갖춘 스마트 카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스위스 제네바 팔렉스포에서 3월 3일 열린 ‘2015 제네바 모터쇼’서 이탈디자인 주지아로가 공개한 자율 주행 럭셔리 콘셉트카 ‘제아’에 전장 부품을 공급하는 등 스마트카 관련 기술 협업을 진행했다. LG전자는 이 차에 디스플레이·스마트워치·후방램프·카메라 등 7종의 전장 부품을 공급했다.
LG전자는 또한 구글의 무인차 프로젝트에 배터리 팩 공급 파트너로도 참여했다. 구글은 올해 1월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오토 모티브 뉴스 월드 콩그레스(ANWC)’에서 LG전자가 무인차 프로젝트의 글로벌 협력사라고 밝혔다. 구글 무인차 프로젝트에는 LG전자 외에 제너럴모터스(GM)·포드·폭스바겐·도요타·다임러·보쉬·엔비디아도 참여했다.
이 밖에 GM에는 ‘온스타 4세대(4G) 롱텀에볼루션(LTE)’용 통신 모듈을 독점 공급하기로 했다. 북미와 유럽은 물론이고 중국 시장에서 판매되는 GM의 글로벌 커넥티드 카 핵심 시스템을 공급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지난해 12월에는 메르세데스-벤츠와 스테레오 카메라 시스템 개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또한 지난해 여름 인도 타타그룹과 만나 자동차 부품 사업을 소개한 것을 계기로 최근 타타그룹에 자동차 부품을 공급하는 계약이 임박한 것으로도 알려진다. 글로벌 커넥티드 카 개발 연합인 ‘오픈 오토모티브 얼라이언스(OAA)’에 참여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OAA는 현대차·기아차·GM·폭스바겐 등 글로벌 자동차 제조업체 및 LG전자·파나소닉·엔비디아·구글 등 IT 업체들이 참여하는 커넥티드 카 개발 연합이다. LG전자는 지난해 6월 OAA 가입을 계기로 특히 ‘OS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LG그룹이 전방위적으로 자동차 부품 사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현재 LG전자를 비롯해 LG이노텍(모터)·LG화학(배터리)·LG하우시스(원단)·LG CNS(스마트 마이크로 그리드 솔루션) 등 5개 계열사가 성장 엔진으로 자동차 부품 분야를 지목하고 있다. 일종의 자동차 부품 수직 계열화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구글·폭스바겐·GM 등과 손잡아
LG이노텍은 2007년부터 구동 모터와 센서를 중심으로 사업을 시작해 점진적으로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며 사업 역량을 키워 가고 있다. LG이노텍의 차량 전장 부품사업 매출은 2009년(500억 원) 대비 2014년(5325억 원) 10배로 성장했다. 지난해 최대 실적으로 2011년 이후 3년 만의 극적 반전을 이룬 LG이노텍은 향후 자동차 전장 부품을 주력 사업으로 삼고 더욱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또한 LG화학은 아우디 등 주요 완성차 업체에 전기차용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전기차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중국 난징에 신규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 LG그룹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LG그룹의 자동차 부품 사업 매출은 3조 원을 돌파했다.
그러면 LG그룹의 자동차 부품 경쟁력은 어느 정도일까. 김 애널리스트는 “계열사들이 성장 동력을 자동차 부품에서 찾고 있고 VC사업부를 컨트롤타워 삼아 그룹 차원에서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배터리·디스플레이·모터·센서 등에서 글로벌 1등을 차지하는 등 많은 부분에서 성과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부품을 한데 모으면 최종 그림은 ‘전기차’가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연구·개발(R&D) 차원에서는 전기차 부품이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는 평가가 나온다. 차량 설계 능력부터 주요 부품 공급 능력을 다 갖추고 있기 때문에 오너의 결정만 있다면 전기차를 제조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의견이다. 자동차 전문가인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전기차의 부품 수는 내연기관차의 30~40% 정도로, LG전자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전기차 제조가 가능하다”며 “다만 단순히 전기차 부품이나 모듈 공급으로 갈 것인지, 완성차 공급을 통해 지배권을 자동차 분야로 키울 것인지는 수년 안에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LG그룹은 완성차 진출에 대해서는 분명히 ‘선’을 긋고 있다. 처음부터 부품 공급을 목표로 시작했고 향후에도 변함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여전히 완성차 진출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상태다. 이는 전기차 시장의 성장과도 맞물릴 것으로 보인다.
LG전자가 IT 기업에서 자동차 부품 업체로 본격적으로 모습을 보일 시기는 2017년께로 예상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시장 성장 추이를 봐 가며 2017년 본격적인 성과를 내고 2020년께 주력 사업으로 키운다는 미션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남은 과제는 요소 기술들의 ‘융합’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분산돼 있는 각각의 요소 기술을 한데 묶어 시너지를 내는 게 관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기차 강자인 테슬라는 통합 기술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대형 모듈을 납품하기 위해서라도 총체적 역량을 묶는 통합 기술력이 필요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항공기와 달리 자동차는 운전자마다 운행 스타일이 다르고 주변 환경을 감지해야 하는 등의 변수가 많아 모든 것을 고려한 플랫폼을 만들기가 매우 어렵다”며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독자 노선보다는 오랜 노하우가 있는 완성차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남은 꿈을 이뤄 나갈 것으로 내다본다”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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