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자 직접 나서 분양가 저렴…법적 보호 장치 적어 꼼꼼히 따져야

기억 저편으로 잊혔던 ‘지역주택조합’이 다시 조명 받고 있다. 한동안 지역주택조합에서 발을 뺐던 건설사들도 하나둘 시장으로 복귀하는 움직임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과열 주의보’까지 내려진 상태다. 부동산 시장에 부는 때아닌 지역주택조합 열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아파트 공동 구매’ 지역주택조합의 부활
‘지역주택조합’이 부활했다. 전국 각지에서 지역주택조합 관련 소식들이 잇따른다. 실수요자와 투자자가 너나없이 지역주택조합에 관심을 보이고 중·대형 건설사들도 적극적으로 사업 참여 의사를 밝히고 있다.

업계의 반응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일단 침체된 부동산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는 의견이다. 뉴타운·재개발·재건축으로 대표되는 정비사업이 침체 일로를 걷고 있는 가운데 도시 재생에 한몫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반면 시장 과열에 따른 거품(버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고수익에 대한 기대만큼 투자 리스크도 커 각별한 주의도 요구되고 있다. 알면 기회, 모르면 위기라고 한다. 지역주택조합을 찬찬히 뜯어봤다.


지역주택조합 통해 내 집 마련해 볼까
“지역주택조합이요? 저 같은 서민들이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데에는 정말 좋은 제도 같아요. 요즘처럼 집값 상승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을 때에는 투자적인 측면에서도 지역주택조합이 최고죠.”

지역주택조합을 설명하는 강모(48) 씨의 목소리가 잔뜩 고조된다. 강 씨는 최근 지역주택조합을 통해 경남 김해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강 씨가 본격적으로 새 보금자리를 찾기 시작한 것은 2012년부터다. 당시 강 씨는 지어진 지 20년 가까이 된 낡은 주공아파트(66㎡)에 거주했다. 자녀는 딸만 둘. 첫째 딸이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시점에서 조금 더 넓고 안락한 보금자리가 절실해졌다.

일단 일반 분양은 너무 비쌌다. 재개발·재건축은 토지 등 소유자가 아니라 웃돈(프리미엄)을 주고 조합원 자격을 얻기에는 리스크가 커 보였다. 강 씨가 지역주택조합으로 눈을 돌린 이유다. 강 씨에게 조합원 자격이 주어지는 김해 지역의 3~4개 지역주택조합이 물망에 올랐다. 조합들은 하나같이 토지 매입을 마무리했고 탄탄한 건설사가 시공한다고 홍보 중이었다. 평소에도 꼼꼼하기로 소문난 강 씨였던 만큼 신중하게 조합을 선별했다. 조합을 직접 찾아가 토지 확보 여부를 문서로 확인하고 조합 운영 실태도 체크했다. 시공사에도 일일이 전화를 걸어 사업 추진 여부를 물었다. 심사숙고 후 강 씨는 2012년 5월 김해 A지역주택조합에 가입했다. 조합 가입비(계약금)는 3000만 원, 조합원 분양가는 3.3㎡당 680만 원대였다. 조합원 모집을 완료한 A지역주택조합은 사업 추진에 속도를 붙였고 2014년 9월 착공에 들어갔다. 현재 인근 아파트 시세는 3.3㎡당 1000만 원을 웃돌고 있다.


분양가 10~20% 저렴해 인기
강 씨의 새집 마련 성공 스토리는 지역주택조합이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을 위한 새로운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세대란의 악몽이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제는 바야흐로 월세 시대에 돌입했다는 말도 나온다. 결국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꿈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장경철 부동산센터 이사는 “물론 강 씨의 사례로 지역주택이 ‘답’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가능성을 봤다는 데 의미가 크다”며 “지역주택조합을 통해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역주택조합의 탄생은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을 지원하기 위해 주택건설촉진법에 의해 도입(시행)된 제도다. 6개월 이상 일정 지역에 거주한 무주택자나 전용면적 85㎡ 이하의 소형 주택 1채를 소유한 이들이 조합을 구성해 주택을 짓게 된다. 조합원들이 토지를 매입하고 건축비를 부담해 직접 개발하는 방식이다.
‘아파트 공동 구매’ 지역주택조합의 부활
분양가가 저렴하고 사업 추진 절차도 간소해 무주택자들의 내 집 마련 수단으로 각광받았지만 토지 매입의 어려움과 사업 추진 시 안전장치 부족 등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며 외면받기 시작했다. 2000년대 급부상한 뉴타운·재개발·재건축(이하 정비사업)도 지역주택조합의 몰락에 한몫했다. 당시 정비사업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에 비유됐다. 살고 있는 지역이 정비구역으로 지정되기만 하면 집값이 껑충 뛰었다. 규모가 작은 지역주택보다 수익도 컸다. 너 나 할 것 없이 정비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2015년 현재 정비사업은 ‘미운 오리’ 신세로 전락했다. 그리고 다시 지역주택조합이 재조명되고 있다. 규모가 큰 재개발 구역 중 사업이 가능한 곳만 분리해 지역주택조합으로 진행하는 식이다.

지역주택조합 아파트의 가장 큰 장점은 저렴한 분양가다. 일반 아파트와 비교해 10~20% 싸다. 지역 단위로 결성한 수요자들이 직접 사업 주체가 되다 보니 중간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이렇게 절감된 비용이 낮은 분양가로 이어지는 것이다. 특히 건설사를 거치지 않고 조합원들이 직접 토지를 매입하는 만큼 토지 매입에 따른 금융 비용과 건설사의 이윤, 각종 부대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중간 유통 과정을 생략해 가격을 다운시킨 것이다. 지역주택조합 아파트를 ‘원가 아파트’라고도 하는 이유다. 실제로 현재 광주 오포의 한 지역주택조합 아파트는 시세 대비 약 25~40% 저렴한 3.3㎡당 700만 원대의 분양가로 조합원을 모집 중이다. 일각에서는 주택 시장의 트렌드가 변화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형 건설사까지 지역주택조합에 군침
한 건설회사 간부는 “건설사가 땅을 사서 금융 비용에 마진까지 얹어 높은 가격에 분양하면 소비자는 어쩔 수 없이 그 집으로 들어가는 게 현 주택 시장의 소비 형태”라면서 “반면 지역주택조합 아파트는 집이 필요한 사람들끼리 모여 직접 땅을 사 건물을 짓고 입주하는 식으로, 아파트를 ‘공동 구매’하는 개념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정부 규제 완화로 다양한 수요층을 흡수할 수 있게 된 것도 지역주택조합의 부활에 일조했다. 정부는 2013년 주택법 개정을 통해 지역주택조합원의 거주지 제한 요건을 완화한 데 이어 올해부터 전용면적 85㎡ 이하의 1주택 소유자도 조합원 자격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청약통장 없이 전매도 가능해졌고 오는 6월부터는 전체 물량의 최대 25%까지 85㎡ 이상 중대형 아파트로 건설할 수 있게 됐다.

일련의 상황 속에서 건설사들도 지역주택조합 사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역주택조합 아파트는 공사 규모와 단가가 낮아 건설사 자체 아파트보다 수익률은 떨어진다. 하지만 리스크가 작다는 게 장점이다. 특히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대규모 부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처리에 고생했던 건설사들로서는 토지 매입 비용이 들지 않아 초기 자본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지역조합아파트 사업이 제격이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된 가운데 저렴한 분양가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고 설사 미분양이 발생하더라도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점 또한 지역주택조합의 매력이다.
‘아파트 공동 구매’ 지역주택조합의 부활
최근 지역주택 사업에 뛰어드는 건설사들이 속속 눈에 띈다. 꾸준히 지역주택조합 시장을 공략해 온 중견 건설사는 물론 대형 건설사들까지 가세하고 있다. 지역주택조합 시장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건설사는 서희건설이다. 2012년 처음으로 지역주택조합에 첫발을 내디딘 서희건설은 현재 총 31개 사업장, 2만5000여 가구를 시공(계약) 중이다. 지역주택조합 수주 금액은 2012년 2270억 원, 2013년 5430억 원, 2014년 6470억 원으로 증가했다. 올해도 3월에만 7곳(6195가구)의 모델하우스를 오픈했다. 2012년 전체 매출의 10%에 불과했던 지역주택조합 사업의 매출은 작년 기준 30%에 육박하고 있다.

3월 26일 기업 회생 절차(법정 관리)를 졸업한 쌍용건설도 지역주택조합 사업을 통해 재기를 모색한다. 지역주택조합 신규 수주를 적극 검토하면서 토지 확보 및 인허가 리스크가 크지 않은 사업장을 선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쌍용건설이 시공을 맡은 대표 지역주택조합은 서울숲 지역주택조합이다. 3월 초부터 조합원 모집을 시작한 이 조합은 한 달도 채 안된 현재(3월 26일 기준) 조합 설립 인가 기준(50%)을 충족하고 이르면 4월에 조합 설립 인가를 받을 예정이다.

이 밖에 메이저 건설사들의 지역주택조합 사업 참여도 증가하고 있다. GS건설은 천안·청주 지역주택조합 사업들을 진행 및 검토 중이며 포스코건설·SK건설·한화건설 등도 이미 다수의 사업에 참여 중이다.

서민들은 저렴한 가격에 내 집을 마련할 수 있고 건설사도 토지 비용을 절감하며 안전하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이상적인 구조다. 하지만 지역주택조합에도 치명적인 위험 요소가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사업 추진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책임이 고스란히 사업 주체인 조합원에게 돌아간다. 특히 조합 설립 이전에는 법적 보호 장치도 미흡해 조합원 모집 단계부터 허위·과장 광고가 난무하고 각종 비리가 끊이지 않는다. 또한 지역주택조합 사업 추진에 가장 중요한 토지 매입이 쉽지 않아 사업이 지연되는 것도 다반사다. 사업이 지연되면 조합원들의 추가 분담금이 늘어나게 된다.


‘황금 알’ 낳으려면 꼼꼼히 따져봐야
변선보 법무법인 한별 변호사는 “지역주택조합은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의 수단은 물론 고수익을 얻을 수 있는 투자처가 될 수도 있지만 ‘공동 구매’가 아닌 ‘공동 투자’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투자에 성공했을 때는 ‘대박’이 날 수 있고 실패했을 때는 ‘쪽박’을 찰 수 있다”고 당부했다.

성공 여부를 가늠하기 어려운 사업인 만큼 꼼꼼히 따져보고 투자해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최초 조합원 가입 시부터 신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조합원 가입 후 조합 설립 인가를 받은 뒤에는 탈퇴가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조합원 가입 시 필수 체크포인트는 ▷토지 매입 상황 ▷시공사 현황 ▷조합 운영 실태 등을 꼽을 수 있다.

먼저 토지를 얼마나 빨리 매입하느냐가 사업 성패의 관건이다. 토지 사용 승낙률, 매입률, 매입 저해 요인 등을 자세히 따져봐야 한다. 또한 시공을 약속한 건설사의 재무 상황 및 사업 추진 의사를 살펴봐야 한다. 조합 설립 이전 선정한 시공사는 법적 효력을 갖지 못하는 만큼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사업에서 발을 빼기 일쑤고 건설사의 재무 상태가 악화돼 법정 관리에 들어가면 사업이 좌초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분담금·대행사 수입비·신청금 등의 입출금에 대한 안정성이 확보됐는지 확인해야 한다. 공신력 있는 신탁사가 예금주로 된 계좌가 안전하고 일반 계좌는 입출금이 손쉬워 금융 사고 우려가 있다. 앞서 언급한 성공 사례도 강 씨가 토지 매입 상황과 시공사, 조합 운영 실태 등을 꼼꼼히 확인한 결과가 가져온 성과였다.

권강수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는 “지역주택조합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다”며 “하지만 옥석을 가려 잘 키우면 제법 먹음직스러운 커다란 달걀을 낳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돋보기 ‘0.01초 완판’ 신화, 진실일까
“0.01초 만에 조합원 가입 청약을 ‘완판’했다며 다들 난리예요. 0.01초는 조금 과장된 것 같지만 얼마나 좋아 그러는지 다들 궁금해 하는 눈치예요. 대형 건설사가 시공해 웃돈이 많이 붙을 거라던데…. 충북 청주시 오창읍에 거주하는 주부 김나정(35) 씨의 말이다. 최근 청주시가 ‘0.01초 청약 완판’ 소문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소문의 주인공은 청주 옥산 C지역주택조합이다. 3월 13일 조합에서 실시한 조합원 가입 청약이 0.01초 만에 마감됐다는 것이다. 인근 공인중개사들에 따르면 0.01초 만에 마감은 아니었지만 조합 아파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 단시간에 조합원 모집이 완료된 것은 사실이었다.
‘아파트 공동 구매’ 지역주택조합의 부활
그러면 C지역주택조합의 인기 요인은 무엇일까. 시공사가 GS건설이라는 점이 영향을 줬다는 게 김 씨의 설명이다. D공인중개사 관계자는 “분양가가 저렴하고 입지도 좋았지만 오랜만에 ‘자이’ 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게 결정적이었다”고 말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C지역주택조합은 아직 조합 설립 인가를 받지 못한 상태다. 이 때문에 시공사 선정도 불가능하다. 조합 설립 이전에 조합과 건설사가 약정(MOU)을 체결할 때도 있지만 이 또한 추후 변경될 수 있다. 과연 GS건설이 시공하는 것은 사실일까. 확인 결과 조합과 GS건설은 MOU 체결조차 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와 관련해 GS건설 관계자는 “현재 조합과 MOU 체결 협의를 위해 준비 중”이라며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긴 하지만 시공사 선정은 조합원 총회에서 결정하는 사항으로 변경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GS건설이 시공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단지 GS건설 때문에 관심을 보였던 투자자들은 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한편 ‘0.01초 청약 완판’ 소문에 시장이 과열될 조심을 보이자 청주시도 진화에 나섰다. 시는 3월 25일 지역주택조합 조합원 모집에 따른 유의 사항 안내문을 만들어 배포했다. 청주시청 건축디자인과 관계자는 “최근 관내 지역주택조합의 대행사가 사업 대상지를 물색해 시공사를 선정하고 조합원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허위·과장 광고를 할 때가 많다”며 “조합 설립 이전에는 법적 보호 장치도 마땅하지 않은 만큼 조합원 가입 시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김병화 기자 kb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