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가채연수는 이론적으로는 계속 줄어들어야 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원유 가채연수는 30여 년에 불과했다. 당시 계산대로라면 지금 원유는 고갈된 자원이어야 한다. 정유사 브리티시페트롤륨(BP)에 따르면 실상은 현재 세계 원유 가채연수는 53년에 이른다. 새로운 매장지의 발견과 기술 발전, 셰일 에너지 등의 등장 때문이다.
가채연수가 늘어난다고 가정하면 유가에 대한 접근도 달라져야 한다. 유가가 물가보다 빠르게 올랐던 이유는 사용하면 사라지는 자원이기 때문이다. 가채연수가 늘어난다면 이러한 접근은 틀리다. 그동안은 이러한 불편한 진실 속에도 유가가 오를 만한 이유들이 있었다. 첫째, 중국이 성장 과정에서 원자재를 말 그대로 빨아들였기 때문이다. 둘째, 석유수출국기구(OPEC) 국가들의 담합이었다.
중국 수요는 유효하다고 판단된다. 다만 이러한 수요 자체는 가채연수에 이미 묻혀있다. 그렇다면 OPEC의 카르텔이 유지될 수 있을지만 따져보면 된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비OPEC 국가들의 생산량이 OPEC 국가들의 생산량을 월등히 추월하며 담합 효과는 이제 제거됐다고 보는 편이 옳다. 비싼 기름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국전력의 이익 증가가 기업과 가계에 불편하다면 OPEC 국가들의 배부름은 비산유국의 배 아픔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세계 대부분의 비산유국이 바라는 일이 이제 일어나고 있다. 석유 담합이 깨지고 시장이 경쟁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들던 유가는 지금 80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1970년대 사우디아라비아 장관의 이 말이 생각난다. “우리 조상은 낙타를 탔고 우리는 벤츠를 탄다. 자식들은 또다시 낙타를 탈지도 모를 일이다.”
곽현수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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