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메이션의 시대…21세기에 필요한 독서법은 무엇일까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힘 ‘독서’
독서의 중요성은 언제나 강조돼 왔다. 그러나 왜 독서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다. 무작정 책을 많이 읽으라고 강조하는 것은 효율적 독서의 매력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면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독서를 할까. 독서는 지식과 정보뿐만 아니라 감성과 영성에 이르기까지 실용과 인간의 깊은 내면적 통찰이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전통적이며 보편적인 수단이다. 그러나 상황의 변화는 독서에 대한 그러한 펑퍼짐한 이해의 근본적 변화를 동시에 요구한다.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에서 이미 지적한 것처럼 현대 문명을 혁명적으로 바꿔 놓은 것은 바로 컴퓨터의 출현이다. 물론 초기의 컴퓨터는 지금과 질적으로 달랐다. 컴퓨터 언어를 습득한 사람들만 다룰 수 있었고 지식과 정보 또한 그것을 저장한 사람의 몫이었으며 다만 그것을 취합 활용하는 당사자들의 전유물이었다. 컴퓨터는 저장과 분류의 용량과 속도가 빠를 뿐 정보의 교환 수단은 아니었다. 혁명은 인터넷에서 점화됐다.


조직에서 개인으로 중심 이동
그러면 현대는 어떤 지식의 시대일까. 이제는 노웨어(know-where)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누가 더 빨리 필요한 정보에 접근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면 속도가 중요할까. 그건 아니다. 어차피 지식의 내용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면 무엇이 그 값의 차이를 결정할까. 그건 바로 상상력과 창의력이다. 그리고 판단력이다. 똑같은 지식이라도 그것이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또 무엇과 연결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세상이다. 정보화의 시대일수록 오히려 더 많은 독서와 사유가 필요한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똑같은 지식과 정보라고 하더라도 본인이 어떻게 가공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답을 따라가기만 하면 새로운 게 없다. 끊임없이 묻고 호기심으로 들춰봐야 한다. 상식적으로 옳다고 느끼는 것들도 다른 각도로 보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깨달아야 한다. 르네 데카르트의 ‘회의’가 서양의 근대주의를 열었다면 우리의 호기심과 의심 또한 현대와 탈현대를 살아갈 수 있는 동력이 될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은 우리에게 새로운 전환을 요구한다. 그것은 무엇일까. 지식과 정보뿐만 아니라 새로운 상상력과 융합력 그리고 창의력이다. 그리고 그 바탕은 인성이다. 현실을 살펴보자. 지금까지 우리네 삶의 방식은 유기적 사회 속에서 수많은 관계들로 얽혀 살았다.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어떤 사원이 새로운 상품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으면 위에 보고하고 많은 절차를 거치면서 가감 첨삭되고 수정돼 실무로 이어진다. 한 개인의 선택과 판단이 아니라 조직 전체가 개입된다. 따라서 그 결과에 대해서도 특정 개인에게 몫이나 책임이 돌아가는 게 아니라 조직 전체가 나눠 갖는다. 그러나 그 유기적 체계의 관계는 갈수록 대폭 축소된다. 자신이 결정하고 판단할 뿐만 아니라 책임도 져야 한다.

세상에는 좋은 정보뿐만 아니라 나쁜 정보도 많다. 과거에 조직에서 좋고 나쁨을 판단하고 결정하던 게 지금은 개개인이 판단하고 그 결과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은 어떤 문제를 균형 있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한다. 그것은 단순한 지식과 정보의 습득 또는 감성의 계발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그러한 능력을 배양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독서는 그러한 점에서 이 시대에 필연적으로 요청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자 수단이 된다.

실용적 목적을 위한 독서는 단순히 기능적 측면만 추구한 게 사실이다. 그게 노왓(know-what)이건 노하우(know-how)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제는 기능적 측면뿐만 아니라 그 지식과 정보 소유자의 인성과 판단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 시대의 독서는 바로 그러한 중요한 목적을 수행할 수 있는 방향의 재정립을 요구한다.

패러다임의 전이라는 것은 기술적 또는 전략적 전환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기존의 관념을 바꾸는 데에서 출발한다. 책의 가치에 대한 의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사회가 변하면 우리의 사고방식도 변하고 실천 방법도 변한다. 그러나 어떠한 시대나 장소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인간의 삶 자체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다.

폭넓은 독서는 직접적·기능적 수월성을 만족시키는 게 아니지만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삶 자체를 풍요롭게 하고 균형 있는 이성과 감성, 그리고 다양한 상상력을 통해 보다 나은 삶을 이끌어 준다. 21세기가 오히려 독서의 가치를 더더욱 크게 요구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창조와 융합의 힘 기르는 미래의 독서
최근 엑스포메이션(exformation)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폴 케네디나 앨 고어 같은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면서 일반화되고 있는 이 말은 인포메이션(information)에서 변형한 신조어다. 인포메이션이란 낱말은 ‘인(in)’과 ‘폼(form)’, 즉 ‘안으로 들어가 만든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기존의 정보는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와 형성되는 것들이 전부 다였다. 그러나 이제는 ‘넘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옳고 그른 지식과 정보를 가려낼 수 있는가’ 하는 게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인터넷망에서의 당면한 문제다. 그것을 분별하는 데 교사나 부모 또는 상사 등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그것을 최종 판단하는 것은 개개인 자신들이다. 그러한 분별은 다양하고 깊이 있는 독서를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현대는 전문적 지식과 전문가를 요구하는 시대다. 하지만 지식의 단순한 소유와 운용은 예전의 위력을 잃었다. 그것을 활용하는 법을 깨우치되 더 나아가 이미 있는 것들을 내 안에서 새로운 가치로 재창조해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한다. 또한 전문가적 능력과 함께 르네상스적 인간형, 즉 다양성을 동시에 갖춘 인간의 가치를 요구한다. 독서의 다양성은 바로 그러한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생산적인 대상이다.

창의력과 상상력은 기존의 것들을 무시하거나 부정함으로써 생기는 게 아니라 기존의 것들을 토대로 새로운 이해와 재구성 또는 재창조를 통해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독서의 가치는 갈수록 중요하다. 그러므로 독서의 일차적 태도는 기능적 수월성이 아니라 인간사의 다양성과 전문성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상상력의 토대와 재료는 지식과 경험이다. 상상력은 공상이 아니다. 상상력은 지식과 경험을 여러 가지로 묶고 얽고 짜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들이 함께 새로운 의미, 드러나지 않았던 가치를 끄집어내는 것이다. 상상력은 지식과 경험의 합을 몇 배로 키워 주는 놀라운 촉매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에 상상력을 불어넣는 것은 생각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한 갈망이 자신 안에서 샘솟게 해야 한다. 독서는 바로 그런 점에서 아주 중요한 샘이다. 다양한 독서는 난삽한 독서가 아니다. 다양한 간접경험들과 지식들이 쌓이고 그것들이 내 삶을 통해, 내 지식의 진보를 통해 결합되고 화학적으로 반응하면서 새로운 가치와 인식의 지평을 생산한다. 그러므로 독서의 출발은 반드시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

상상력과 창의력의 조건은 절대적 자유다. 그리고 자유는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에게 더 많이 보장된다. 상상력은 개인과 사회의 무한한 자유를 제공하고 자유는 새로운 창조를 이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독서의 가치는 바로 그러한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이며 필수적인 덕목이다. 주체적 자아를 발견하고 완성하도록 하는 내재적 동인을 능동적으로 찾아내고 지향하는 근본으로서의 독서라는 인식의 정립이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미래 독서는 시대의 변화를 전제한다. 그리고 그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독서 방법과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미래 독서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현대인의 눈을 열어 다가오는 변화를 준비하고 그 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을 그 목표로 한다. 미래 사회는 창의력과 논리적 사고 둘 다를 요구한다. 독서는 분명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생존의 문제와 함께 같은 공간에 사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실질적으로는 다른 세계에 사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 그것이 바로 독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