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세계
우리 삶 속에 항상 존재하는 빛. 그 빛을 디자인하는 직업인 ‘조명 디자이너’는 다소 생소한 직업이지만 우리에겐 꼭 필요한 직업이다. 조명으로 인해 죽어있던 공간이 살아나기도 하고 때로는 과한 빛으로 인해 피해를 받기도 한다. 적절히 우리의 삶 속에 스며들 수 있도록 빛으로 공간을 만드는 김강운 조명 디자이너를 만나봤다. -언제 디자이너의 꿈은 가지게 됐나?중 2때 교생 선생님의 영향이 컸다. 미술 담당이셨는데 선생님의 관심을 끌기 위한 방법이 미술을 잘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교생선생님이 담당했던 C.A 미술시간에 들어가 처음 미술을 배웠다. 처음에는 실력이 형편없었는데 계속 하다 보니 재미있었다. 그러다가 고 2때 처음으로 미술학원을 다니면서 꿈을 키워 나갔다.
-처음부터 조명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나?
처음에는 언론사 디자이너로 일하기 위해 몇 군데 지원을 했는데 잘 안됐다. 1995년 광고회사 디자이너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그러던 중 당시 회사 대표와 절친하던 조명 회사에 디자인 문제가 생겨 잠시 도와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조명회사 대표가 저를 마음에 들어 하셨다.
당시 회사 대표에게 “김강운 씨를 우리 회사로 데려오면 어떻겠느냐”라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 스카우트 제안을 받은 셈이다. 그때만 해도 조명 디자이너가 무슨 일을 하는지조차 모르던 시기였는데 짧은 고민 끝에 조명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됐다.
“화가에게 물감이 있듯 조명 디자이너에겐 램프가 물감이다. 램프로 공간을 그리는 것이 조명 디자이너”
-일반 디자이너와 조명 디자이너의 차이점은 뭔가?
화가에게 물감이 있듯이 조명 디자이너에게는 램프가 물감이다. 램프로 공간을 그리는 것이 조명 디자이너의 일이다. 때문에 좋은 조명 디자이너가 되려면 많은 공간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공간에서 보여 지는 빛을 이해하고, 접근하고, 공부하는 것이 조명 디자이너의 일이다. -그렇다면 조명 디자이너는 어떤 일을 하나?
각각의 공간에서 필요한 빛을 조명으로 만들어 내는 일을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생활하는 집이나, 학교, 쇼핑몰, 거리 등 각각의 공간마다 필요한 빛이 있는데, 그 공간의 목적에 맞게 빛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이뤄질려면 건축과 조명의 긴밀한 약속이 있어야 한다. 조명은 스페셜 컨설팅으로도 불리는데, 건물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일이고, 디자이너이면서 엔지니어의 일도 함께 한다고 보면 된다.
대부분은 후속작업으로 진행된다. 오케스트라로 비유하자면, 조명 디자이너는 지휘자 역할을 한다. 에이밍 조정(aiming control)이라고 하는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데 빛이 많으면 줄여야 하고, 색의 많고 적음을 조절하는 역할이다.
-조명 디자이너가 갖춰야 할 조건이 있나?
우선 그래픽 능력이 있어야 한다. 내가 생각한 그림을 도면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조명 기술에 대한 이해도다. 예를 들어 램프의 종류라든지, 공간의 이해도가 있어야 어느 위치에 어떤 조명기구를 사용할지 알 수 있다. 엔지니어링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한다. 건축 지식이나 전기, 조경 등의 기본 지식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프레젠테이션 능력도 필요하다.
-특별히 조명 디자인을 위해 다뤄야 할 프로그램이 있나?
예전에는 도면으로 건물을 이해했지만 요즘에는 워낙 프로그램들이 많기 때문에 다양하게 활용할 줄 알면 도움이 된다. 특히 3D프로그램 등을 다룰 수 있으면 공간 이해가 쉽기 때문에 도움이 많이 된다. 리룩스, AGI 등 공간을 측정하는 프로그램들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
“박봉에다 일주일에 3일을 철야 근무, 녹록치 않았던 현실에서 꿈은 조명 디자이너 하나였다.”
-조명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시작할 무렵, 힘든 점은 없었나?
당시만 해도 조명 디자이너의 역할이 크게 필요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전기 공사를 하는 사람들이 디자이너 역할을 겸해오던 시기였다. 공간의 밝기만을 조절하는 일을 하는 정도였다.
이 직업을 시작할 무렵, 현장을 갔더니 어떻게 오셨냐고 묻더라. 그래서 조명 디자이너라고 했더니 담당자가 “무슨 조명에 디자인이 필요해?”라면서 나가버렸다. 그때는 서럽기도 하고 속으로 많이 울었다.
한 30분 정도 꿈쩍도 않고 서 있으니까 담당자와 회의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준비해 간 공간별 조도 계산을 해서 조명 디자인 시안을 보여줬다. 그 담당자가 순간 말을 하지 못하더라. 그동안 그런 디자인을 보지 못했던 거다. 그 뒤로는 제 말을 경청하며 잘 듣더라. 그 현장이 광화문에 있는 SK본사 건물이다.
그때만 해도 컴퓨터가 DOS 시절이라 도면 랜더링을 한번 하면 반나절이었다. 박봉에다 일주일에 3~4일을 철야근무하기도 했다. 지금은 프로그램이나 현장 분위기도 많이 좋아졌다.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2006년에 진행했던 금호 아시아나 프로젝트다. 도면이 짧은 시간 안에 나오는 경우가 있는 반면, 며칠을 고민해도 안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근데 금호아시아나는 1시간 만에 설계도면이 나온 케이스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 재임 시절, 오 시장이 집무실에서 금호아시아나 건물의 조명을 보고 ‘서울에서도 저런 그림을 볼 수 있구나’라고 언급했다고 측근을 통해 들은 적이 있다.
-현재 국내 조명 디자이너가 몇 명이나 활동하고 있나?
많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처음 시작할 1997년만 해도 조명 디자인만 전문으로 하는 회사가 4~5개였는데 지금도 그리 늘어나진 않았다. 이유는 조명기구를 납품하는 회사에서 디자인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그런 회사가 더 많다. 하지만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라는 말이 있듯이 ‘조명 디자인은 조명 회사가, 공사는 조명업체에서’ 하는 것처럼 구분이 되어야 한다.
-그럼 향후 조명 디자이너의 비전이 다소 어두운 것 아닌가?
그건 아니다.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조명 디자이너만이 할 수 있는, 해야만 하는 일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 최근 국내뿐 아니라 해외 프로젝트도 많이 이뤄지다 보니까 글로벌 비즈니스의 비중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해외에서는 조명 디자이너의 역할과 비중이 국내보다 크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 조명 디자인 시장도 커지고 더불어 기회도 더 많아지고 있다.
-연봉은 어느 정도 되나?
전문 조명 디자인 회사와 조명 기구 업체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조명 디자인 회사의 평균 초임 연봉은 1800만~2000만원 정도다. -조명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선 대학은 필수인가?
전혀다. 대학을 나왔다는 것이 장점은 되겠지만 필수요건은 아니다. 최근에는 특성화된 고등학교들이 많기 때문에 건축이나 디자인을 전공하고도 조명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 대학을 가지 않더라도 자신이 생각하는 디자인을 표현해내는 능력이 우선이다.
-조명 디자이너의 매력은 뭔가?
조명 디자이너는 탤런트와 같다. 내가 한 작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되어 있고,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공간에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희열을 느낀다. 얼마 전 개최됐던 ‘2014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체조·럭비), 계양경기장(배드민턴·양궁)’을 디자인 했었는데 국내 방문객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짜릿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사람들이 공간을 인식하는 기억은 낮보다 밤이 높다. 1 대 9의 비율이다. 그만큼 조명이 사람들의 자리한 공간 속에 스며들고 있고, 그것이 추억으로 남는다는 사실이 매력적이다.
-조명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한마디!
조명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는 관찰력이 중요하다. 어떤 공간의 조명이 어떻게 이뤄져 있는지 보고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것을 경험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 낼 줄 안다면 좋은 조명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글 강홍민 기자 / 사진 김기남 기자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