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고졸자들의 사회 진출은 새로운 뉴스거리가 아니다. 예전 대한민국이 산업화가 되기 전에는 ‘상고’와 ‘공고’로 내로라하는 수재들이 몰리는 시절도 있었다. 제 15·16·17대 대통령을 배출한 목포상고(현 전남제일고), 부산상고(현 개성고), 동지상고(현 동지고)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명문 상업고등학교였다. 특히 상업계 고등학교 출신 중에는 재계 인사도 많은데, 이학수 전 삼성미래전략실 부회장(부산상고), 정연주 전 삼성물산 부회장(대구상고),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동대문상고),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강경상고),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선린상고)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그 시절은 배고픈 시절이었고, 먹고 사는 문제가 급급했기 때문에 일찍 돈을 벌기 위해 많은 인재들이 상고를 선택했다. 대학보다는 취업이 우선이었던 셈이다.
분명 그 시절엔 선택의 폭이 좁았다. 어쩌면 넉넉지 않은 집안에서는 고교 졸업 후 취업이라는 하나의 선택만이 존재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그 시절보다 선택할 수 있는 분야도 다양해지고 직업의 수도 많아졌다. 무엇보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어느 대학 나왔어요?”라는 질문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대학 졸업장이 당연시되는 편향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학벌주의가 만연한 현재, 특성화고의 복고 바람이 불고 있다. 옛 산업 역군들이 생계를 위해 선택해야만 했던 ‘상고·공고’에서 벗어나 이제는 자신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많은 학생들이 특성화고를 선택하고 있다.
‘취업률’ WIN! 13년 만의 쾌거
현재 명문 특성화고를 나타낼 수 있는 지표는 단연 취업률이다. 졸업 후 취업을 주 목적으로 운영되는 특성화고·마이스터고에서 취업률은 학교 평가의 기준이자 잣대이다.
교육부에서 최근 발표한 자료를 보면 올해 고졸 취업률(44.2%)이 2001년 이후 13년 만에 진학률(38.7%)을 앞섰다. 이는 지난해 취업률(40.9%) 대비 상승한 수치이고 두 번의 졸업생을 배출한 마이스터고 역시 평균 취업률 90%대를 기록한 결과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무조건 대학을 가야 한다는 사회 저변에 깔린 인식이 조금씩 변화되고 있는 시점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전 정부에서 추진한 고졸 취업 활성화 정책이 이번 정부로 넘어오면서 다소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현 정부에서 주력하고 있는 ‘경단녀(경력단절여성)’ 채용으로 고졸 채용이 뒷전으로 밀려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졸 취업시장은 여전히 존재한다. 현재 고졸 취업률 추세로만 보면 오히려 취업 시장 전반에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분위기다. 정부, 학교, 학생…삼합이 ‘명품 특성화고’ 만든다
정부가 바뀌고 취업 정책 포커스가 비껴났음에도 불구하고 고졸 채용시장이 유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고졸 채용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함께 기업에서도 꾸준히 고졸자를 채용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 정책으로 시행했던 고졸 취업 활성화가 반짝 이슈로 끝나지 않은 것은 기업에 꼭 맞는 인재들을 학교에서 묵묵히 양성하고 배출했기 때문이다. 지방의 한 특성화고 교장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들도 취업에 대한 의욕이 전혀 없었지만 기업에서 고졸 채용을 한 뒤로 타 학교, 그리고 타 지역과 서로 경쟁을 하다 보니 교사들의 취업 의지가 한껏 높아졌다”며 “현재는 학교와 MOU를 맺은 기업들에서 먼저 고졸 채용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교사들의 이러한 취업 의지는 그대로 교내 프로그램에 반영되고 있다. 각 학교별, 지역별 특색을 고려해 교사들에게는 교직원 진로교육 및 워크숍을 통해 취업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했다. 또한 학생들에게는 취업 마인드 및 취업역량 강화 프로그램으로 취업에 대한 의식구조를 개선하고, 고졸 취업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학부모를 대상으로 진로 설명회 및 상담으로 고졸 취업에 대한 마인드를 변화시켰다.
각 시·도 교육청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전국 시·도 교육청에서는 각 지역 내 기업에 고졸자들이 일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 신규 채용 기업들을 확보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교육청 산하에 취업지원센터를 개설하고 각 지역 또는 타 도시에 있는 기업을 방문해 고졸 채용 유치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러한 노력 덕분인지 17개 시·도 교육청 중 대부분이 지난해에 비해 취업률이 상승했다. 특히 전남교육청 산하 특성화고의 올해 취업률(4월1일 기준)은 지난해에 비해 18.0%포인트나 높아졌다. 김창근 전남교육청 장학사는 “타 시·도에 비해 대학 진학보다는 취업을 선호하는 학생들이 많아 취업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며 “지난해 특허출원을 받은 ‘MC(기업맞춤형)교육 운영 등 학생과 기업이 만족할 수 있는 취업프로그램을 더욱 강화하고 학생들이 안정적으로 오래 근무할 수 있는 취업처의 질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육계 한 관계자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일반고에 진학해 대학을 갔다면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며 “중학교 성적이 중상위권의 학생들이 각자 하고 싶은 분야를 미리 선택해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로 진학하길 원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업에서도 하위권 대학을 졸업한 대졸자들보다 성적이 우수한 고졸자들을 선호하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글 강홍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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