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의 해외시장 의존 커져…중소기업 연구·개발 투자 확대 ‘주목’

[2015 한국·세계 경제 대전망] 국내외 성장 둔화…대·중소기업 모두 비상
2015년에 예상되는 기업의 경영 환경은 그리 밝지 않다. 2014년 현재 한국 정부는 가계 소득 증대, 부동산 규제 완화 등의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이러한 경제성장 둔화는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대비가 필요하다. 또 미국의 통화정책 변화, 중국의 성장 둔화, 유로존의 경기 부진 등으로 글로벌 경제 역시 회복이 더딜 것으로 보인다. 국내외의 성장 둔화로 국내 기업들이 공격적으로 설비투자에 나설 가능성도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형중 메리츠종금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정부 정책만으로 소비 등 내수 경기가 기대만큼 개선될지 여부는 불확실하다”며 “2015년 기업이 당면할 대내외 환경이 우호적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경제성장이 정체 내지는 둔화되면서 수출이 크게 증가할 가능성이 높지 않고 내수 환경도 기대만큼 확대될 여지도 적다”면서 어두운 전망을 내놓았다.

대기업은 최근 5년간 내부 거래의 비중과 금액이 모두 감소했다. 김상준 법무법인 지평 파트너변호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대기업집단은 지주회사 전환, 계열사 지분 매각, 계열사 간 합병 등의 소유 지배 구조 변경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며 “3세, 4세 체제로 들어서고 있는 대기업집단의 승계 과정에서 상속세 납부, 자식들 간 사업 안배, 개별 회사의 경쟁력 강화 등의 측면에서도 계열회사 단순화, 기업집단 분리, 지주회사 형태 전환 등이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삼성·한화·SK·CJ 등 총수의 경영 공백이 길어지는 대기업들은 경기의 불확실성 속에서 비상 경영 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삼성은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과 계열사 경영진이 협의해 일상적인 업무를 정상적으로 처리하고 있고 한화는 비상경영위원회를 통해 대규모 투자와 신규 사업 계획 수립 등 핵심 사안을 챙기고 있다.

총수가 수감 중인 SK와 CJ는 현재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SK는 중·장기 경영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비상 경영의 핵심인 수펙스추구협의회의 기능을 확대하고 있다. CJ는 국내부터 해외까지 사업 확대 계획이 잇따라 연기됐다. 내년에도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장기적인 성장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윤구 연합인포맥스 산업증권부 기자는 “다만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기업인 사면론을 언급하면서 수감된 총수들의 내년 사면 가능성이 있다” 고 말했다.


삼중고에 빠진 중소기업
중소기업은 삼중고에 빠졌다. 차이나 인사이드(China-Inside), 엔저 장기화, 한국의 내수 부진 때문이다. 중국 제품이 가격 경쟁력뿐만 아니라 기술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고 이미 기술 경쟁력을 갖춘 일본 제품은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또 2015년 국내의 중소기업 내수 전망 역시 밝지 못하다. 임금 상승 둔화와 과도한 가계 부채, 비소비지출의 증가 등으로 내수 부진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소기업의 글로벌화가 시급한 시점이다. 이민재 IBK경제연구소 중소기업팀 선임연구원은 “현장에서는 중소기업이 내수에만 안주하면 길어야 3년에서 5년 안에 사업을 정리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며 “정부는 중소기업의 글로벌화를 위해 다양한 정책들을 제시하고 있고 위협적인 엔저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투자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연구·개발(R&D) 투자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점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R&D 투자 증가율이 둔화된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높은 수준을 이어 가고 있다. 이우성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은 경기변동에 따른 R&D 투자 변동이 심하지만 2000년대 후반 이후 지금까지 평균적으로 모든 기업 규모에서 10% 이상 빠른 속도의 R&D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며 “그러나 여전히 대기업이 차지하는 R&D 투자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에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의 투자 확대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인수·합병(M&A) 시장에는 일본과 중국의 대외적 리스크를 극복해야 한다는 과제가 주어져 있다. 그런데 국내 기업 내부에 이미 큰 장애 요소가 존재한다. 상당수의 국내 기업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체계적인 준비가 전무한 상황이다. 김정열 SV어드바이저그룹 대표는 “2015년은 여건상 우리 기업에 쉽지 않은 한 해가 될 것”이라며 2015년 M&A 시장을 두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 장기적 관점에서 ‘재팬 리스크(Japan Risk)’를 극복하려면 해외 지역, 특히 유럽연합(EU) 국가의 첨단소재·부품 중소기업의 M&A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둘째, ‘차이나 리스크(China Risk)’를 극복하려면 중국 기업의 추격을 피할 수 있는 분야를 발굴하고 중국과의 상호보완적인 경제 모델을 구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편 2015년에는 미처 처리되지 못한 경제 민주화 정책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2013년까지 처리되지 못했던 금산 분리 강화 규제 및 법 집행 강화를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안, 감사위원 분리 선출, 갑을 관계법인 대리점법 제정안 등이 2014년에 본격적으로 논의될 전망이었다. 그러나 2014년 초에 국내외 신용 평가사들의 부정적 평가가 집중되면서 경제 민주화 논쟁이 잠시 주춤하고 있다. 이처럼 아직 처리되지 못한 경제 민주화 법안들과 새롭게 제기되는 관련 정책들은 실질적으로 2015년에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석훈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 팀장은 “2015년에 논의될 기업 규제 정책들은 분명 정당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방법”이라며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은 정책이라면 신중해야 할 것이다. 목적과 수단 간에 최적의 조합이 이뤄질 수 있는 정책 논의를 기대해 본다”고 말했다.


경제 민주화 논의 다시 시작될 것
글로벌 경영 분야에서는 해외 직접 투자를 통한 해외시장 진출이 급증하고 있다. 심지어 국내 투자가 부진한 상황인데도 국내 기업은 국내보다 해외 생산으로 계속 눈길을 돌리고 있다. 해외 투자액 규모가 미국·일본보다 높고 대외 개방 국가인 네덜란드와 비슷한 수준이다. 하병기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해외 직접 투자가 2007년 이후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한국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한국 기업의 글로벌 경영은 앞으로도 양적으로 확대되면서 동시에 질적으로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제조업 동향을 살펴보면 이처럼 글로벌 시장에 의존하는 상황의 위험성을 알 수 있다. 2014년 중반까지 주요 선진국들은 민간 소비 증가세가 0%대 중반 이하로 극심한 소비 부진에 시달렸다. 이에 따라 국내 주요 수출 대상국인 선진국들의 수입 증가세는 2014년 당초 기대치에 못 미치는 3%대 중반에 그쳤다. 이어 2015년에도 4%대 중반으로 약간 상승하는 등 선진국 수출 시장 환경의 개선이 미흡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2015년에도 국내 제조업은 본격적인 회복 모멘텀을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국가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져 국내 수출 환경도 더 악화될 것으로 우려된다”며 “대외 여건뿐만 아니라 대내 여건도 제조업 경기의 본격적인 회복을 견인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업체 특성에 맞는 스마일 커브(smile curve)의 재창조 노력을 통해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하려는 본격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인 이민화 한국디지털병원 수출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은 “2015년에 제2의 벤처 붐을 일으키기 위해 2000년 시점의 벤처 생태계의 복원과 추가적인 제도 개혁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2015년에 금융 규제를 획기적으로 풀 수 있다면 10년 뒤 2025년에는 대기업집단보다 더 많이 국내총생산(GDP)에 기여하는 벤처 생태계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시경 인턴기자 c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